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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촛불집회와 여성의 하이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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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커지는 촛불집회를 보면서, 저는 엉뚱하게도 ‘올해 하이힐 매출이 떨어지겠구나.’ 짐작을 했습니다. 촛불집회에 하이힐을 신고 오는 사람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이힐이 움직이는 데 불편한데다가 오래 신으면 발과 다리와 허리가 아프기도 하답니다.

물론 촛불집회에 하이힐을 신은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훨씬 험한 노동자대회 같은 데서도 하이힐 신은 이는 종종 눈에 띕니다. 하이힐을 한 손에 들고 맨발로 행진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습니다. 스타킹은 벗어서 손가방에 넣었겠지요.

그러나 이런 사정만으로 하이힐 매출이 떨어지리라 예상한 것은 아닙니다. 아마 하이힐이 서유럽에서 만들어진 과정과, 인기가 있었던 시대의 배경 따위를 나름대로 알지 못했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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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 광고 사진

귀족계급의 이상은 무위도식 그 자체

제 보기에 엄청난 학자 에두아르트 푹스(Eduard Fuchs, 독일, 1870~1940)가 쓴 <풍속의 역사>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여기 낱말들은, 도덕 관점에서 보면 절대 안 되고 학문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야기가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기 십상입니다.

푹스는 도서출판 까치가 펴낸 이 책 87년판 3권 ‘색(色)의 시대’에서 17~18세기 절대주의를 다룹니다. 당시 귀족은 “다른 계급 위에 걸터앉아” 있지, 노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육체노동뿐 아니라 정신노동조차 비천하고 불명예스러운 것이었습니다.

3쪽에서 푹스는 “앙시앵레짐은 무위도식 생활을 장중하게 보내는 인간의 전형적 몸매에서 참으로 귀족적인 아름다움의 이상을 창조하고 발견했다. 사치한 동물, 관념화된 게으름뱅이가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 떠받들어졌다. …… 무위도식은 옛날부터 귀족의 이상이었으며, 이 이상은 어떤 시대에든 적어도 귀족계급에게는 남아 있었다.”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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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어쩌면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 “다른 계급이라도 그들이 정신적으로 귀족에게 기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정치적으로 압박받는 동안에는 이런 귀족적 이상이 그들에게도 줄곧 남아 있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정치적 압박’이, 노골 폭력적인 이른바 ‘탄압’을 주로 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위도식은 사람의 전체 모습을 부분으로 분해한다

푹스는 5쪽에서 무위도식은 게으름뱅이를 낳고 게으름뱅이는 세련된 향락가가 됐으며 향락가는 “당연히 향락 기회를 계속 풍부하게 하려고 애쓰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남자는 여자를, 전체로 보지 않고, 작은 발, 섬섬한 손, 귀여운 유방, 날씬한 팔이나 다리 따위로 나눠 봤다.”는 것입니다.

푹스는 이어 64~65쪽 ‘구두굽의 역할’에서 “하이힐은 가장 혁명적인 성공 가운데 하나였다.”고 합니다. “하이힐이 자세 전체를 바꿨다. 배가 들어가고 가슴이 나온다. 넘어지지 않게 몸을 뒤로 젖혀야 하는데, 이 때문에 엉덩이가 튀어나와 풍만함이 두드러진다. 무릎을 굽히면 안 되므로 자세는 더욱 젊고 진취적으로 보인다. 앞으로 불쑥 나올 수밖에 없는 유방은 터질 듯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푹스는 65쪽에서 이로써 절대주의 시대 귀족의 핵심 과제, “인체 각 부분의 아름다움만을 눈에 띄게 하려는 목적은 거의 완전히 해결됐다.”고 평합니다. “유방이나 허리-엉덩이 부위를 일부러 내미는 것은 육체의 에로틱한 부분에 대한 과시였다.”, “남자들은 먼저 그 부분들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밖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하이힐의 고향은 이탈리아 도로의 더러운 진흙탕

푹스에 따르면, 하이힐의 조상은 스페인 무어 여자들이 신던 굽 높은 나무신입니다. 이탈리아서도 비슷한 조콜리(zoccoli:나무신)가 유행했습니다. 굽 높이는 때로 12~15인치나 됐답니다. 하이힐 쓰임새는 두 가지였습니다. 신을 더럽히지 않고 깊은 진흙탕을 건너는 일과 신체 특정 부위의 곡선을 강조하는 일니다.

돌을 깐 높은 인도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고, 도로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진흙탕이 됐는데 말(馬)이 거의 무릎까지 빠질 정도여서 가축이나 사람이 빠져죽기도 했답니다. 16세기에도 사람들은 똥이나 쓰레기를 거리에다 버렸으며 대표 궁정인 베르사유에도 변소가 없었을 정도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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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풍속의 역사&gt; 3권 82쪽 그림

이런 실용 목적은 ‘특수한’ 목적에 바로 점령이 됩니다. 여자들은 거리에 진흙탕이 없을 때도 하이힐을 계속 신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하이힐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겉모양이 참으로 투박한 데에서 좀더 보기 좋은 쪽으로 말입니다.

푹스는 하이힐을 두고 70쪽에서 “여자가 무엇보다 먼저 성의 도구로 기능을 다하려 할 경우, 또는 그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는 일이 여자에게 가장 중요할 경우, 그로테스크할 만큼 높은 하이힐은 언제나 여자의 끊을 수 없는 길동무가 된다.”고 결론 삼아 말했습니다.

이명박의 대한민국, 또 다른 절대주의 시대

저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한 번씩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세상에 대한 돈의 지배가, 돈에 대한 인간의 숭배가, 이토록 절대적인 시대가 없었습니다.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이 이런 현상을 대표합니다. 앞선 대통령인 김영삼이나 김대중이나 노무현에게는 그래도 적든 많든 다른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명박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이 천박해도 좋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여기서 ‘경제’는 ‘경세제민’이 아닙니다.-뿐입니다. 사기꾼 거짓말쟁이도 좋으니 살림만 풍요롭게 해 다오,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부자가 사는 목표가 됐습니다. 부자는, 놀고먹어도(=무위도식해도) 되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피지배계급 대부분은 지배계급을 따라 이처럼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아놓고 부자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푹스 식(式)으로 말하자면, “귀족적 이상(무위도식)이 그들(피지배계급)에게도 줄곧 남아 있다.”입니다.

물론 다른 원인들도 있고 또 그것들이 작지는 않겠지만, 이런 까닭 때문에도 저는 하이힐 굽이 갈수록 높아지고 하이힐 또한 갈수록 많이 팔리리라 나름대로 혼자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푹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이힐은 여자-에로틱한 힘으로서 숭배 대상이 되는 여자-의 지배가 사회생활에서 승리를 거둘 때마다 점점 높아져 갔다.”

향락과 무위도식은 대다수 구성원의 고통이 바탕

촛불집회가 커지면 그렇지 않게 됩니다. 촛불집회에 참가하면 남자든 여자든 자기 힘으로 자기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촛불집회를 통해 향락이나 무위도식 말고 다른 소중한 가치가 있음이 확인되고, 촛불집회를 통해 부자의 향락과 무위도식이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고통(여기서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전제 삼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무위도식과 향락을 좇는 몸짓이 조금이나마 줄지 않을까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푹스는 70쪽 ‘구두굽의 역할’ 마지막에서 “반면 여자가 개인으로서 또는 계급으로서 의식이 있는 인간이 되면 금방 굽이 낮은 신을 신는다. 왜냐하면 굽이 낮은 신을 신는 자체만으로도 여자는 겉모습에서 바로 다시 전체가 되며 유방, 옥문(玉門), 허리-엉덩이 부위의 삼위일체, 말하자면 남자의 성욕을 끊임없이 자극하려고 노리는 성기로서의 역할을 그만두기 때문이다.”고 적었습니다.

김훤주

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 상세보기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 미래M&B 펴냄
캐리커처에 포착된 여성들의 삶 <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는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캐리커처에 담긴 여성들의 삶을 살펴보는 책이다. 여성 문제를 다룬 다양한 캐리커처 500여 점을 바탕으로, 유럽 여성의 성과 결혼, 모드와 여성, 여성의 직업, 역사적 여성 인물들, 여성해방운동 등 여성의 풍속과 사회상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사유재산에 기반을 둔 모든 사회질서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사회 문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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