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낙동강 모래톱만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훤주 2010. 10. 4. 09:44
반응형

저는 고향이 창녕입니다. 제가 사는 창원에서 고향으로 가는 길이 여럿 있지만, 저는 창원 북면이나 동읍을 거쳐 본포다리를 건너 창녕으로 가는 길을 좋아했습니다.

본포다리를 건너 가다 보면 눈에 뜨이는 유장한 모래톱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래톱은 아주 길고 커서 한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또 마치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기도 해서, 옛날에는 이런 모습으로 있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창원 북면이나 맞은편 창녕 부곡면에서 오래 사신 이들에 따르면, 50년 단위로 이쪽 저쪽 옮겨 다니는 존재랍니다.

그런데 요즘은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으면 이쪽으로 걸음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리 한가운데 자동차를 세워놓으면서까지 내려서 이리저리 거닐기도 하고 바람도 쐬고 오래 내려다보기도 했습니다만.

본포 모래톱의 원래 모습. 사진 오른쪽으로 한참 길게 나가 있습니다.


아시는 이들은 아시겠지만, 이명박 선수의 이른바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토목 공사가 저질러지면서 여기 이 모습도 한꺼번에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올해 6월 들어 여기에 삽을 대기 시작했는데, 가장자리에 흙으로 울타리를 친 다음 그 안쪽에서부터 야금야금 불쑥불쑥 모래를 걷어내는 것입니다.

참 아픕니다. 자기 자동차를 아끼는 사람은, 길이 울퉁불퉁해서 차 바닥이 긁힐 때면 자기 가슴도 긁히는 것처럼 아프다고 하더니, 제가 지금 그렇습니다.

이명박 선수는 저기 저 모래톱을 다 걷어내고도 모자라 강 바닥을 깊이 6m까지 파낸다고 합니다. 무엇을 위한 준설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운하는 아니라고 합니다만.


7월 9일 찍은 사진들입니다. 엄청나게 파냈습니다. 둘레 테두리가 원래 크기입니다.


저기에는 모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아름다움이 저기 있고 여기 둘레 터잡고 살던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있습니다. 또 얽힌 사연도 없지 않을 테지요.

게다가 식물이나 동물로 대상을 옮겨 따져보면 또 엄청나게 많겠지요. 꼬물거리는 벌레들에서부터 날아다니는 새들까지, 하늘거리는 강아지풀에서부터 몽글몽글 버들까지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저 모래톱과 함께 사라지고 있습니다. 문화와 생명이 함께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조용하게 시나브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난폭하고 시끄럽게 한꺼번에 통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7월 18일 장마로 물이 불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모래톱과 거기 터잡고 살던 갖은 생물들이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사람-자본의 탐욕만이 여기를 독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연을 돈벌이 대상이나 놀이터로만 여기는 오만방자함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문수 스님 소신공양 낙동강 산골재가 치러지던 8월 8일 찍은 사진들입니다.


입적 70일 맞아 창원 동읍 본포리 낙동강 선원에서 8월 8일 치러진 '문수 스님 소신공양 낙동강 산골재' 당시에도 이처럼 본포 모래톱에 대한 삽차의 삽질은 멈추지 않고 있었습니다.

줄줄이 들어오고 줄지어 나가는 저 덤프차들을 보면서, 멀리 산골재를 치르는 자리까지 들려오도록 굉음을 울리며 삽질을 해대는 삽차를 보면서 생각에 빠졌습니다.

언젠가 저 자연이 어떻게든 앙갚음을 할 텐데, 당장 파업은 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러면 그 때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되고 말는지를 막연하게나마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저기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는 저 모래톱 한 더미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미래 우리의 평온한 나날들까지도 저 삽차들의 삽질에 실려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졌습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