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보리암과 상주해수욕장 한꺼번에 누린다

김훤주 2011. 7.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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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남해에는 갖은 보물이 촘촘히 박혀 있답니다. 보물은 저마다 자기에게만 고유한 빛깔로 반짝입니다. 이것이 낫다거나 저것이 멋지다거나 그것이 더 훌륭하다거나 할 까닭은 없습지요.

그래도 이 숱한 보물 가운데 알려진 차례만으로 꼽는다면 금산 보리암과 상주해수욕장을 앞서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금산 보리암을 첫머리에, 상주해수욕장을 끝자락에 달고 한 번 제대로 걸어보는 것입니다.

금산 보리암에 자동차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데는 이동면 복곡저수지 제1주차장을 지나 3.2km 위의 제2주차장이랍니다. 여기서 1km정도 가면 나오는 보리암에서 눈맛을 누린 다음 돌아나오는 대신 내쳐 걸어 갑니다. 그렇게 해서 상주면 신보탄 금양 마을 쪽으로 내려가면 상주해수욕장이 나옵니다.

보리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상주해수욕장. 그윽합니다.


6월 17일 오전 제2주차장을 떠나 문화재 관람료 1000원을 내고 보리암에 닿으니 9시 30분 조금 넘어 있었습니다. 보리암은 누가 말 안해도 다 아는 명소입니다. 효험이 탁월해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를 마주한 커다란 관음상과 그 앞 조그만 삼층석탑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관음상 앞에서는 사람들이 거푸 절을 해대고, 석탑 둘레에서는 두 손을 모은 채 탑돌이를 합니다.

만약 여기서 빈다면 무슨 소원을 이뤄달라고 할까? 사실, 따지고 보면, 소원이라는 존재도 욕심의 산물입니다. 욕심이 죄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것은 들고 있거나 담고 있으면 무척 힘들게 하는 물건입니다.

실제로, 조금이나마 욕심을 내려놓아 보니 그랬습니다. 작은 욕심이지만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삼고 있을 때는 마음은 물론 몸까지 고달팠습니다.

만약 무슨 소원이 있다 해도 그것을 이룩하는 대상이 아니라 놓거나 버리는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원을 이루면 그 이룸 자체가 다시 무슨 욕심 또는 새로운 마음씀의 바탕 노릇을 할지도 모르겠으니까 말씀입니다.

보리암은 기도뿐 아니라 경관으로도 명소랍니다. 삼층석탑 앞에 서서 오른편과 뒤편으로 이어지는 크고 별스럽게 생긴 바위들로 아롱진 산 중턱과 마루가 먼저 눈길을 끕니다. 눈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거기 바위에서 불끈 솟아나오는 기운은 그 자체만으로 대단하답니다.

보리암 앞바다에 떠 있는 섬들과 그리로 이어져 나아가는 산줄기들.

보리암에서 보는 금산에도 이런 부드러움이 있는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왼쪽으로는 산꼭대기에서 넌출넌출 이어지는 마루금이 양쪽으로 비탈을 감싸안으면서 아울러 더불어 조금씩 낮아지고 작아지면서 남해 바다로 스며드는 풍경입니다. 마루금과 비탈들은 한창 부풀어오르는 나무들로 풍성하고 부드럽습니다.

오른쪽 크고 별스러운 바위들은 새로운 눈맛의 즐거움을 안겨준다면 왼편 맺힘이나 끊김이 없는 마루금은 익숙하지만은 않은데도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큰섬 작은섬 쌀섬 노루섬 새섬 북섬 따위가 줄줄이 떠 있는 가장자리 바다에는 느긋함이 가득하답니다. 옆으로 오목하게 펼쳐지는 상주해수욕장도 그윽합니다.

10시 조금 지나 상주면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장군암 사선대를 지나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돌이나 나무로 계단을 빼곡하게 만들어 곳곳에서 사람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아이를 업고 오르는 이들. 부부겠지요.


내리막은 당연히 오르막보다 쉽습니다. 그러나 발을 접질리는 따위는 오르막보다 내리막에서 많은데, 그래서 잘 내려가기가 잘 올라가기보다 소중한 것은 등산길이나 인생길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길은 줄곧 그늘로 덮여 있습니다. 끄트머리 관광안내소까지는 보리암에서 2.2km라고 하는데 한 군데도 햇볕이 드러난 데가 없었습니다. 그늘에조차 푸른 빛이 스민 듯한데, 그 사이로 멀리 바다에서 갯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훑어오릅니다.

내려오는 데 1시간 30분 남짓 걸렸습니다. 이제는 오르막도 내리막도 아니고 평탄한 길이랍니다. 산자락을 끼고 도는 19번·77번 국도를 버리고 '남해대로 796번길'을 따라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다시 국도와 만나는 지점에서 양아리 들렀다 나오는 상주해수욕장 우회로(이른바 드라이브 코스)를 따르지 않고 곧장 바닷가로 나아갔습니다. 30분 정도 걸렸습지요.

상주해수욕장은, 모래밭도 그럴싸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채로 한가득 우거져 있는 솔숲이 진짜 핵심이랍니다. 햇살 아래서도 시원하던 바람이 여기 솔숲 들어오니까 닭살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솔숲에 자리 깔고 앉아 가져간 통닭구이 안주랑 더불어 소주와 맥주를 하나씩 사서 마시고는 한 시간가량 솔숲 바람으로 머리와 가슴을 헹굴 수 있었습니다.

보리암 가려면 오전에는 남해종합터미널에서 8시 한 대밖에 없는 군내버스(1400원)를 타고 종점인 복곡 제1주차장에 간 다음 마을버스(1000원)로 갈아타고 제2주차장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마을버스가 이 군내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사람 찼다고 그냥 가 버릴 때가 있는데 이번이 그랬습니다. 말로는 30분마다 간다지만 확인한 바로는 사람이 차지 않으면 안 간다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 아스팔트길을 30분 넘게 터벅거렸는데, 다행히 올라가는 택시를 만나 합승을 할 수 있었답니다.(물론 걸으며 누리는 재미가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차라리 보리암에서 운행하는 29인승 버스를 타는 편이 여러모로 낫겠다 싶습니다. 아침 8시와 9시, 오후 5시에 남해우체국 앞을 출발하는데, 따로 돈을 받지는 않는답니다.

상주해수욕장에서 읍내 나오는 버스는 소개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는 자주 있습니다. 2시 조금 넘어 탔더니 버스는 40분 정도 걸려 터미널에 와 닿았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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