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법정(法頂) 스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 중학교 때 그러니까 1977년정도였습니다.

저보다 일곱 살 많은 작은누나가 대학 국문학과를 다니는 문학 지망생이었고, 저는 누나가 보는 책을 슬금슬금 훔쳐 보는 데 재미를 들이고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이 쓰신 책 <무소유>가 아마 누나 책꽂이에 있었나 봅니다. 책을 꺼내어 읽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려고 나루에 갔다. 그런데 나룻배가 이미 저만큼 앞에 둥실 떠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때면 아휴 늦었구나,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이렇게 여기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참 일찍 왔구나 하고, 다음 배를 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님이 여기서 하고자 하신 바가 매임을 버려라, 집착을 하지 마라 이런 얘기인 줄 짐작하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무슨 이런 허황된 얘기가 다 있어.' 이러면서 슬그머니 책을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뒤로 법정 스님의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무소유>가 인기를 끌어도 다만 책이 많이 팔려서 누구누구는 좋겠구나, 이렇게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무슨 '장삿속' 비슷하게만 여긴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쉬 가시지 않았습니다. 김용옥이 쓴 <금강경 강해>를 지난해 읽으면서도, 거기서 김용옥이 법정 스님을 일러 '우리나라 불법(法)의 절정(頂)'이라는 투로 일렀을 때도 그냥 '그래? 그래서?' 하는 마음만 들었을 뿐입니다.

비구 법정. 단출합니다. 뉴시스 사진.


그러다가 이번에 스님이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스님이 유언에서 <무소유>를 비롯해 당신께서 쓰신 책을 모두 더 이상 내지 마라고 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논란이 되더니 법정 스님 제자들이 유언을 받들어 모든 책을 절판하겠다는 얘기로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한겨레> 16일치에서 관련 기사를 읽었지 싶습니다.

15일 저녁 알고 지내는 스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법정 스님 얘기를 하셨습니다. "법정은 세상 사람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알리기 위해 '무소유'를 들고 있었다. '무소유'든 무엇이든, 그것을 놓지 못하면 모조리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이 된다."

이어서 얘기하셨습니다. "부처를 알리는 방편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무소유'를 들고 놓지 못함으로써 법정은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이번에 더 이상 책을 내지 마라 한 것은 그 '무소유'조차 '무소유'로 돌려보내는 셈이다."

화들짝 끼침이 왔습니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무소유' 하나만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무소유를 소유'함으로써 세상 통째로 소유하고 말았습니다.

속된 말로, 무소유라 하면 마치 법정 스님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세상 물정이 바로 이를 방증합니다. 무소유 하나로 법정 스님은 당신 뜻과는 달리 크게 되셔 버렸고 이것이 스님에게는 갖은 족쇄가 됐을 것입니다.

이제 법정 스님은 유언으로 무소유를 소유하지 않게 됐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소유의 영역에도 머물지 않고, 무소유의 영역에도 머물지 않게 됐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있게 됐습니다.

이로써 스님은 '당신의 무소유'로 쌓을 수밖에 없었던 업(業)에서 놓여날 수 있게 됐을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법정 스님 무소유의 뜻을 뒤늦게나마 제대로 알아차렸다고 스스로 여깁니다.

물론 법정 스님이 생전에 냈던 책은 어떤 식으로든 떠돌아 다니면서 유통이 될 것입니다. 출판업자들이 <무소유>를 비롯한 스님의 여러 책들을 계속 찍어낼 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해도, 헌책방 등등에서 스님의 책들이 끊임없이 유통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는 것보다 더 뻔한 사실입니다. 어쩌면, 책이 귀해져서 더욱 비싸게 거래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스님이 '절판'을 유언하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이미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그렇게 돌아다닌다 해도 그것은 스님이 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스님의 업이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제 스님 관련 책의 생산과 유통은 법정 스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하는 바가 됐습니다. 업이란 하는 데 따라서 가고 짓는 데 따라서 생기는 법이니까, 그 업은 법정 스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것이 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간단합니다. 스님의 책 <무소유> 등등은 세상을 계속 돌아다닐 것입니다. 돌아다닐만큼 돌아다니고 나면 잦아들고 또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만입니다.

스님은 갔습니다. 그에 걸맞게 스님의 책도 보내면 됩니다. 그러고 나면, 스님과 같은 방식으로 또는 다른 방식으로, '무소유'를 비롯한 부처 가르침을, 자신의 전유물처럼 삼아 일러줄 사람이 다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김훤주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남도 마산시 양덕2동 | 경남도민일보
도움말 Daum 지도
카카오톡으로 친구맺기




김주완이 최근에 산 상품을 보여드립니다
아이몰 아이폰용 이동식 OTG 젠더 B타입 외장메모리 + C PIN 커넥터 + 5 PIN 커넥터 + 벨벳 파우치, 32GB 오뚜기 고시히카리... 아디다스 쿼드큐브 운동화 EH3096 유한킴벌리 덴탈 마스크, 50매입, 1개 샌디스크 iXpand Mini 아이폰 OTG USB, 256GB
글쓴이 : 김훤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자유인 2010.03.19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항상 글 잘 읽고 있는데 댓글이 없어 제가 먼저 달아볼까 합니다..

    우선 법정 스님께서 해탈의 길에 들어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종교인은 아니나 사람이 왜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을 항상 품고 사는 이입니다...

    법정스님을 직접 뵌 적은 없었지만 책이나 여러 기사, 지인들을 통해 그 분의 성정이나 가름침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해하며 살던 사람 중 하나인 저는 왜 책을 절판하라고 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 세상의 나온 법들이 누구 하나의 법이겠습니까? 좋은 말과 글인데 계속 출판하여 어리석은 중생에게 표본이 되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차라리 도서판매 수익금을 좋은 곳에 쓸 수 있게 유언을 하셨으면 스님의 뜻이 세상에 생생히 살아 숨쉬지 않았을까하는 짧은 생각을 합니다.

    스님의 생을 존중하고 배우고 실천하고자 합니다만 스님도 "법정"이라는 아(我)가 있으셨던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스님의 다비식 다음날 인근의 절을 찾아 스님을 위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부디 해탈의 길로 가셔서 많은 중생들을 구원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가 무얼 소유하고 싶은지를 살피며 무소유를 실천하려합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3.20 17: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我)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좋으신 표현이네요.

      저는 제가 아상(我相)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요. ^.^

      일부러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당~~~~

  2. 지나가는 자유인 2010.03.19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짧은 생각이시네요...윗분
    성불하십시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3.20 1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나가는 자유인님, 앞에 쓴 자유인님 글이 짧은 생각을 담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그 까닭을 일러주시면 제가 좀 배우겠습니다.

  3. Favicon of http://daily-post.tistory.com 연습장 2010.03.19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이네요.
    무소유조차 놓으려고 했던 법정스님의 마음과 법정스님이 떠나고 없는 현실에서 무소유 또한 법정스님이 가셨던 길처럼 가도록 하는게 곧 무소유를 실천하는 길이라고도 생각되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4. 진다리 2010.03.19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법정스님은 종교를 넘어 인생에 대하여 깊은 통찰로 일대기를 이룩하신 분이다.




    그분의 정신적인 경계가 어디인지 감히 짐작할수도 없고 그런 능력이 나에게 있을리 만무하다.




    다만 그경계의 언저리가 어디쯤인지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을뿐이다.




    소유와 집착에 대한 섬광같은 종교적인 깨달음..




    문학에 대한 아득한 지평의 경지는 가름조차 할 수가 없다.




    스님의 높은 정신적인 가치와 고결한 영혼의 순수함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경계에 다아있다.




    그런 스님이 얼마전 입적했다




    스님은 자신이 출간한 책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고, 사리를 찾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다.




    스님이 남긴 유언의 내용은 스님이 속가 불가에서 살아온 삶의 정수다.




    무소유...




    깨달음은 섬광같았을 것이나 도달하기에는 참으로 긴 인고의 세월이었으리라




    무소유...




    그천둥같은 소리에도 우매한 중생은 깨달지 못하리라.




    우매한 중생은 스님이 출간한 책을 더 이상 출간치 말고 사리를 찾지 말라는 유언...




    그높은 정신적 경지와 고결한 영혼에도 의문을 갖는다




    먼훗날 스님의 사리를 보고 천둥같은 깨달음을 얻어 인간세상을 환히 밝힐 미륵보살이 출현할수도 있지않을까?




    만약 성현들의 가르침이 고대로부터 전해지지 않고 단절되었다면




    맑고 아름다운 세상의 구현이 가능할까?




    인간은 학습능력의 결과에 따라 행위하는 동물인 것이 맞다면 현재의 인간정신의 시작은 어디일까?




    석가모니가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그경지를 홀로 느끼고 열반하였다면 과연 현재의 종교는 존재하기나 했을것인가.




    순환하며 상승발전하는 것이 종교와 학문일진데 만약 종교와 학문이 단절된다면 현재의 종교적,학문적,철학적 가치는 더 이상 발전할 여지는 없는것인가?




    스님의 유언은 너무도 종교적인 틀 그것도 무소유의 틀에 갇힌 스님의 오류가 아닐까?




    스님의 맑고 높은 영혼의 소리를 후대에 전할수 있는 책을 절간하는 것이 종교적 관점을 떠나 본다면 과연 타당한 것일까?




    우매한 중생의 의문에 스님은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종교적인 깨달음과 문학적인 성과는 미세한 먼지에 불과하네.




    세상을 지탱할 만큼 성현의 가르침은 계속되고 있지않는가?




    거기에 미세한 먼지로 끼어들어 세상을 미혹할 필요가 있을까?







    스님의 말씀이 옳다면 천대만대 성현들도 모든 소유를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책을 절간치도 않았고, 말씀도 천대만대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님 그들은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에 까지 가지 못한거군요.







    오오 어리석은 중생아!




    창생 한 이전부터 시간은 영겁하고 공간은 광대하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인간은 너무 작은 존재지




    나는 온세상의 모든 진리를 대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걸 기억하게




    내가 단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깨닫지 못한 백만가지 진리중에 내가 깨달은 단한가를 말하고자 했을뿐이네.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것이 사람사는 세상의 이치네




    그런데 알고보니




    많이 가질수록 빈자가 되는거지




    그래서 비우라는 것이네 그럼 채워질것이니.



    그저 백만가지 진리중 하나를 말하는 것뿐이네...

  5. Favicon of https://eejemap.tistory.com 잡학왕 2010.03.19 16: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 부산에가서 우연히 1권 구했습니다. 헌책이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기념이 될것 같아서 샀어요. 근데...어떤 분은 5만원에 판다고 하더군요....음...ㅡㅡㅋ

  6. 2010.03.19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Favicon of http://dreamsso.tistory.com dreamsso 2010.03.20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 스님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잔잔한 감동을, 때로는 경각심을 주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유언을 보며 스님은 마지막까지 참으로 법정 스님다운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8. 보라매 2010.03.25 04: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고맙습니다.

  9. Favicon of http://blog.daum.net/koredu 흐르는 강물 2010.03.25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님께서 놓고 가신 무소유가

    스님의 책을 가지려는 사람들의 소유욕으로 대체되는 아이러니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