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문학이 살 길은 문학 밖에 있다

김훤주 2010. 3. 1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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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문학

문학이 위기입니다. 음악·미술이나 연극 같은 장르는 발전을 거듭하지만 문학은 제자리 걸음이거나 아예 뒷걸음질을 일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학이 아니라 문인이 위기입니다. 대부분 문인들이 지금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옛날부터 해오던 관행에 젖어 벗어날 줄을 모릅니다. 지난해 10월 마산문인협회가 발간한 <마산 문인 대표작 선집>이 바로 그 보기입니다. 

제1권 운문편 518쪽, 제2권 산문편 510쪽, 제3권 출향·연고·작고 문인편 646쪽에 이르는 이 선집은 안팎에서 혹평을 받았습니다.

물론 주체인 마산문협은 10월 31일 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성대하게 열었답니다. 아주 우스꽝스럽지요.

난리도 이런 쌩쑈가 없습니다.

강호인 당시 회장은 "문학이 첫 자리에 놓일 때 인문학이 제 자리를 찾는 느낌이고 문학이 예술의 첫 자리에 빛이 될 때 지역과 나라의 문화가 융성할 것"이라며 "<마산 문인 대표작 선집>이 마산을 사랑하고 문학을 공부하는 모든 이들의 깊은 사유를 위해 많이 사랑받아야 할 까닭"이라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공염불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집을 들춰 보면 까닭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한 문인은 "선별이 없는 선집"이라 했습니다. 마산 관련 모든 문인이 들어 있다는 뜻입지요. 또 마산문협 회원이라면 실력이 있든 없든 모두 들어 있으며, 회원 개인의 대표 작품을 선정하는 공통된 기준도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답니다.

다른 한 시인은 "가장 많이 돈을 들였으면서도 사람들 눈길은 가장 적게 끌어당긴 선집"이라고도 했습니다. 특징도 없고 대표성도 없고 그냥 분량만 방대하다는 말씀입니다. 

또다른 한 시인은 "문인과 대중 사이 소통 없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출판물"이라 했습니다. 선집은 단가가 3만원 세 권에 9만원으로 매겨져 있지만 찍을 때부터 일반 서점을 통해 유통을 하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지역 문인 단체가 자치단체 지원을 받아 회원 작품을 실은 책을 냅니다. 별 뜻이 없기도 하지만 그것을 대중과 함께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나눠가질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출판기념회만큼은 규모있게 치릅니다.

<마산 문인 대표작 선집>은 이런 관행을 아주 정확하고 충실하게 확대 재생산해 냈습니다.

2.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ㅇ시인은 "시인이 좋은 작품을 쓰려면 알맞게 외롭고 쓸쓸해야 하는데 출판기념회, 시낭송회, 시화전, 문인단체 모임, 문인단체 기관지 발행, 이밖에 이런저런 문학행사가 많아 혼자 있을 틈이 없어요. 관행에 젖은 행사가 관행에 젖은 시인을 낳는 셈이지요"라 했습니다.

이렇듯 지역과 대중으로부터 문학과 문인이 고립돼 있다는 것이 위기의 본질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위기의 타개책은 이런 고립을 벗어나는 데에 있겠습니다.

고립을 벗어나려면 문인들이 먼저 문학을 풀어줘야 한다고 저는 봅니다. 여태 대다수 문인들은 문학을 통해 주로 자기만족을 얻어 왔습니다.  자기만족을 버리면 됩니다.

문학이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이 아님을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학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지역을 풍부하게 만들며 다른 장르와 융합해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3. 살 길은 안에 있지 않다

위기에 빠진 문학이 살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문학 안에는 절대 길이 없습니다.

먼저 '주민 속으로'가 있습니다. 마산문인협회는 올해 들어 여태까지와는 달리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달균 마산문협 회장은 "활동을 교도소 재소자나 병원 환자들에게로 넓혀나가려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회장은 지난 1월과 2월 마산교도소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우리나라 정상급 연주자들과 함께 지역문인들의 작품에 음악을 입혀 처지가 어려운 재소자들에게 고급 문화를 누리도록 해 주자는 취지를 안고서 말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맨날 대중 음악 위주 위문 공연만 보라는 법은 없잖아요?"

이 회장은 병원도 찾아갈 생각입니다. "교도소도 마찬가지인데, 병원 운영하는 처지에서는 관리를 해야 하니까 좀 우리 행사를 번거롭게 여기는 측면도 있는 것 같지만 지역 사회를 풍성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설득하고 또 설득할 겁니다."

진주 민예총의 자서전 교실을 묶어 낸 책.

예산을 대는 정부가 꺼리는 바람에 이런 노력이 꺾인 적도 없지는 않습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진주지부는 2007년 '찾아가는 어르신 자서전 교실'을 선보였습니다. 지난해까지 3년 동안 정부와 자치단체 예산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지역 문인들이 기획하고 강의한 이 프로그램은 지역 노인에게 글을 읽고 쓰는 재미와 보람을 안겨줬습니다. 문학을 누리는 범위를 특정 문인에서 지역 주민 특히 소외된 이웃들로까지 넓히는 작업이었습니다.

시작할 때 정부지원사업으로는 전국 처음이었고 이를 광주YMCA 등에서 따라하는 성과도 냈지만 올해는 아쉽게도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프로그램을 주도했던 소설가 하아무는 "지원을 하는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탐탁지 않게 여기고 딴지를 걸어 못살게 굴었다. 그래서 성과도 보람도 있었지만 올해는 아예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4. 다른 장르랑 붙어먹어야 한다

두 번째는 '다른 장르와 융합하기'랍니다. 문학은 언제나 예술의 첫 자리에 있습니다. 만고불변입니다.

연극도 하려면 대본이 필요하고 음악도 하려면 가사가 있어야 하니까요. 미술도 마찬가지. 특히 요즘은 많은 작품이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을 지향하기 때문에 작품에 담긴 의미를 풀어놓는 글이 없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경남문인협회와 경남음악협회가 2008년부터 손을 잡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지역 문인들이 쓴 글에 지역 작곡가들이 음악을 입힙니다. 2009년에는 6월 4일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경남의 노래' 공연을 올려 지역 주민에게 소개를 했습니다.

창원문협 회장을 지낸 김일태 시인(창원예총 회장)은 "성과가 없지 않았지만 새롭지는 않고 고전적인 시도"라며 "진정 문학의 대중화를 꾀하려면 이 정도로는 안 되지요"라 했습니다.

나쁘지 않은 시도이지만 자기 만족으로 흐를 개연성도 당시 지적됐습니다. 공연 주체들이 서로 칭찬을 주고 받기에만 빠져 있었다는 얘기랍니다.

전통 장르를 뛰어넘는 참신하고 기발한 시도가 필요하고, 그것이 아니라도 기왕 치른 행사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따랐어야 한다는 꼬집음이었습니다.

마산문협 이달균(시인) 회장도 "소설은 몰라도 시만큼은 독자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우며 극화(劇化)돼야 한다고 봅니다"고 했습니다. 대중과 어울리려면 연극과 음악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겠지요.

이 회장은 2002년 창신대학 문예창작과에 출강할 당시 시극(詩劇)을 연출하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고성 오광대를 창작 동기로 삼은 시집 <말뚝이 가라사대>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말뚝이 가라사대>는, 별다른 연관없이 뚝똑 떨어져 있는 고성 오광대 다섯 마당을 인과관계로 이어서 완성도를 높이는 구조를 하고 있답니다.

일부는 대한민국 작곡상 최우수상을 받았던 이병욱 교수에게 작곡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이윤택 감독으로부터 공연물로 검토도 됐으나 고성군이 적극 나서지 않는 바람에 무위에 그쳤다고 합니다.

5. 해당 지역이랑도 밀착해야 산다

세 번째는 '지역 밀착'이 있습니다. 김일태 시인은 "지역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창조하고 해석·재해석해 내야 합니다. 그런데 지역 문인들이 거의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고 했습니다. 

"문인들이 람사르 총회가 열리면 우루루 환경으로 쏠리고, 4대강 어쩌고 하면 우루루 낙동강으로 쏠리고 하는데 이래서는 이른바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지요. 자치단체에서 지원해 주지 않아도 꾸준히 작업을 해 나갈 때 지역 문인들이 빛날 겁니다."

"자주 드는 보기지만 마산의 고운 최치원 관련 유적이나, <삼국유사>에서 경주 불국사와 대등하게 취급되는 창원 백월산 남사의 노힐부득 달달박박 이야기 같은 소재를 지역 문인이 갈고 닦아야 합니다."

"요즘 텔레비전에 <거상 김만덕>이라는 제주 콘텐츠가 뜨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원에도 가뭄 때 재산을 풀어 지역민을 먹여 살린 여성이 있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제주는 갈고 닦았고 창원은 잊고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조선 중기 함안·마산·창녕 등 경남 곳곳에 '목민관'으로 뚜렷한 자취를 남겨, 창녕 성산면에 생사당 관산서원을 지역민이 지어주기까지 했던 한강 정구 또한 훌륭한 지역 콘텐츠라 하겠습니다. 생사당이란 살아 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을 이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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