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우리 집 달래는 아름답고 힘도 세다

김훤주 2010. 9. 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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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현지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그러니까 2005년 봄 창원 주남저수지 둘레에 딸과 함께 나들이 갔다가 욕심을 내어 담아온 달래가 몇 뿌리 있습니다.

저는 이 녀석이 못내 시들시들해서 곧 죽어버릴 줄 알았습니다. 담아올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화분에다 심으니까 곧장 그리 됐습니다.

그러나 달래가 쉬이 자기 목숨을 거두지는 않았습니다. 비실거리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저는 녀석이 안쓰러웠지만, 원래 담아왔던 데에다 내다 놓지도 못했습니다. 어떤 분이 이르기를, '집에서 키우는 동안 야성(野性)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바깥에 내어놓으면 바로 죽고 만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름에 창문 밖에 내어놓았습니다. 만약 죽을 조짐이 보이면 바로 거둬 넣으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내어놓을 때 녀석들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옆으로 비실비실 기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두어 달 지난 무렵 어느 날 문득 내다보니 이 녀석들이 꼿꼿하게 치켜 서서 하늘을 향해 대어들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안으로 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라기도 잘 해서 안에 있을 때보다 한 뼘은 더 자란 것 같았습니다. 지난 네 해 동안 자란 것을 모두 더해도 올 여름 한 철 자라난 길이보다 못했습니다.

게다가 꽃까지 피어났습니다. 여태까지 이 녀석들은 꽃봉오리 맺는 것은 시늉조차 하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더욱이 올해는 날씨도 사나웠습니다. 폭염은 날마다 이어졌고, 그러는 틈틈이 태풍이 왔다가곤 했습니다. 비도 자주 많이 뿌렸고 바람도 세게 자주 불었습니다.

창 밖으로 내몰린 이 녀석들이 겪었을 어려움이 절대 작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훌륭하게 자랐습니다. 씨앗을 퍼뜨릴 준비까지 해내고 말입니다.

퍼뜩, 생각이 났습니다. 힘 셈이 먼저냐? 아름다움이 먼저냐?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풀도 마찬가지구나……. 비바람 속에서, 달래는 흔들리고 또 흔들렸을 것입니다.

이런 흔들림을 겪으면서 달라졌습니다. 흔들리는 과정은 달래가 단련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흔들림을 겪어냈으니 달래가 아름답습니다.

뒤집어서, 흔들리는 과정을 겪지 못하면 아름다움을 절대 얻지 못합니다. 달래가 집 안에 있었을 때를 생각하니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은 흔들림을 겪어낸 결과입니다. 흔들림에 휘둘려 버렸다면 절대 아름다움을 자기것으로 삼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아름다움과 힘 셈 사이에 어떤 인과 관계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힘이 세어져서 흔들림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달래는 절로 저렇게 아름다워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이 뒤에 서고, 힘 셈이 앞에 섭니다. 힘 셈이 한 발 앞서 가면서, 아름다움과 동행(同行)을 합니다.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스스로 힘을 길러 자기를 흔들리게 하는 존재들을 다스리지 못하면 절대 아름다워질 수 없는 노릇이구나…….

내가 종종 심하게 흔들리지만, 어떨 때는 꺾어질 정도로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괴로워만 할 일은 아니구나…….

달래를 앞에 놓고 보면서, 제가 오늘 괴로움은 하나 내려놓았고, 즐거움은 하나 얻어 가졌습니다.

그렇다 해도 달래를 너무 가까이 두지는 않겠습니다. 아무리 사랑스럽고 고마운 존재라 해도, 너무 가까이 두면 너무 멀리 두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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