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김주완은 떠났지만, 나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김훤주 2010. 3. 3. 08:58
반응형

김주완……. 김주완은 저 김훤주에게 안성맞춤 버팀돌이었습니다. 먼저 김주완은 저의 1999년 경남도민일보 입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8년 겨울 경남도민주주신문 창간 작업이 한창일 때, 저는 지역 운동의 선배 한 명에게서 '니가 들어가서 일해 볼만한 신문이 생기니까 시험 한 번 쳐 봐라'는 말을 듣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999년 2월인데, 한겨레신문에 조그맣게 난 경남도민주주신문 1기 공채 광고를 보고 평소 안면이 있던 그리고 도민주주신문 창간 작업을 하던 김주완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합니다.

여기서 저는 '제가 들어가서 일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김주완은 '개인적으로 크게 반긴다. 나이 제한이 없으니까 꼭 시험을 쳐라'고 답해 줬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시험을 거쳐 공채 1기로 경남도민일보에 발을 들여놓게 됐습니다. 동기들보다 나이가 열 살 안팎이 많은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이균대 편집국장은 제게 '너 나이가 많아서 떨어뜨리려 했다. 그런데 뽑아야 한다는 주문이 많아 뽑았으니 열심히 해라'는 말씀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김주완은 제게 훌륭한 버팀돌이고 디딤돌이었기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묻곤 했습니다. 인생 상담도 들어 있었고 기사 작성 방법 같은 것도 들어 있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기자 노릇이 올해로 12년째인데 김주완이 제게 디딤돌이 아니거나 버팀돌이 아닌 걸림돌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잘 안 풀리던 문제도, 김주완을 쳐다만 보면 술술 풀렸습니다.

물론 김주완에게 도움을 받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김주완 스스로도 경남도민일보 공동체 안에서 기자회장과 노조 지부장 등을 하면서 누구 못지 않게 악역을 맡아 했지만 제게도 그런 노릇을 서슴없이 주문했습니다.

저는 김주완의 뒤를 이어 기자회장 노릇을 이태 동안 했습니다. 2003년 경영 파동 당시에는 김주완 당시 노조 위원장의 주문으로 우리사주조합을 만들고 조합장을 맡아 마찬가지 이태 동안 했습니다.

물론, 제가 2007년 노조 지부장을 맡은 데까지 김주완의 주문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주완의 주문으로 2005년부터 이태 동안 노조 지부장을 했던 조인설 직전 지부장이 김훤주더러 후임 지부장을 하라 설득할 때에, 김주완이 같은 자리에 있었음은 사실입니다.

기자회장과 우리사주조합장 그리고 노조 지부장은 전혀 편한 자리가 아닙니다. 부유한 조직 같으면 어쩌면 조금이나마 누리는 자리일 수 있지만 윗돌 빼서 아래에 넣고 아랫돌 빼서 위에 채우는, 형편이 딱한 조직에서는 욕만 많이 먹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냉정하게 사람을 쳐야 하고 어떤 때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향해 시간이나 돈이나 노력을 내놓고 희생을 하라 강요해야 합니다. 이런 악역을 하면서, 저도 김주완보다 많지는 않지만, 그에 버금갈 정도로는 몸과 마음이 다쳤습니다.

김주완의 주문은 언제나 사리사욕을 바탕삼지 않았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전체의 공동선과 공익을 들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를 경남도민일보답게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면 당신이 악역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여기에 어떤 독선이 들어 있다고 비판하실 수도 있겠지만, 일단 감수하겠습니다.)

사리사욕이 아닌 공동선과 공익에 바탕한 주문이었기에, 김주완을 선배로서 동료로서 굳게 믿었기에 저는 김주완의 주문을 고맙게 여기고 한편으로는 기뻐하면서 말없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김주완이 떠났습니다. 2월 11일 편집국장 임명 동의 투표에서 부결이 되니까 깨끗하게 손을 털었습니다. 편집국 구성원이 빠짐없이 투표해 찬성 28대 반대 30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편집국장 임명 동의 부결을 두고 사장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해 떠나려는 사장을 잡고자 하는 사원들의 안간힘입니다. 2월 23일 이사회가 열리는 사장실 앞 장면.

저는 김주완의 짧은 낙선 사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게 해주신 구성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를 보는 순간 바로 예감되는 바 사직을 막기 위해 곧바로 메일을 보냈습니다.

김주완에 뒤이어 같은 악역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그 악역의 반대편에 있었던 파견기자 선·후배들과 또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미안함을, 이번 임명 동의 투표를 통해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적었습니다.

저는 김주완도 그런 미안함을 이번에 털어낼 수 있었을 테니까, 아무 사심 없이 다른 거리낌도 없이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됐고, 그런 만큼 이제 같이 신나게 일해 보자고 그렇게 적었습니다.

김주완 선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역시 훤주씹니다. 멋지네요. 100% 공감합니다. 그러나 저는 홀가분하게 떠나야겠습니다. 용서해주시겠죠? 놓아주시겠죠? 100%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김주완이 정식 사표를 내시기 전날인 18일에는 술집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나가서 무슨 일을 할 것이냐 묻고 그에 대한 답이 나오면 그런 일을 경남도민일보 안에서 더욱 충분하게 보람차게 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함으로써 붙잡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저에 대한 미안함이 없지는 않겠지만, 꾹꾹 눌러 숨기고는, 아무 할 일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냥 이런저런 새로운 일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는 식으로, 제가 붙잡을 꼬투리를 전혀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김주완은 이처럼 저의 어슬픈 그물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술값만 5만원을 날리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23일 다시 만났습니다. 편집국장 임명 동의 투표 부결을 사장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고 서형수 사장이 이사회에서 사의를 밝힌 날이었습니다.

이날 저의 작전은 이랬습니다. 편집국장 임명 동의 투표 과정에서 벌어진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는 일을 제가 어느 정도는 맡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니 너무 쓸쓸하고 힘들고 외롭다, 그러니 떠나지 말고 남아 달라고 붙잡으려 했습니다.

김주완은 이번에도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아주 냉정하게 얘기하셨습니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텐데도, "나는 이미 외부 사람이니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무슨 배후조종이나 하는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다만 한 가지, 경남도민일보는 사원들만의 신문은 절대 아니고 독자와 주주들의 것이기도 한 만큼 독자 여러분과 주주 여러분을 잘 모시면 거기 살 길이 있을 것이라고는 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김주완 선배를 두 번 만나고 한 차례 메일을 주고 받은 다음, 잡아야 한다거나 잡을 수 있다거나 하는 생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김주완을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여기 이대로 당분간 기다리는 모습으로 있겠습니다. 김주완은 갔지만, 저는 김주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김주완을 보내지 않았지만, 김주완은 갔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드문드문 떠올립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그리고 저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