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노무현에게서 발견된 세 번째 미덕

김훤주 2011. 5. 2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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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경남 김해 봉하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한 뒤로는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던 봉하 마을입니다. 가서 보니 지난 4년 동안 크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새로 들어선 건물이 많았으며 노무현 생가도 복원이 돼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많았습니다. 관광버스가 여럿 들어와 있었으며 이동식 탁자를 펼치고 술판을 벌이는 장면도 눈에 띄었습니다. 장사를 하는 데도 예전보다 많아졌습니다.

먼저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을 만나 이런저런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 처음 만났는데, 인상이 선량하고 겸손함이 몸에 익어 있었습니다. 가볍거나 날리지도 않았습니다.

올해 들어 관광버스 봉하 마을 찾은 최고 기록은 하루 308대라고 했습니다. 5월이 아니라 4월에 나온 기록인데요, 사자바위를 지키는 전경이 헤아린 숫자랍니다. 4월에 찾는 사람이 가장 많았고요, 5월은 오히려 줄었다고 합니다.

버스 옆을 눈여겨 보면 싣고 온 탁자를 펴서 차린 술판이 있습니다.

복원된 노무현 생가를 둘러보고 나오는 사람들.


그이는 봉하 마을을 하나하나 새로 만들어 나간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건물이나 시설은 둘레 풍광이랑 어울리게 배치하면서 들이세우고 장터도 만들어 지금은 흩어져 있는 노점들을 한 군데 모은다고도 했습니다.

길도 계속 다듬고 있다고 했습니다. 전체를 '대통령의 길'이라 이름 붙이고 지난해 1차로 '봉화산 길'을 냈고 올 5월 14일에는 2차로 '화포천 길'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둘을 이어서 걸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마을 위쪽 저수지가 있는 뒤로도 산길이 있는데 앞으로는 여기에도 줄이어서 길을 열겠다고 했습니다. 갈대와 물억새가 우거진 데가 있었는데 물길 공사를 하면서 망가졌다가 지금 복원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산에서 온 대학생과 얘기하는 김경수 사무국장.

페이스북친구들 등에게 대통령의 길을 설명하고 있는 김경수 국장.


그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이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경호원들과 함께 장화를 신고 톱과 괭이를 들고 산에 올라가 길을 나무 둥치를 자르고 가지를 치고 땅을 팠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사람 다니던 길이 있기는 했지만 그동안 다니지 않아 다 막혀 버렸는데 이렇게 해서 길을 새로 열었다고 했습니다. 봉화산에 있는 산길이 이제는 모두 통하도록 돼 있다고 했습니다.

또 사자바위 있는 데는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여기는 알리지 말고 우리끼리만 다니자"고 한 장소인데, 지난해 봉화산 길을 열 때 먼저 포함시켰다고도 했습니다.

김경수 국장은 또 화포천을 살리는 데도 노무현 대통령이 몸소 나섰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깨끗해졌지만 2008년에는 쓰레기가 엄청 많았다고 했습니다.

가전제품처럼 몰래 갖다버린 쓰레기, 낚시꾼들이 버린 쓰레기, 법으로 금지했지만 실제로는 쓰고 있었던 그물들까지.
어떤 때는 하루에 네 번 그물을 찾아내기도 했답니다.

그 때마다 칼로 그물을 찢고 물고기를 풀어준 뒤 김해시에 전화해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그물 하나에 보통 20~40마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추모의 집 앞에 마련된 시설에서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 왼쪽에 노무현 웃는 그림이 있습니다.

추모의 집 영상실 들머리. 여기서는 노무현 생전 연설과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어울려~~"


저는 김경수 국장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무현의 미덕을 하나 더 알게 됐습니다. 저는 그동안 노무현의 첫째 미덕은 대통령 당선 자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비주류와 소수임을 포기하지 않고 이룬 성과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미덕은 그이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이라는 점에 있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그이 말고 역대 대통령 가운데 사람이라 해도 괜찮을 존재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그런 미덕에 이번에 김경수 국장의 말을 듣고 '능소능대(能小能大)'를 노무현의 세 번째 미덕으로 더하게 됐습니다. 능소능대란, 능히 작아지고 능히 커지는 것인데요, 달리 말하자면 작을 때는 작고 클 때는 크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능소능대는 이른바 군자의 덕목이기도 합니다. 크고 좋고 빛나는 일만 잘하고 좋아해서는 군자라 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조그맣고 어렵고 때묻는 일이라도 주어지면 기꺼이 해치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고무 장화를 신고 목장갑을 끼고 호미나 낫이나 톱이나 괭이를 들고 나가 노동을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많고, 그렇게 시키기만 한들 누구 하나 잘못이다 할 사람이 없는데 말입니다.

저조차도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서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그냥 말로 하겠지, 이렇게만 여겼을 따름입니다. 본인이 몸소 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은가요? ^^)

동의하지 않는 분도 많이 있겠지만, 저는 이처럼 봉화산 산길 내는 일이나 화포천 청소하는 일, 그리고 봉화 들판에서 유기농을 하는 일을 본인이 생색내기 수준을 넘어서 몸소 적극 나서서 했다는 점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대단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거제에 생가가 있는 누구처럼 대통령 노릇 그만둔 뒤에도 끊임없이 보도 매체를 통해 세간의 관심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바로 이런 실천이 가장 힘이 세다는 사실을 저는 알거든요.

진리로 가는 길이 이 길이다 하고 천번만번 떠들어대는 것보다 바로 그 길로 두말없이 걸어가버리는 것이 훨씬 힘이 세다는 얘기입지요. 그렇게 떠들어대는 이들은 대부분 사기꾼이거나 자기 믿음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겁쟁이일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

노무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어쩌면 노무현에게는 대통령이나 농부나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대통령은 크고 농부는 작다, 대통령이 하는 일은 중요하고 농부가 하는 일은 사소하다 이런 구분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은 능대능소했습니다. 게다가 클 때도 뻐기지 않았고 작을 때도 움츠리지 않았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비주류로서 대통령에 당선됐고 괴물이나 로봇이 아닌 최초 인간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못지 않는 훌륭한 미덕입니다.

물론 여기에 더해 부쟁선(不爭先)까지 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이 부쟁선도 군자의 덕목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요, '앞(先)을 다투지(爭) 않는다(不)'는 뜻이랍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상대방에게 역부족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가 경쟁을 그것도 공정하지 못한 경쟁을 더욱 키우는 한-미 FTA를 추진한 사실을 두고 해보는 생각입니다.

만인을 경쟁으로 내몰고 대부분을 파멸로 이끄는 한-미 FTA의 속성을 알면서도 그게 대세이며 그 경쟁에서 탈락하는 이들에게는 복지를 강화해 실행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다가설 문제는 아마 아닐 텐데 말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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