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밀양에는 밀양문학회가 있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소속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밀양문학>이라는 연간지를 지난 해까지 22집을 내는 등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밀양문학회는 이렇습니다. 민족시인 고 이재금 선생 등이 만들었습니다. 소설가 김춘복 선생을 비롯해 교육·문화계 등 다양한 문학인들이 참여해 젊고 역량 있는 작품을 쏟아내면서 지역 문학을 앞장서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이응인 시인입니다. 이번에 다섯 번째 시집을 냈습니다. 색깔도 독특하고 솜씨도 남다릅니다. 이른바 일가(一家)를 이뤘다 해도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2.
"용두강 밑에서 강을 바라보는데 삼성 마크도 선명한 대형 포크레인이 강의 가슴팍이고 허벅지고 쇠바가지로 마구 파헤친다. 쇳소리 이가 아리고 머리가 지끈대는데 볼보 15톤 트럭에사 강을 끝었이 실어보낸다. 다슬기도, 망둥어도, 은어도 보낸다.
관성이 붙어 자갈이며 모래며 지칠 줄 모르고 파내는 저 쇠바가지들과 브레이크 없이 달리기만 하는 쇠수레들. 그새 강바닥은 아랫도리가 파헤쳐지고 아득한 속이 들여다뵈자 황금 비늘이 신호처럼 튀어올랐다. 그만, 어지러워.
물길이 스무 길이나 솟구치더니 땅이 갈라졌다. 솔밭머리서 마암산까지 황룡이 솟아올라 아픈 몸 비틀어 종남산 너머로 사라졌다. 용두강에는 용이 없고 상한 물비늘만 노을빛으로 일렁였다."('용두강에는 용이 없고' 전문)
물론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토목족은 이런 시를 봐도 아무 감흥이 느껴지지 못하겠지 싶습니다만. 강을 파헤치고 생명을 결딴내는 것이 그이들에게는 파괴가 아니라 건설로, 생산으로 여겨지도록 토목식 상상력이 작동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강줄기에 기대어 나날이 살아가는 이들로서는 강의 파괴란 바로 다름 아닌 삶의 파괴일 수밖에 없습니다.
3.
"일요일 나무 심는 날 아침, 전봇대 맨 위 전깃줄에서 목청 좋게 노래하던 새. 내 발자국 낌새 알고 옆집 전봇대로 휘익 날아간다. 아침마다 찾아와 노래를 불러대는 저 손님은 누굴까? 이튿날 아침에도 살포시 문 열고 노래를 엿듣는데 어찌 알고는 도망간다. 대체 누굴까? 며칠 인터넷을 뒤진다. 한국의 새. 멀리서 봐 놓으니 생긴 건 분명치 않아. 새소리 텃새 소리 듣다듣다 비슷한 걸 찾아내었다. 휘-익, 휘파람새. 아내한테 자랑을 했더니, 미숙이가 휘파람새라 그러대요. 나무 심는 날 다녀간 후배다. 어떻게 알았대? 그냥 들어보니 휘파람을 불더래요."
밀양 세종고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응인 시인의 시집 <그냥 휘파람새>의 표제작 전문입니다.
에둘러 알게 된 자기 경우와 단박에 알아차린 후배 모습을 대조함으로써 앎에 이르는 상큼함을 두 차례 세 차례 거듭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에둘러 알게 됨과 단박에 알아차림 사이에는 어떤 높낮이나 좋고나쁨이 없을 것입니만.
4.
문학 평론가이기도 한 오철수 시인은 시집 끄트머리 '작품 해설'에서 "직접 주장하듯 들려주는 시는 한 편도 없지만, 시집의 전체 이미지는 '너를 비워 가장 자연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적 표현에서도 요란한 언어 조작과 심리적 과도함을 피하고 기교 없는 담박함과 여백의 이용이 두드러진다"고 덧붙였습니다.
오철수는 이어 이응인 이번 시집의 메시지를 이렇게 간추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나이고 너다.'
'연결망 속에서 우리 모두는 필요의 존재다.'
'나를 비워 즐거운 하나를 이루자.'
시(詩)가 어느 정도까지 담담한 맛을 낼 수 있는지, 그 끝간 데를 보여주는 시집이라고 저는 여깁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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