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법정 스님은 '무소유'조차 놓고 버렸다

김훤주 2010. 3. 1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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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법정(法頂) 스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 중학교 때 그러니까 1977년정도였습니다.

저보다 일곱 살 많은 작은누나가 대학 국문학과를 다니는 문학 지망생이었고, 저는 누나가 보는 책을 슬금슬금 훔쳐 보는 데 재미를 들이고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이 쓰신 책 <무소유>가 아마 누나 책꽂이에 있었나 봅니다. 책을 꺼내어 읽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려고 나루에 갔다. 그런데 나룻배가 이미 저만큼 앞에 둥실 떠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때면 아휴 늦었구나,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이렇게 여기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참 일찍 왔구나 하고, 다음 배를 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님이 여기서 하고자 하신 바가 매임을 버려라, 집착을 하지 마라 이런 얘기인 줄 짐작하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무슨 이런 허황된 얘기가 다 있어.' 이러면서 슬그머니 책을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뒤로 법정 스님의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무소유>가 인기를 끌어도 다만 책이 많이 팔려서 누구누구는 좋겠구나, 이렇게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무슨 '장삿속' 비슷하게만 여긴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쉬 가시지 않았습니다. 김용옥이 쓴 <금강경 강해>를 지난해 읽으면서도, 거기서 김용옥이 법정 스님을 일러 '우리나라 불법(法)의 절정(頂)'이라는 투로 일렀을 때도 그냥 '그래? 그래서?' 하는 마음만 들었을 뿐입니다.

비구 법정. 단출합니다. 뉴시스 사진.


그러다가 이번에 스님이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스님이 유언에서 <무소유>를 비롯해 당신께서 쓰신 책을 모두 더 이상 내지 마라고 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논란이 되더니 법정 스님 제자들이 유언을 받들어 모든 책을 절판하겠다는 얘기로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한겨레> 16일치에서 관련 기사를 읽었지 싶습니다.

15일 저녁 알고 지내는 스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법정 스님 얘기를 하셨습니다. "법정은 세상 사람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알리기 위해 '무소유'를 들고 있었다. '무소유'든 무엇이든, 그것을 놓지 못하면 모조리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이 된다."

이어서 얘기하셨습니다. "부처를 알리는 방편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무소유'를 들고 놓지 못함으로써 법정은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이번에 더 이상 책을 내지 마라 한 것은 그 '무소유'조차 '무소유'로 돌려보내는 셈이다."

화들짝 끼침이 왔습니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무소유' 하나만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무소유를 소유'함으로써 세상 통째로 소유하고 말았습니다.

속된 말로, 무소유라 하면 마치 법정 스님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세상 물정이 바로 이를 방증합니다. 무소유 하나로 법정 스님은 당신 뜻과는 달리 크게 되셔 버렸고 이것이 스님에게는 갖은 족쇄가 됐을 것입니다.

이제 법정 스님은 유언으로 무소유를 소유하지 않게 됐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소유의 영역에도 머물지 않고, 무소유의 영역에도 머물지 않게 됐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있게 됐습니다.

이로써 스님은 '당신의 무소유'로 쌓을 수밖에 없었던 업(業)에서 놓여날 수 있게 됐을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법정 스님 무소유의 뜻을 뒤늦게나마 제대로 알아차렸다고 스스로 여깁니다.

물론 법정 스님이 생전에 냈던 책은 어떤 식으로든 떠돌아 다니면서 유통이 될 것입니다. 출판업자들이 <무소유>를 비롯한 스님의 여러 책들을 계속 찍어낼 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해도, 헌책방 등등에서 스님의 책들이 끊임없이 유통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는 것보다 더 뻔한 사실입니다. 어쩌면, 책이 귀해져서 더욱 비싸게 거래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스님이 '절판'을 유언하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이미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그렇게 돌아다닌다 해도 그것은 스님이 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스님의 업이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제 스님 관련 책의 생산과 유통은 법정 스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하는 바가 됐습니다. 업이란 하는 데 따라서 가고 짓는 데 따라서 생기는 법이니까, 그 업은 법정 스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것이 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간단합니다. 스님의 책 <무소유> 등등은 세상을 계속 돌아다닐 것입니다. 돌아다닐만큼 돌아다니고 나면 잦아들고 또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만입니다.

스님은 갔습니다. 그에 걸맞게 스님의 책도 보내면 됩니다. 그러고 나면, 스님과 같은 방식으로 또는 다른 방식으로, '무소유'를 비롯한 부처 가르침을, 자신의 전유물처럼 삼아 일러줄 사람이 다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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