정동영이라 하면,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선수한테 참담하게 패배했던 기억이 먼저 납니다. 정동영은 대선 참패 이후 미국에 나가 있으면서 여러 모로 고민하면서 생각을 고쳐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정동영이 2009년 국회의원으로 돌아왔으며 지금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있으면서 차기 대선 후보로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7월 9일 오후 1시 조금 넘어서 정동영 최고위원이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블로거들과 만나 간담회를 했습니다. 정동영 위원에게 트위터로 간담회를 제안하는 등 이 자리를 만드는 데 크게 구실을 한 블로거 거다란님을 비롯해 스무 명 가까운 사람이 모였습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여러 반성으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깨진 데 대한 반성, 이명박 선수가 대통령 되도록 만든 데 대한 반성,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세상을 제대로 읽지 못한 데 대한 반성,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대세니까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면서 일곱 달 앞에 일어난 미국 경제 붕괴를 전혀 생각도 못한 데 대한 반성 등이 줄을 이었습니다.

정동영 최고위원. 제게는 소탈해 보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블로거 누군가가 이번에 터져 나온 해병대 총기 사고에 대해 물었습니다. 둘째아들이 해병대 출신이니 특별한 감정이 있을 수 있다면서 말입니다. 정동영 위원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제도 개선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본인 군대 경험을 올리며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총기 사고로 희생된 장병 위문을 가겠다니까 둘째 아들이 따라나섰습니다. 함게 가면서 '야, 기수 열외라는 게 뭐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기수 열외 얘기하면 안 돼요.' 이랬습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바깥에서는 얘기하면 안 되기로 돼 있는 것입니다.

민주화 운동 관련으로 구속됐다가 군대에 끌려갔습니다. 74년부터 77년까지 32개월을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그 때 당했던 구타와 가혹 행위를 30년이 넘어 한 세대 지난 지금까지도 바꾸지 못했구나, 반성을 했습니다. 그동안 여당을 10년 했기 때문에 반성했습니다.


절반은 지옥 같았고 나머지 절반은 무척 행복했습니다. 군대에서 때려 패는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식판에 기름기가 있다, 관물이 정돈되지 않았다, 마루에 먼지가 있다 등등. 오후 6시만 되면 집합을 시켜서 두드려 패는 것입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맞았습니다. 곡괭이 자루로 석 대는 적게 맞는 것이었습니다.


병장이 되고 나서 싹 바꿨습니다. 먼저 집합을 없앴습니다. 대신 축구를 했습니다. 1년 365일 축구를 했습니다. 그러고는 '나가서 사회에서 보자' 이랬습니다. 행정부대였기 때문에 글 쓰는 친구들도 있었고 몰래 문집도 만들었습니다. 구타로 군기 잡는 대신 서로 아끼는 인간 관계가 될 때 군대 생활이 이토록 달라질 수도 있구나, 느꼈습니다.

군대에서 내무반 생활 같이 했던 사람들이 모여 '소사원'이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35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 김훤주 개인의 생각입니다만, 군대에서 원한 관계였다면 이런 모임이 이뤄지기 어렵고, 이뤄졌어도 금방 깨지겠지요.)

미국 해병대 문화도 1970년대 구타로 말미암은 사망 사고 이후 완전 바뀌었습니다. 폭행을 일절 금지하고 사적인 처벌(=린치 lynch)을 하면 감옥에 보내는 식으로 했습니다. 미국도 하는데 우리나라라고 하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트위터에 올리기 위해 간담회에 참여한 블로거 모습을 사진에 담는 정동영 최고위원.


정동영 위원의 이런 말이 제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군대에서 폭력은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대해 각성을 하고 하는 찬물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더불어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요즘 해병대 총기 사고 관련 기사를 보면 지휘관들은 이런 폭력이 일어나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나옵니다. 그러면서 내무반에서 일어나는 구타 폭행에 대한 책임을 이들에게 묻기 어렵다는 얘기로 이어집니다.


저는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보이게 보이지 않게 폭력이 행사되고 있음을 장교들이 모를 리가 없다고 봅니다. 어떤 면에서는 병사들 통제하고 관리하는 데 그런 것이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먼저 정동영 위원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충분히 그렇게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에 깐 위에서 대책을 세우는 한편으로 간부에 대한 처벌을 어쩌면 가혹할 정도로 해야 한다고 저는 여깁니다.

하사나 중위 같은 말단 간부를 구속하는 대신 적어도 대대장이나 연대장도 할 수 있는 최대치로 처벌하고 이명박 선수가 해병대 사령관 정도는 바로 파면을 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간부들이 내무반에서 일어나는 구타를 비롯한 가혹 행위를 적당하게 무마하려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 성원 대다수의 믿음도 제대로 얻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이명박 정부에 이런 기대를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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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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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bloodlee 흙장난 2011.07.09 1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한 장 가져갈께요.^^

  2. 강덕웅 2011.07.15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병장님소사33사단 생각나시죠 일요일마다 헬기장에서 구타대신 콘내기축구시합
    그렇게하면 무슨구타가 있겠소 졸병고참 모두가 내가족이죠
    조그만월급에 콘값을 우리가 책임져야하니 부담은 있었지요

  3. 송봉석 2011.07.15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오래전 생각이 납니다.제가 정동영 병장님의 두단계 아랫 기수였는데, 제 바로 윗기수들이 사단 상황실 벙커 뒷쪽으로 우리를 집합시켜 놓고 구타를 시작할즈음에, 어떻게 아셨는지 쫓아와 도라어 우리 윗기수들 김모, 최모 상병들 혼줄 났었죠.
    그 후로 토요일, 일요일이면 야구, 축구로 내무반 분위기를 바꿨던 정병장님 생각이 지금도 납니다. 삼십년도 넘은 까마득한 생각이 지금도 눈에 선하군요. 그때의 리더쉽이면 정치도 잘하실거란 생각이 듭니다.

  4. 정호진 2011.07.15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위원님 병장으로 최고참일 때 제일 졸병이었던 정호진입니다. 저녁먹고 집합 준비를 하던 어느날 갑자기 집합대신 축구시합이라며 연병장으로 우리를 끌고가던 그날. 우와! 이게 왠 일인가? 축구시합하고나서 침상의 집합을 할건가? 그러나 축구를 하던 우리는 졸병 고참 나누지 않고 진정한 전우가 될수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축구시합, 야구시합 그야말로 우리 행정병에겐 체력단련시간이요 군인다운 정신을 키우는 시간이기도했다. 나는 얼마의 시간이 지난후 정병장님이 왜 이런일을 했는가 알수있었다. 본인이 졸병시절 늘 구타속에있던 공포의 내무반을 고참이되면 바꾸겠다는 결심이 있었다는 것. 나는 그때 올바른 지도자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수있다는 말이 옳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도 정의원이 33사단의 정병장이되어 이 사회를 올바로 바꾸어주기를 기대한다.

  5. 양태익 2011.07.16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동영병장님과 33사단 내부반에서 같이 생활한 쫄병 양태익입니다..당시 오래동안 전통적으로 내려온 내무반구타가 있었지요..밤 11시~12시에 취침하다가 불려나가 혼난적도 있고..이러한 관습을 없앤 고참이 바로 정동영 병장이였지요..아직도 기억이 합니다..축구뿐만 아니라 야구시합도하고..추석명절이면 중추절 그림을 크게 그려놓고 회식두하고...정병장님이 고참이 되었을때 참 즐거웠고..그리운 군 생활있습니다
    역시 나쁜 폐습을 과감히 없앨 수 있는 정동영 병장님의 리더십을 존경합니다

  6. 정중근 2011.07.18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년가까이 군 생활을 같이 하면서 병영문화를 바꾸려고 애쓰시던 정 의원님의 모습이 아직도 얼마전 같이 기억에 또렷합니다. 체육복 입고 축구하던 젊은 시절의 모습도 눈에 선하고요~ 한 사람의 생각과 노력이 오래된 폐습을 고치는 것을 보고 사고의 변화가 개혁의 근본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대 후 30~40년의 긴 세월을 가끔 만나서 안부인사 나누고 하지만, 뵐 때마다 젊은 패기를 느낄 수 있어서 늘 반갑습니다.
    정 의원님의 행보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