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고성군 하이면 입암 마을에 가려면 고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 출발하는 군내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랍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통영행 시외버스를 진동 환승장에서 받아타고 7시 50분 즈음 고성 터미널에 내렸습니다.

입암으로 가는 군내버스는 8시 조금 넘어 들어오더니 사람들이 타자마자 곧바로 터미널을 빠져나갔습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입암 마을까지 1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직선으로 곧바로 달리자면 제법 지루할 법한 시간이지요.

그러나 버스 안에서 즐기는 1시간은 눈도 마음도 즐겁답니다. 잔잔한 바다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는가 하면 어느새 장면이 바뀌어 여느 마을과 다름 없는 시골 풍경으로 이어진답니다. 바다와 산과 들을 한 번에 보여 주는 단조롭지 않은 길입니다. 버스요금 3100원, 본전은 제대로 뽑은 기분입지요.

입암 마을 어항으로 내려가는 들머리 언덕배기에는 머위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습니다. 조금 세어진 느낌은 있었지만 머위는 어려도 늙어도 제각각 맛이 있습니다. 알싸한 쓴 맛이 입맛 돋우는 데는 제격이지요. 흙이 묻어 있는 채로 뿌리째 뜯어 배낭을 채웠는데도 돌아보니 언덕배기에 그대로 남아 있는 머위가 더 많았습니다.

입암 마을 둘레에는 이른바 주상절리(柱狀節理)가 세 군데 있습니다. 항구를 지나 동쪽 맥전포 쪽으로 가면 나오는 병풍바위와, 돌아나와 제전마을 쪽으로 가는 길 오른편에 서 있는 바위도 주상절리입니다.

주상절리는 기둥(柱) 모양(狀)으로 갈라진(節理) 바위라는 뜻이랍니다. 토종말로 옮기면 바로 '(기둥처럼) 선 바위'가 되는데 입암(立岩)이라는 마을 이름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입암 마을 근처 주상절리.


거니는 길은 입암 마을 병풍바위에서 공룡공원이 있는 제전 마을과 고성 공룡 테마 파크 바닷가와 상족암을 지나 하얀 팝콘처럼 꽃을 뒤집어쓴 이팝나무가 있는 덕명 마을까지입니다.

제전마을 앞 해변 풍경. 데크 따라 가면 한 모퉁이 돌아 맞은편에 상족암이 있습니다.


바로 옆에 '공룡박물관'이 있지만 이를테면 '전공 필수'도 '전공 선택'도 아니고 '교양 선택'일 따름입니다. 여기 주제는 바람과 바다와 공룡 발자국과 바위이기 때문입니다.

고성에서 눈에 담는 바다와 살갗으로 느끼는 바람은, 남해안의 표준입니다. 일렁이는 파도도 잔잔하고 나뭇가지와 잎을 흔드는 바람도 살랑거리는 정도로 맴돕니다. 길고 평탄하게 늘어진 해안선에 더해, 딱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만 때맞춰 솟아나는 바위들이 그 부드러운 느낌을 겹으로 입혀줍니다.

제전마을 앞 해변. 남해안의 표준입니다.


공룡 발자국과 바위는 그렇지 않습니다. 동해와 서해는 물론 같은 남해안에서도 다른 데서는 손쉽게 눈에 담을 수 없는 풍경들입니다. 물이 빠지면 엄청나게 많은 공룡 발자국들이 장하게 나타나겠지요.

공룡 발자국들을 충분히 눈에 담은 다음 가만히 눈을 감거나 뜨고서 조그맣게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를 듣노라면 공룡들 저마다 자기 목적과 필요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소리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상상력의 차이는 다르겠지만.

바위에 공룡 발자국 화석이 나 있습니다.

무리지어 피어 있는 갯메꽃.


상족암이 유명한 까닭은 숱한 세월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자연스러움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인공이 없습니다. 철썩대는 파도를 맞으면서 다듬어지기도 하고 파도에 깎이고 떨어져 나가 이리저리 맞뚫려 구멍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멀리선 본 상족암(위)과 가까이 당겨 찍은 상족암.

물이 빠져서 이렇게 안쪽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바닥이 파인 곳을 선녀탕이라 하기도 하고 맞뚫린 구멍을 두고는 코끼리 다리를 닮았다느니 어쩌고 하면서 상족암이라고도 한답니다.

선녀탕일까요? 선녀가 짠물에서 목욕을 했을 것 같지는 않고.


상족암에 닿았을 때가 오전 10시 30분 즈음. 이날 밀물이 가득찼던 아침 7시 48분에서 3시간가량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물이 알맞게 빠져나간 덕분에 뚫리고 파인 상족암 여기저기를 발로 디디면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구멍이 뚫린 채로 남아 있는 바위 덩어리는 오랜 세월 쌓인 지층을 켜켜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들머리 바위 벼랑에는 그보다 뚝심 센 커다란 나무들이 뿌리를 박은 채 바람에 가지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아래 두 장이 코끼리 다리처럼 보이시나요?


상족암을 지나면 산길이 이어집니다. 이 평탄한 산길은 풍성한 나무그늘과 시원한 바람에 더해 덕명 앞바다를 적당한 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어 또다른 즐거움을 선물로 준답니다. 길지 않은 산길은 상족암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이어져 사람들을 바닷가로 내려놓습니다.

산길에서 내려다본 모습.

상족암 유람선으로 내려가는 산길.


덕명 마을에는 커다란 이팝나무가 때마침 하얀 꽃을 뒤집어썼습니다. 옆에는 아마 팽나무인 듯싶은 둥치 굵은 나무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여러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품이 옛날에는 파도와 바람이 거셀 때 이들을 막아주는 노릇을 했던 마을숲이었지 싶습니다.

맞은편 언덕배기에는 '가마랑'이라는 숙박 시설이 있었습니다. 올라가 내려다보는 마을풍경은 낮은 곳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했습니다.

둥그렇게 둘러싼 해안선과 몇 척 안 되는 통통배와 나지막하게 들어앉은 집과 우람한 나무들이 어울려 한결 정겨운 풍경을 만들어 줬습니다. 사진으로 잘 담기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지만 눈으로만 담는 즐거움도 맛이 괜찮았답니다.

마을에는 고향식당횟집(055-834-5188)과 고성 건어물·편의점(055-833-6626)이 있습니다. 횟집은 100% 자연산을 썼습니다. 횟집 주인은 "그날 잡아와 바로 그날 내놓는다"고 했습니다.

아저씨가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아오면 아주머니는 장만해 내놓는 식입니다. 장어구이가 1kg에 2만8000원 했고 회는 3만 원짜리와 5만 원짜리가 있었습니다.


고기는 혓바닥에서 살살 녹았고 값도 비싸지 않았습니다. 소주와 맥주를 한 병씩 말아마시고 일어났는데 구운 장어가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이팝나무와 그 아래 고향식당횟집.


고성 건어물·편의점에서는 돌김 한 톳을 1만 원 주고 샀습니다. 집에 와 구워 먹어보니 바삭하니 맛도 좋았고 냄새 또한 싱그러웠습니다.

마을 들머리에서 1시 40분 즈음 군내버스를 타고 40분 남짓 걸려 터미널로 돌아왔습니다. 햇볕은 좀 따가웠으나 바다와 바람이 시원해서 좋은 나들이길이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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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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