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55만원은 구속, 1830만원은 불구속

김훤주 2011. 6.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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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6월 17일치 11면에 줄기 세포를 써서 성형 수술을 하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일반 지방 이식 성형 수술을 한 혐의로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병원의 원장과 부원장이 불구속 입건됐다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이들은 2010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한 해 동안 수술을 받은 16명으로부터 5500만원을 받아 챙겼다고 합니다. 기사는 또 일반 시술과 줄기세포 수술의 비용 차이는 1.5배라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들이 가로챈 이른바 부당이득금은 1830만원가량 됩니다.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입은 손해는 이밖에도 더 있습니다. 줄기세포 사용 수술은 '일반 수술보다 생착률이 좋고 피부탄력이 좋다고 인정'된다고 합니다. 그런 효과를 기대했던 사람으로서는 돈으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은 꼴입니다.(물론 이는 성형수술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전체를 통틀어 보면, 악의성과 고의성과 상습성이 뚜렷합니다. 부당이득도, 그이들 눈으로 보면 몇 푼 안 되는 것일 수 있지만 절대 적다고만 할 수는 없는 금액입니다. 피해를 회복할 수 없거나 회복하기 어렵다는 면에서 이른바 죄질이 나쁩니다.

그런데도 '불구속' 처분을 받았습니다. 물론 법원 재판에서 징역형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경험칙상'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노릇입니다. 기소 단계에서 불구속된 사람이 법원 판결에서 구속되는 수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떠신지요?

"3월 4일 인터넷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 게시판에 125cc 오토바이를 판매한다는 글을 게시하여 위 글을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 아무개로부터 70만원을 송금받아 편취하는 등" "3월 4일부터 4월 25일까지 같은 방법으로 정상적으로 물품을 판매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피해자 19명으로부터 19회에 걸쳐 도함 560여만원을 편취한 것임."

열일곱 살 짜리 이아무개의 혐의 내용입니다. 이이는 6월 2일 붙잡혀 사흘 뒤인 5일에 구속됐습니다.


또 있습니다. 그런데 금액이 너무 적습니다.

"6월 2일 23시 30분경 양산 상북면 한 횟집에서 피해자가 퇴근하고 없는 틈을 이용 시정되지 않은 화장실 창문을 열고 침입하여 카운터 위에 있던 노트북 1대와 소형금고 내에 있던 현금 5만원 등 55만원 상당 절취한 것임."

마흔두 살 먹은 김아무개의 혐의 내용입니다. 6월 4일 붙잡혀 8일에 구속됐습니다.


마지막입니다. 피해 금액이 좀 많은 편이기는 합니다만.

"5월 27일 11시 20분경 진주실내수영장 주차장에서 피해자가 수영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50cm 막대자를 이용 차량 문 시정 장치를 해제하고 침입 지갑에 있던 현금 120만원을 절취하는 등 부산 경남 일대에서 10회에 걸쳐 1000만원 상당을 절취한 것임."

서른 살 난 김아무개는 이레 동안 경찰의 추적과 미행을 받은 끝에 결국 6월 6일 진주 청곡사 주차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돼 바로 구속됐습니다.


물론, 이들 도둑들을 편들고 옹호할 생각을 저는 하지 않습니다. 남의 생명과 재산을 해치는 일은 크든작든 나쁜 일이거든요. 다만 저는 '형평'이 맞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을 따름입니다. 

수사 단계에서 구속하거나 불구속하는 것이 혐의 내용의 가볍고 무거움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불구속이 원칙이고, 이른바 '증거 인멸 우려'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만 구속을 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심합니다. 여기 도둑들이 구속됐다면 앞에 나온 병원 원장과 부원장도 구속돼야 합니다. 도둑들은 아무래도 전과가 있거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여서 구속됐겠지만, 앞에 의사들은 전과가 없고 '도주 우려'가 없어도 구속돼야 합니다.

물론 피해자랑 합의도 했겠고, 그런 합의가 있으면 처벌하는 정도가 줄어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악의성과 고의성과 상습성, 그리고 혐의 내용의 나쁜 정도(세칭 죄질이 불량한 정도)로 보면 구속이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얼마 훔치지 않은 도둑의 구속은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반면 남의 얼굴을 약속과 달리 제멋대로 뜯어고친 의사가 구속되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한 세상입니다.

세상이 이러니 '무전유죄 유전무죄(無錢有罪 有錢無罪)'라는 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자꾸 부풀어오릅니다. 우리는 지금 겉으로만 만인이 평등하고 실제로는 가진 돈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그런 사회를 살고 있을 따름입니다.

김훤주
무엇이시민을불온하게하는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 각국사회/문화 > 한국사회/문화
지은이 최강욱 (갤리온,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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