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시내버스 타고 거제 서이말 등대~공곶이

김훤주 2011. 6. 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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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공곶이는 널리 알려진 명승지랍니다. 갖은 매체에 단골처럼 소개되면서 찾는 이가 많아졌습니다. 그 대부분은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옵니다. 그러다 보니 눈으로 담아가는 풍경도 비슷비슷해졌습니다.

공곶이 둘레와 걸어서 가는 길을 제대로 알고 누리면 공곶이는 혼자만 우뚝 선 주인공이 아니라 여럿과 더불어 함께 빛나는 전체의 부분이 됩니다. 이런 길을 아는 이는 뜻밖에 드문 듯합니다.

6월 첫 주말, 버스를 타고 가 그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거제 와현(臥峴)고개-누우래재-에서 서이말 등대를 거쳐 공곶이를 들른 다음 예구·와현 마을을 돌아 와현고개로 돌아나오는 길은 13km 남짓입니다. 평소보다 조금 멀기는 했지만 더없이 좋은 나들이였습니다. 완전 '오감 만족(五感 滿足)'이었습니다.

3일 오전 거제 고현버스터미널에서 10시 6분발 23번 버스를 타고 11시 즈음 와현고개에 내렸습니다. 서이말등대 표지가 일러주는 들머리 길섶엔 전망 좋은 벤치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래 와현해수욕장과 멀리 구조라항이 한눈에 보인답니다. 바다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사진찍기는 좋지 않았지만 바라보기는 그럴듯했습니다.

바다 풍경을 마음껏 바라보고 있는 벤치.


다시 걷다가 약수터를 만났습니다. 찬 물 한 잔 마시고 물통에도 담아 나오는 길이었는데 까맣게 익은 오디가 눈에 띄었습니다. 몇 알 입에 머금고 나니 손에 물이 들어 도로 물가로 내려가 손을 씻습니다. 열매는 이뿐만이 아니랍니다.

'황금빛 산딸기'도 오지게 머금을 수 있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녀석이었습니다. 열매살이 풍성해 깨알 같은 씨앗이 느껴지지 않고 맛도 시지 않고 달았습니다. 신 맛이 받치는 붉은빛 산딸기는 지천으로 널렸고 진홍빛을 갓 넘어선 버찌도 씹을 만합니다. 그러니까 먼저 입맛 만족입니다.

코를 시원하게 하는 향기는 걷는 길 처음부터 끝까지 열매와 꽃에서 뿜어져 나온답니다. 꽃도 열매도 없는 숲에서조차 때로 향기가 풍겨져 나오는데, 오래된 나무들에도 이토록 달콤한 냄새가 자리잡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갖은 새소리와 아래 바닷가 철썩거리는 물결 소리는 귀를 즐겁게 합니다. 새소리는 스무 가지가 넘는 것 같고요, 파도는 세게 또 부드럽게 바위 위에 구른답니다. 피어서도 져서도 아름다운 꽃들과, 윤기가 흐르도록 빛나는 푸른 잎은 눈을 통해 들어와 몸과 마음으로 누리는 보람을 키웁니다.

그러나 이런 눈 코 입 귀보다 살갗이 더 즐거웠습니다. 6월 햇살이 따가웠지만 얼굴이랑 팔은 별로 그을린 데가 없었습니다. 서이말 등대로 가는 4km 남짓은 거의 끊어지지 않고 또는 좌우 어긋지게 그늘이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석유비축기지 관할 초소를 지나 곧바로 들어가는 대목에서 서이말(鼠耳末) 등대까지는 우거진 숲 대신 바다가 동행해 줍니다. 이름 모르는 하얀 꽃들이 가득 떨어져, 길은 그늘진 가운데서도 온통 환하답니다.

끄트머리에는 군부대가, 그 못 미쳐서는 서이말 등대가 있습니다. 지형이 꼭 쥐(鼠)의 귀(耳) 끝(末) 모양이라 이리 이른다는 서이말 등대는, 앞과 양옆 세 방향이 트였습니다. 삼면 바다를 향해 등대는 길라잡이 불빛을 던지고 군부대는 살펴보는 눈초리를 쏟습니다.

일반에 허용되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문이 열려 있기에 나선형 계단을 따라 등대 꼭대기까지 올라가 봤습니다. 바다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아직 걷히지 않아 환상적이기만 했습니다.

등대에서 구워간 떡가래를 먹고 일어선 시점이 12시 30분, 돌아나오다 1km 지점에서 벧엘수양원쪽 말고 10시 방향으로 공곶이 가는 길을 골랐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겪어보니까 통째로 보석 같은 길이었습니다.

가파르지도 않은데다 풍성하게 그늘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또 바다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지요, 떨어진 꽃잎으로 뒤덮인 길은 부드러운 황토여서 더욱 좋았습니다. 그러다 낙엽이 남아 있는 좁다란 오솔길이 공곶이와 이어집니다. 걷는 내내 탄성을 멈추기가 어려웠답니다.

나무에 달려 있는 꽃.

바닥에 내려 앉은 꽃.


아직도 낙엽이 남아 있는 길.


공곶이는 강명식 어르신 부부가 50년 넘게 수선화와 종려나무와 선인장과 동백 등을 가꿔온 데라 합니다. 꽃과 숲과 바닷가 몽돌과 바다와 바람으로 이름을 얻었고, 평일 휴일 구분 없이 많은 이들이 찾는 공원이 됐습니다. 이날도 공곶이 오기 전 길에서는 새들만 마주쳤지 사람은 자취조차 없었다가, 공곶이에 머문 30분 동안에만 30명가량을 만났습니다.

바닷가에는 바람이 몽돌과 함께 굴렀고 이어지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쉰 줄 들었음직한 중년 아낙 셋이 앉아 지난 세월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동백이 터널을 이룬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

바닷가 몽돌과 갯메꽃.

바닷가에 있는, 몽돌로 쌓은 담장과 넝쿨과 큰키나무.


이렇게 1시 40분부터 2시 10분까지 노닐다 고개 넘어 예구마을로 오니 2시 25분, 다시 와현해수욕장을 거쳐 와현고개 정류장까지 오는 데는 30분가량 걸렸습니다. 한 시간 일찍 나섰으면 예구 마을서 오후 1시 25분발 능포행 60번 버스를 타는 것으로 마무리해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또, 날씨가 더 더워지면, 걷든 타든 와현해수욕장 나와 바닷물에 몸을 담가도 좋겠습지요.

와현고개에는 22, 22-1, 23, 23-1, 24번(고현이 기점·종점)과 그리고 61, 61-1, 62-1, 63, 64, 65, 66, 67번(능포가 기점·종점)이 섭니다. 와현 오갈 때는 고현에서보다 장승포에서 타고 내리는 편이 낫겠습니다. 고현~장승포~와현고개에서 고현~장승포는 35~40분 걸리고 장승포~와현고개는 15~20분 걸리니 왕복 30분은 적게 드는 셈입니다.

와현고개 갈 때 장승포여객터미널 앞에서 탈 수 없는 버스는 23번입니다. 와현고개에서 나올 때 장승포여객터미널 앞을 지나지 않는 버스는 23-1번 64번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루 한두 차례만 다니므로 크게 지장은 없습니다. 예구마을 들어갔다 나오는 60, 60-1번도 여기에는 다 섭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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