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디테일에도 강한 김정길이 보고 싶다

김훤주 2011. 7. 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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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김정길 선수가 부산 민주 공원에서 블로거 간담회를 할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과 대통령 정무 수석 비서관을 지낸 그이는 1990년 김영삼의 3당 합당 때 민주당을 버리지 않고 지킨 인물로 유명합니다. 사리사욕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과 소신을 지킨 대단한 인물이지요.

서로 의논하지 않았는데도 쉰아홉 그 많은 국회의원 가운데 김정길과 노무현 둘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권력의 품으로 권력이 돼서 들어갔습니다. 이로써 김정길은 어렵고 힘든 길을 걷게 됐지만 한편은로는 그것이 그이에게 커다란 정치 자산이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김정길은 민주당 간판으로 그 때부터 지금까지 부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 계속 떨어지기만 했습니다. 이른바 원칙과 소신을 지키고 당장 눈 앞 이익에 휩쓸려 정치 소신을 버리지 않은 결과이지요.

어쨌거나 그이랑 얘기를 주고받는 자리에 있으면서 김정길이 참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는 만큼 하기는 하지만 그 결과에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이런 것이지요. 아울러 마음 바탕이 단단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부산민주공원 벤치에서 어린 시절 얘기를 하고 있는 김정길.


하지만 김정길 선수가 치밀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책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내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고 한 인물인데도 그냥 흐르는 물에 그대로 흘러가듯이 몸을 맡기고 있다는 느낌이지요.

얘기 나눈 여럿 가운데 보편적 복지에 대한 소신이라든지 한국과 조선 사이 평화정책이라든지에 대한 뚜렷한 소신은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변절하지 않고 걸어온 길에 대한 믿음과 사랑도 좋았습니다.


다만 이런 점은 있었습니다. 원칙과 소신, 또는 정의에 대한 자기 믿음이 지나쳐서 그런 것 같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바탕은 단단하고 총론은 대단하지만 각론이 단단하지 않다는 느낌을 저는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으로 있는 블로거 김주완 선배가 물었습니다. "야권 대선 후보라면 4대강 문제와 종편(종합 편성 채널) 문제에는 (집권하면) 폭파하겠다든지 원래대로 돌리겠다든지 확실하게 해야 하지 않느냐?"(종편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조중동에게 방송사와 광고를 하나씩 안겨주는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김정길 선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법률에 맞춰 해야 하고 국민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 때 가서 상식과 원칙에 따라 하면 된다." 상식과 원칙을 별로 믿지 않는 제가 뒤이어 물었습니다. "상식과 원칙에 기대어 책임있게 말하지 않고 비껴가는 경우도 많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 5000만 명이라면 상식과 원칙도 5000만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명박도 자기가 알고 또 믿는 상식과 원칙이 있고 다만 그것이 대다수 국민이 갖고 있는 상식과 원칙의 공약수랑 일치하는 국면이 적을 뿐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김영삼 시절 전두환 얘기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전두환을 두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면서 피해갔지만 나중에 전체 구성원의 요구가 거세지자 말을 바꾸고 전두환을 구속했습니다. 그 때도 '상식'과 '원칙'이 앞에 나왔지만 결과는 이렇게 달랐던 것이지요.

김정길 선수는 뒤에 이어지는 다름 물음에 대해서도 '상식'과 '원칙' 또는 '정의'를 갖다댔습니다. '반값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도, 정치인이라면 당장 제기되는 요구에 대해서도 살펴야 하지만 그 배경까지 알아봐야 한다는, 어쩌면 심오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 자기 생각은 말하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정당명부 비례대표나 대선거구 같은 선거제도에 대해서도 그런 구체적인 부분까지 일일이 할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마찬가지 그 때 가서 상식과 원칙에 맞게 하면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여기니까 이렇게 글을 쓰지만, 적어도 소선거구라든지 전면적인 정당명부 비례대표가 되지 않는 지금 현실이 어떤 면에서 좋고 어떤 점에서 나쁜지를 따지면서 자기 생각을 밝히는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정길 선수의 이런저런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을 보면 보편적 복지와 햇볕 정책에 대한 명확한 찬성과 나머지 사안에 대한 '상식과 원칙 존중' 이 둘입니다.

부산민주공원 전시실에서 자기와 관련된 1971년 연표 앞에 선 김정길.


복지와 대북 정책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굵고 큰 사안입니다. 이에 대한 태도나 정책은 비교를 하자면 대하 장편 소설이랄 수 있습니다. 나머지 사안은 그러면 단편 소설이 되겠지요.


그런데 장편 소설에만 인생과 역사와 사회와 자연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편 소설에도 마찬가지 것들이 그대로 담깁니다. 다만 장편 소설은 통재로 보여지는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 한 그루라면, 단편 소설은 그 나무를 자르면 나타나는 나이테라 할 수 있습니다.


제 얘기의 요점은, 장편에서도 그 나무를 알 수 있지만 단편에서도 마찬가지 그 나무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장편은 그 나무가 지금 서 있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면 단편은 그 나무가 어떤 세월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가장 잘 보여줍니다.


다시 비유하자면, 가장 큰 현안인 남북 문제와 복지 문제에 대해서는, 이른바 야권이라면 누구나 김정길 선수와 같은 대답을 내놓습니다. 이런 면에서 김정길은 다른 야권 사람이랑 다른 구석이 별로 없습니다.(심지어 한나라당에서 넘어온 손학규 같은 사람도 대놓고 이에 반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아래 이미 많이 진행돼 버린 종편이나 4대강 사업을 2년 뒤 3년 뒤에 어떻게 할는지는 야권에서도 저마다 대답이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학 등록금이나 선거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세세한 정책에서 김정길이라는 사람의 마음결과 눈길이 뚜렷하게 나타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등록금 정책 안에는 대학 교육을 얼마나 공공재로 보는지, 교육의 사회화 기능을 어떻게 보는지 국가의 국민에 대한 책무가 어디까지라고 여기는지가 담겨 있기가 십상입니다.


선거제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과반 득표 당선이 거의 없는 현재 선거제도에 문제를 느끼는지 여부, 지금 선거 제도 아래서 소외되는 계급과 계층이 있다고 여기는지 여부, 더욱 촘촘한 민주주의에 어떤 선거제도가 합당한지 여부 따위가 그 정책 안에 들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김정길 선수는 이런 것은 그냥 '상식과 원칙'에 맡겼습니다. 그런데 상식과 원칙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니까 결국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대통령 노릇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말 것입니다.


제가 따르는 선배한테서 한 번씩 듣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하든지 두루 적용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영어를 어지간해서는 안 쓰는 편인데, 그 말맛을 살리려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디테일(Detail)에 강한 기자가 진짜 기자다." 전체 얼개가 그럴 듯해도 거기 담기는 세부 내용이 엉터리면 만사를 그르치고 만다는 뜻으로 저는 받아들입니다만.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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