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용궁사는 해우소 휴지조차 팔아 먹더라

김훤주 2011. 7. 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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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 용국사를 훌쩍 뛰어넘는 절간입니다. 용국사도 들어서는 길머리에 FRP로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잔뜩 세워놓고 시주하기를 권합니다. 여기서는 주로 동전을 바랍니다.

그런데 해동 용궁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불상과 탑들에 불전함을 만들어 놓고 시주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들머리에는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하나에는 해당되는 십이지신상을 세우고는 돈통을 붙였습니다.

기도 효험이 있기로 이름난 절간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단일 석불로는 가장 크다는 해수관음대불을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죽은 뒤를 관장한다는 지장보살을 바닷가에 세우고 어르신들 돈을 탐내기도 합니다.

게다가, 어지간한 절간은 모두 해우소 휴지를 공짜로 내놓는데, 여기 이 해동용궁사는 화장지를 매점에서 사서 쓰게 하고 있습니다.

용궁사 들어가기 전 주차장에 있는 공용 화장실에서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부산시나 기장군에서 운영을 하는 모양입니다.

남의 노래를 표절하고 엉터리를 덧댄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운동가인 '사노라면' 1절을 돌에 새겨놓고는 끝부분을 자기네 입맛대로 바꿨습니다.

이를 모르는 대부분 사람들은 '사노라면'이 해동 용궁사를 위해 지어졌다고 착각하기 마련이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잇달아 있는 이광수의 시조조차 용궁사와 모슨 관련이 없는데도 억지로 끌어왔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해동 용궁사의 전체 모습입니다.



'사노라면' 노래를 이렇게 새기고 끝에다 원래 가사에는 없는 '용궁사 앞 바다에 붉은 해가 뜬다'고 붙였습니다.


이광수의 시조에는 제목이 없습니다. 아래 까만 빗돌의 용궁사의 밤은 정암 스님이 작사했다는데 확인이 안 됐습니다.


교통안전기원탑입니다. 앞에 자동차 발통 모양이 있고 돈통도 있습니다. 저는 처음 봤습니다.


절간 들머리에 있는 십이지신상 모두에게 돈통이 달려 있었는데, 특히 이 셋에게는 '삼재(三災)'라 적혀 있었습니다.


욕심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살라는 그럴듯한 글귀도 적혀 있습니다만, 저는 이런 것조차 '너희들이 그렇게 버리면 우리(용궁사)가 그것들을 알뜰하게 챙겨 먹을게'라고 읽혔습니다.


바닷가에 세워놓은 지장보살상입니다. 둘레에서는 거북을 방생하는 모양인지 거북을 뜻하는 한자 龜가 적힌 깃발이 휘날립니다.


황금돼지도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포대 화상입니다. 옆에 있는 건물과 견주면 그 크기가 엄청남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황금돼지와 마찬가지로 앞에는 돈통이 놓여 있습니다.


해수관음대불입니다. 왼손에 든 약병이 밑으로 향해 있습니다.


금강계단입니다. 금강계단에는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십니다. 그러나 여기에 그런 진신사리가 모셔졌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돈통이 놓여 있습니다.


해우소(변소) 들머리입니다. "화장지는 매점에서 판매합니다"라 적혀 있습니다. 이조차 아까운 모양입니다.

들머리 주차장에 있는 변소에는 이렇게 화장지가 공짜로 쓸 수 있게 돼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학업성취불입니다. 돈통이 아주 야무집니다.


돈통을 끼고 있지 않은 하나뿐인 부처였습니다. 득남불입니다. 하하.


6월 24일 앞바다가 좋다 해서 한 번 찾아가 봤습니다. 그래도 실망은 하지 않았습니다. 기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부처는 여기 스님들이 어떻게 하고 신도를 비롯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아랑곳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처의 행동과 말씀은 그 자체로 있는 것이고 그것을 듣고 보고 깨닫거나 말거나는 또한 사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처를 팔아 장사를 하는 것도 사람의 일이고 그 부처를 속절없이 사는 것도 사람의 일이고 또 사지 않는 것도 사람의 일입니다. 이런 데에 휘둘리거나 휘둘리지 않거나 하는 것도 사람의 일입니다.

부처는 저기 불상에 있지 않습니다. 저 혼자 있습니다. 불경 소리에도 있지 않습니다. 저 혼자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있지 않습니다. 저 혼자 있습니다. 부처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하거나 말거나는 바로 사람의 일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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