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진보진영이 무능해서 불쌍하다
우리 국민들은 미국식 시장국가가 아니라 북유럽식 복지국가를 선망합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언제나 그렇게 나옵니다.
그런데도 지배 집단과 지배 매체는 복지가 효율의 반대말이라 거짓말을 해댑니다. '배가 부르면 게을러지게 마련이다'는, 그릇된 관념을 바탕삼은 생각이지만 상식으로 여겨지기는 하는 말이기에, 대다수 사람들이 그럴 듯하게 받아들이고 맙니다.
그러나 '복지국가소사이어티'라는 연구집단이 펴낸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은 복지는 성장 또는 효율과 대립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답니다.
"2004∼2007년 경제성장률을 보면 북유럽 복지국가인 핀란드는 3.9%, 노르웨이 3.0%, 스웨덴 3.6%였는데 유럽연합 전체 평균은 2.8%였을 뿐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도, 133개 나라 가운데 스웨덴 4위, 덴마크 5위, 핀란드 6위 등이다. 위기 대응 능력은 57개 나라 가운데 덴마크가 1위, 노르웨이 4위, 스웨덴 7위, 핀란드 9위를 차지했다."
신자유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좋지 않게 여기지만, 한 번 더 분명히 해 놓는 편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 생성·발전에 대응하는 자유주의는, 신분 제도의 억압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으뜸 가치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금융 과잉 카지노 자본주의(투기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자유'를 으뜸으로 꼽습니다.
자본의 자유를 위해서는 인간의 자유 따위는 희생·무시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요구이고, 구제금융이나 공적 자금 투입으로 나라 재정은 거덜낼지언정 자본은 살아남아 더욱 커져야 한다는, '자본 영생불멸의 논리'입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는 모든 정책이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 진행되는 민생 불안과 양극화의 원인이랍니다.
이런 바탕에서 대한민국을 보면, 경제구조는 '승자 독식의 시장만능주의 구조'이며 사회체제에서는 '패자 부활'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성된 대다수 사회 약자를 우리 사회는 제대로 책임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복지체제는 미국식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 시스템인데, 노동능력이 없는 극히 빈곤한 계층을 소득·자산 조사를 통해 선별해서 이들에게만 최저 생계를 보장해 주는 방식이다."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는 서민과 중산층의 패배와 추락에 대한 불안을 거의 해소하지 못했다. 불안의 항상성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기업가적 도전정신과 창의력을 억압하는 구조로 작용했다."
복지 관련 분야 요구를 선전하는 민생민주경남회의 거리 행사.
민생이 널리 불안해지고 그것은 또 만성이 됐습니다. 일자리 불안과 보육·교육 불안, 주거 불안과 노후 불안, 건강 불안이 그것입니다. 우리 나날살이를 조금만 돌이켜보면 바로 실감되는, 5대 민생 불안이 그것입니다.
빈곤층과 서민은 크게 고통을 겪고, 중산층을 비롯한 국민 대부분은 개별 생존을 위해 시장에서 분주하게 불안 회피책을 찾습니다. 시장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거나 이기기 위해, 모든 기득권과 편법을 동원해 각개전투에 나섭니다. 이것은, "정의롭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합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인 이상이(예방의학 전문의) 제주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이 책에서 현실 타개를 위해 "역동적 복지국가는 존엄·연대·정의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으며 헌법 제34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의 실현을 위해 '보편적 복지'를 앞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모든 구성원에게' '사회적 기본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동수당, 고용보험, 실업수당, 상병급여, 노후보장 국민연금, 사회보험 등등입니다.
물론 출생에서 사망까지 모든 구성원에게 갖가지 사회서비스도 누리게 해야 한답니다. 건강-의료 서비스, 보편 보육, 통합 공교육, 주거 보장, 장애인·노인 요양 등으로, '가난한' 일부 국민이 아니라 '가난하지 않은' 중산층을 포함한 국민 모두를 복지의 주체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상이 교수는 이 책에서 이 같은 '보편적 복지'와 아울러 '(구성원 능력을 극대화하는) 적극적 복지' '(신자유주의에 시장을 팽개쳐 놓지 않는)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 등을 주요 개념으로 꼽았습니다.
<역동적 복지 국가의 논리와 전략>은 이런 전망 아래 보편 복지의 주요 제도-교육·보육·노동(고용)·건강·의료·연금을 다룬 다음 이를 위한 조세재정개혁의 방도까지를 밝힙니다.
민주노총은 개별 조직을 넘어 이제 민생복지예산 편성을 얘기할 정도는 됐습니다. 그런 내용을 촉구하는 집회 장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의 가장 큰 수혜 집단이 될 노동계급의 운동 논리와 지향점,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조건과 원칙 등도 담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꿈이 세상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이미 현실에서 실행되고 있음을, 실제 보기까지 들며 생생하게 일러주는 데 있습니다.
"북유럽 복지국가들 대부분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을 때부터 적극적·보편적 복지 국가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그들 나라와 대한민국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역동적 복지국가'를 책임지고 나갈 정치 세력이 있느냐 없느냐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진보진영의 무력함도 한몫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에서 필연으로 발생하는 민생불안을 해소하고 행복지수를 높여나갈 실현가능한 경제사회 처방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복지국가로 일대 전환을 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할 새로운 정치판의 형성이다. 진보의 재구성을 통한 새로운 정치 지형의 탄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좌파=진보의 집권을 당장 요구하지는 않는답니다. "신자유주의를 중심으로 한 우파적 해법과 보편주의 복지국가 건설을 중심으로 한 좌파적 해법이 전면 대립하는 새로운 정치 지형의 출현"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일자리 불안과 보육·교육 불안, 주거 불안과 노후 불안과 건강 불안 따위 '5대 불안'에 시달리는, 그러면서도 아직 정신이 나가지는 않은 사람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이지 싶습니다. 도서출판 밈. 468쪽. 1만8000원.
김훤주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 이상이 편저/밈 |
대한민국, 복지국가를 부탁해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지음/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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