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일상을 지내다보면 제 존재를 배반하는 상황에 놓일 때가 어쩌다 있습니다. 그러면 황당한 느낌을 들게 마련입니다. 물론 중요하고 결정적인 그런 국면은 아닙니다. 일상이지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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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송장(送狀)들

요즘 들어 지부에서 물품 발송을 자주 하다보니 택배 직원이 사무실을 자주 드나들게 됐습니다. 며칠 전 이 사람이 무엇 물어볼 일이 있었는지 “사장님!” 하고 저를 불렀습니다.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술집이나 밥집에서도 듣는 소리입니다. 그런 데서는 내가 노동자인줄 모르니까 그냥 대충 부르는 것이야, 여겼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쩌다 한 번씩은, ‘저는 노동잔데요.’ 대꾸를 하기도 합니다.

이 날은 느낌이 좀 야릇했습니다. 저는 노조 지부에서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사용자와 맞서는 조직인데, 택배 직원이 제가 노조 대표자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리 하니까 그랬던 모양입니다.

아마 택배 직원은 자기가 드나드는 거의 모든 거래처에서 남자들에게는 대부분 ‘사장님’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장에게도 사장이라 하고 노동자에게도 사장이라 하고 자영업자에게도 사장이라 하며 비정규직에게도 사장이라 하고 실업자에게도 사장이라 할 것입니다.

사장이라는 낱말이, 우리 사회 상대방을 이르는 다른 모든 호칭을 잡아먹었습니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이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는 데에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사장이라는 낱말의 이같은 지배는, 몇 해 전 크게 인기를 얻었던, 부자 되세요 하는 텔레비전 광고와 함께, 사람들의 돈에 대한 ‘일상적인’ 숭배와 돈의 사람에 대한 ‘일상적인’ 지배의 거의 완벽한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장’은, 돈벌이가 목적인 결사의 우두머리입니다. 돈벌이가 목적인 결사에서는, 더욱이 그것이 돈이 주인인 자본주의 사회 안에 놓여 있을 때에는 돈을 태우는 사장이 대체로 모든 의사 결정권을 행사합니다. 사람을 고용하고 나아가 고용된 이들을 당연히 지배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사장이면서 노동조합 대표를 맡고 있다 가정한다면, 저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과 활동을 할 개연성이 아주 높은 나쁜 놈이기 십상입니다.

제가 예민해서 그런 구석도 분명 있겠지만, 바로 이런 때문에 제가 사장이라 불렸을 때 저는 제 존재가 배반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좀 황당했습니다.

2.
이처럼 바깥에서 일어난 상황이 제 존재를 배반할 때도 황당하지만, 안에서 터져나온 상황이 존재를 배반할 때는 더욱 황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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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터 경남도민일보도 개념상 지방방송에 들지요

“지방 방송 꺼라!”는 말이 그 하나입니다. 다들 아시는대로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가 전체를 상대로 얘기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수군대면서 시끄럽게 굴 때 하는 말이지요.

이런 말을 지역 매체에 종사하는 이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쓴다면 어떻겠습니까? 자기 존재를 바탕에서부터 배반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남들이 지방 방송 끄라고 아무리 다그쳐도 끄지 말아야 할 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이리 말할 때 저는 기가 막힙니다.

저희는 ‘지역’ 신문이나 ‘지역’ 방송이라 하지만, 아직은 일반 대중이 주로 쓰는 말이 ‘지방’이니까 그대로 한다면, 지방 방송이나 지방 신문에서 밥 벌어 먹는 사람들이 모인 수련회나 회의 자리에서도 저는 올 들어 두 차례나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게 이상하다고 말씀을 해 주신 이는 오히려 지방 방송이 아니라 서울(수도권) 방송에서 밥 벌어 먹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같은 역전 현상이 우습지 않습니까? 저는 무척 황당했습니다.

더구나 그 말을 한 ‘지방’ 매체 종사자의 자(自)의식이, (물론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서울’ 방송 종사자의 타(他)의식보다 못하다는 데 생각이 미치니까 한 번 더 기가 막히면서 너무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이것도 그러니까 ‘일상’입니다. 일상은 중독, 또는 환각입니다. 중독 또는 환각은, 자각(自覺) 증세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무섭습니다. 스스로 알면 고칠 텐데 스스로가 제대로 느끼지를 못하니 백날 가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저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제가 생각하는 바를 틈나는대로 떠들어대는 수(手)말고는 말입니다. 제가 권력이 있어서 이래 부르면 안 돼! 법률로 정할 수 있지도 못하고, 또 그리 하는 바가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어쨌든 눈치 보지 않고 떠들어대다 보면, 여러 사람들 가운데 고개를 끄덕여주는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해서 함께해주기까지 하다 보면, 지금 같은 잘못된 표현이 버려지고 가장 걸맞은 이름이 찾아져서 쓰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사장인지 아닌지 모르는데도 굳이 사장이라 이르는 대신 자기한테는 손님이니까 그냥 ‘손님’이라 하는 일상이 되는 셈입니다. 또, 그리 일러도 불편해하거나 기분나빠하는 이가 자꾸자꾸 줄어드는 데로 나아가겠지요.

물론 영업의 기초가 바로 상대방 마음을 사로잡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르치지는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예상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곳곳에서 사장이 넘쳐나는 판국에서는 이런 소박한 호칭이 오히려 산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지방 방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 방송’은 이른바 전체 흐름과는 떨어져서 엉뚱한 얘기를 할 때 씁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지방 방송’의 맥락을 가만 더듬어보면, 이 ‘전체’가 ‘중앙’과 ‘지방’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와 동떨어진 얘기라면, 중앙-지방처럼 붙어 있는 한 덩어리라는 느낌을 주는 낱말을 쓰지 않는 편이 나을 듯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 대립되는 비(非)우리로 말입니다. 구체적인 낱말로 나타내 본다면, “어이, 거기 딴 나라 방송 좀 꺼!!!”, 이렇게 되겠지 싶습니다.

저의 일상이 저의 존재를 배반하지 않는 그런 나날들만 제 앞에 놓여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러면 그것은 일상이 아니겠지요.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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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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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상 2008.06.06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상이 존재를 배반하지 않으면, 존재가 일상을 배반할 것이다.

  2. 맑음 2008.06.19 0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시방에서 카운터를 보는 저에게도 손님들이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진짜 사장은 따로 있고 내가 단지 알바임을 아는 경우에도 말이지요.
    우리 사회에서 '사장님'이란 호칭은 그저 '나는 지금 당신을 어느 정도 예우해 주노라' 하는 의사표시에 불과하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