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선물은 대가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스승의 날 오고가는 선물을 두고 해마다 말들이 많습니다. 이날 아예 쉬는 학교도 있고, 또 스승의 날을 학년말로 옮기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이렇게 말이 많은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으뜸은 이른바 ‘대가성’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자기가 기르는 아이를 맡고 있는 선생님에게 크든 작든 선물을 건네면서 많든 적든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면 이를 듣는 다른 사람들이 쉬 믿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이는 눈길이라도 한 번 더 던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물한다 하고 다른 이는 남들 다 하니까 자기만 안 했다가는 미운털이 박힐까봐 그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두 ‘대가를 기대한다.’의 다른 표현일 따름입니다.
지금처럼 학기 한가운데 스승의 날이 있는 이상, 언제나처럼 5월 15일 앞뒤해서 오가는 선물이 ‘대가성’ 논란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선물은 대부분 ‘현직’ 선생님을 대상으로 삼아서, ‘현직’ 학생의 보호자들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하려면 평가가 끝난 봄방학 즈음에
경남도민일보 자료 사진
학년말에, 그러니까 겨울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했다가 다시 봄방학을 할 때 즈음에, 자기가 기르는 아이 선생님에게 선물을 하면 대가성 의심은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날’에 선물할 때와는 다른 즐거움을 덤으로 누릴 수도 있습니다. 선물을 받은 선생님의 감동이 돌아옵니다.
저는 경험으로 알았습니다. 제 아내는 몇 해 전 봄방학을 며칠 앞둔 즈음에 학교 찾아가 아이 선생님에게 조그만 책 한 권이랑 1만원 짜리 문화상품권 두 장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놀라워 하면서 환하게 밝아지던 선생님의 표정을 제 아내는 몇 번이고 되풀이 말했습니다.
‘스승의 날’은 원래 취지대로 돌려놓자
이 즈음에서, ‘스승의 날’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한 번 훑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 함으로써 원래 취지에 비춰 지금 모습이 어떻게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날은 1964년 청소년 적십자단원들이 만들었습니다.
당시 현직에 있지 않고 교단에서 물러난 스승 가운데 특히 질병 따위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분들을 찾아 위문하고 도움을 드리는 데 알맞은 날로 5월 15일을 꼽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박정희 정권에 73년 없애졌고, 그것이 또 전두환 정권에 82년 되살려져 올해로 27회를 맞고 있습니다.
처음 만들어진 취지를 따라, 스승의 날 5월 15일은 그대로 두되, 지금 담임을 맡고 있는 선생님이 아니라, 예전에 자기를 보살펴 준 적이 있는 그런 스승을 찾아가 기리고 보살피는 날로 삼으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현직’ 학생 또는 그 보호자가, ‘현직’ 선생님을 기리는 스승의 날은 사실 필요도, 의미도 없습니다. ‘현직’ 선생님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평소에도 충분히 존중을 받기 때문입니다.)
현직 교원에 대한 스승의 날 표창은 사라져야
이렇게 되려면 교육 당국이 먼저 분위기를 만들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교육청과 교육과학부가 이 날에 맞춰 여태 행해 왔던 현직 선생님에 대한 표창 행사를 연말로 미루든지 하고 그만둬야 합니다. 대신 5월 15일에는 퇴직한 선생님 가운데에서 여전히 빛나는 이를 모셔서 기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좋을 것입니다.
물론 제 얘기가 꿈 같이 들릴 것입니다. 정부 당국이 올해도 이런 표창을 했을뿐더러 이를 두고 재검토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남만 해도 ‘제27회 스승의 날’을 맞아 오늘 현직 교원 765명이 이런 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저도 제 얘기대로 바뀌리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금 스승의 날 현직 선생님에게 주어지는 이른바 ‘선물’의 폐해가 전체적으로 볼 때 작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 요지부동일 것 같은 현실이 조금이나마 달라지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제 얘기에 작으나마 타당한 구석이 있다고 믿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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