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남아메리카 원주민은 불쌍한 존재랍니다.

"한반도보다 40배나 넓은 대륙을 다 빼앗기고 학살되거나 아니면 이른바 '보호구역'에 갇힌 바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들 주식이었던 들소(buffalo)도 한 때 6000만 마리를 웃돌았으나 총잡이들에게 전멸되다시피 해 겨우 3000마리로 줄어 멸종위기 동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이들 불쌍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원래 이름까지 잃고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일제강점기 우리가 '조센징'이라 불리며 열등 국민 취급을 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1492년에, 덜 떨어진 인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라왁(Arawak)이라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인도(Indies)라 하고, 그 원주민을 인디언(Indian)이라 한 이래로, 북남미 토착민들은 인디언이 되고 말았답니다.

"아브나키, 모헤간, 알곤킨, 델라웨어, 오지브와, 미아미, 일리노이, 아씨비오네, 샤이엔, 칸사, 위치타, 키오와, 쇼쇼네, 코만체, 아파체 피마, 파파고, 나바호, 미아두, 칼라푸야, 야키마, 크로우, 아라파호, 포오니 등등 수많은 토착민 나라의 고유명사에다가 인디언 자를 붙인다.

이는 마치 우리를 가리켜 코리안 인디언, 일본을 저팬 인디언, 중국을 차이나 인디언……이라고 함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인디언은 불쌍한 존재가 진정으로 아니랍니다.

그이들 인디언도 백인과 운명이 같고 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인디언 추장 1854년 두아미쉬-수쿠아미쉬 족 추장 시애틀이 한 말이 증거입니다.

미국 피어슨 대통령이 땅을 팔라고 한 데 대한 그이의 연설에 나옵니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총을 들고 와서 땅을 빼앗을 것임을 너무나 잘 알"면서 한 얘기이긴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아버지가 패배의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전사들은 패배한 이후 수치심에 사로잡혀 헛되이 나날을 보내면서 단 음식과 독한 술로 육신을 더럽히고 있다. ……

그러나 내가 왜 우리 부족의 멸망을 슬퍼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사람들로 이뤄져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사람은 바다의 파도처럼 밀려 왔다 밀려 간다.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내가 왜 우리 부족의 멸망을 슬퍼해야 하는가' 하는 되물음에는, 제가 보기에, 깊은 깨달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영역이냐 아니냐 하는 깨달음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어찌하지 않겠고,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어찌하겠다는, 그런 체념이랄까 달관이 있습니다.

연설은 이어집니다. "그대들은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듯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하느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우리에게나 백인에게나 똑같은 것이다.


이 땅은 하느님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마구 파헤치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른다. 계속해서 그대들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그대들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대들이 멸망할 때 그대들을 이 땅에 보내주고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그대들에게 이 땅과 원주민을 지배할 권한을 허락해 준 하느님에게 그대들은 불태워져 환하게 빛날 것이다."

단순한 분노로, 쫓겨나 보호구역으로 옮겨가는 운명이 슬퍼서 부르짖는 그런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이들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 가치관이 여기에 녹아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옳음이 변증됐고 이제 빛을 환히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불쌍한 존재일 수 있겠습니까.

"초원에서 썩어가는 수많은 물소를 본 적이 있다.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아 죽이고 내버려둔 것이다. 동물에게 일어난 일은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다." 느낌이 섬뜩하지 않습니까.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자식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우리는 알고 있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을."

'아메리카 원주민 속에 전승되는 영혼의 노래' <강은 거룩한 기억이 흐른다>를 엮고 옮긴 신명섭은 말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시를 통해 느끼는 것은 거의 극단적이라 할 차원의 '순수함'"이라고요.

구름, 눈과 비, 동물과 식물 같은 온갖 자연 현상을 소재나 주제로 삼지 인공물은 나오지 않는답니다. 거기에 더해서, 이른바 '문학'이라 할만한 미사여구 따위 꾸밈도 없습니다.


아파체 추장 제로니모의 노래입니다.

오 할 레
오 할 레
오비즈하예
시치 하다히야고 니니야

오 할 레
오 할 레
차고 데기 날레야
아~~ 유 휘 예!

오 할 레
오 할 레
오 할 레
오 할 레
나 공중으로
바람 타고
머나먼 저 하늘 향해 날아 오른다

오 할 레
오 할 레
거기 가서 성소 찾으려고
아, 이제 내 세상도 바뀌었어
오 할 레
오 할 레!

대대손손 전승되던 이 노래를 제로니모는 어릴 적 배워가지고 '큰 힘을 주는' 자기것으로 삼았습니다.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가 최고 존재인 '유순'께 가 닿아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평생 자기 땅과 부족의 자유를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은 제로니모는 세상이 바뀌었음을 뼈저리게 겪고 그 느낌을 여기 담았습니다. 되풀이 읊어내는 '오 할 레/ 오 할 레'라는 주술에 담겨 있는, 우주에 가득한 힘을 저는 믿습니다.


치퍼와족의 것이라는 '천둥의 노래'는 짧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파르르르 떨리는 감수성까지 나타나 있어 저는 놀랍습니다.

나는 가끔
바람에 실려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에
나 스스로를 애처로워하며
돌아다닌다

마지막, '돌아다닌다'는 말은 제법 사무치기까지 합니다.

추장 댄 조지 살라시(1899~1981)는 '모든 게 끝났구나!' 탄식했습니다. 그렇지만 인디언은 불쌍하지 않습니다. 인디언이 불쌍하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피붙이가 불쌍합니다.

옛날 것 뭔가를 우리 손자에게 주고 싶었다
녀석에게 늑대 성가를 불러주마고 했다
그 노래 중에는 내가 늑대 예식을 거행하는 동안
늑대가 우리한테로 와서 식을 주관해달라고
호소하는 대목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손자와 늑대 사이에 평생 가는 인연이 생기라고
나는 노래를 불렀다
내 노래 속에는 심장이 박동할 적마다
간절한 소원이 담겨 있었다
내 말에는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힘이 담겨 있었다

나는 노래를 불렀다
내 손에 창조와 연결되는 가문비나무 씨 한 알을 거머쥐었다
나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가는 햇빛을 타고 흘러가고
내 눈에는 사랑이 반짝였다

내 노래가 끝난즉 늑대의 답이 궁금하여 온 세상이 다
우리와 함께 들었나 싶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겸허하지만 한껏 갈구하는 마음으로, 목이 아파 쉴 때까지

아뿔싸, 나는 깨달았다
내 성가를 들어줄 늑대가 없다는 것을
살아남은 늑대가 하나도 없구나!
내 가슴엔 눈물이 가득 찼다
과거, 우리의 과거에 대한 믿음을 손자에게 물려줄 수가 없어
나는 말었이 울었다
모든 게 끝났구나

앙투안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저는 여기 이 노래에서 봅니다. 자기를 길들여준 여우를 잃어버린 어린 왕자가, 자기 별 소혹성 B-612호로 돌아갔던 어린 왕자가, 여기 재림해 있는 것입니다. 

여우가 늑대로 바뀌어 있을 뿐입니다. 여우와 헤어진 뒤 자기 몸을 버리고 뱀의 힘을 빌려 사막에서 쓰러짐으로써 고향으로 돌아간 어린 왕자의 모습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김훤주

강은거룩한기억이흐른다아메리카원주민속에전승되는영혼의노래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신명섭 (고인돌,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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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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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성진 2010.07.08 2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소개만으로도 심금을 울리시는군요.

    땅이 인간에 속한 게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한거다 한마디 마음에 담고서

    감사 말씀 올리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7.11 15: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 좋게 봐 주셔서요~~~~

      인간이 땅에 속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는 진리라고 저는 봅니다만.

      저야 말로 진짜 고맙습니다~~~~

  2. Favicon of http://www.ymca.pe.kr 이윤기 2010.07.09 1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하느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우리에게나 백인에게나 똑같은 것이다. "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이런 깨달음의 시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3. Favicon of http://www.etruereligionjeans-sale.com/ true religion 2010.07.12 1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나라의 예술처럼 그것은 문화 농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