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지역신문 문학 담당기자가 누리는 보람

김훤주 2010. 2. 22. 16:10
반응형

신문기자가 보람을 느끼는 때는 언제일까요?

엄청난 사건을 특종 보도해서 안팎으로 관심이 쏠리고 일정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했을 때 당연히 보람을 느끼겠지요.

저도, 엄청난 특종은 아니지만 보도를 해서 세상 눈길을 끌고 어느 정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돼 뿌듯해 했던 적이 한두 번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뿌듯함이나 보람과는 종류가 다르지만 이런 뿌듯함이나 보람도 있음을 며칠 전 알게 됐습니다. 2월 11일치 경남도민일보에, 마산시로부터 징계를 먹은 보건진료소장이 시집을 냈다는 기사를 내고 나서였습니다.


기사는 이렇습니다. 문학 관련입니다. 주민을 위해 열성으로 일한 결과가 마산시장에게 밉보여 애꿎게 징계를 받았으나, 그이 마음이 아름답고 삶이 빛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내용입니다.

마산시는 황철곤 시장까지 나서서 수정만 매립지에 공해 산업인 STX를 유치하려고 바득바득 애를 쓰고 있지만 주민들은 완강하게 반대를 하고 그러던 차에 김연희 소장이 주민 편드는 듯한 말을 하니까 해치워 버린 것입니다.

2008년 4월 18일 마산시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마산 보건소 김연희 수정진료소장에게 징계를 먹였다. 공무원 품위를 손상하고 성실의무를 위반해 국가공무원법 제69조를 어겼다는 이유를 달았다.

STX 수정만 매립지 진입 문제를 두고 2007년 12월 9일 열린 주민총회에서 'STX 때문에 동네가 갈라지게 됐다'는 취지로 발언을 했을 뿐인데 이를 두고 마산시는 '지역 주민 갈등을 조장하고 STX 유치 반대를 선동했다'며 견책을 결정해던 것이다.

마산시는 사흘 뒤인 21일 결정 내용을 김연희 당시 소장에게 알렸고, 우여곡절 끝에 김 소장은 공직을 떠나 지금은 창원 대산에서 아름다운요양원 원장으로 있다.

김연희는 1986년부터 수정진료소 소장으로 일해 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에도 동네 주민들이 연락하면 한달음에 마을 곳곳을 찾아다닌 세월이 20년을 넘었다.

당시 동네 주민들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새벽에도 아프다면 자다가도 달려왔다. 20년 넘게 식구처럼 온 동네 혼자 사는 노인들 병수발도 도맡아 했다. 그런 사람을 하루아침에 다른 데로 쫓다니 말이 안 된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김 소장은 진료실에 손수 그린 마을 지도를 붙여 놓고 있었다. 집집마다 색깔을 다르게 했다. 빨간색은 고혈압, 파란색은 당뇨, 노란색은 독거노인이고, 녹색은 가족이 건강한 집이다. 평소 주민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김연희는 시인이다. 1991년 간호문학상 등을 받아오다가 2001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면서 문학의 길로 본격 나섰다. 2001년 펴낸 시집 <갯내음 버무린 진료소의 나날>이 얘기해 주듯이 김연희의 시는 수정 마을과 진료소가 없으면 성립하기 어려웠다. 2003년 펴낸 두 번째 시집 <꽃메아리>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까지는 현직 진료소장으로서 시집을 냈지만 이번에는 전직 소장으로 이력을 밝히면서 시집을 내야 하는 조건이 됐다. 이번에 펴낸 세 번째 시집 <시간의 숲>에는 현직이 '창원시 아름다운요양원장'으로 돼 있다.

김연희는 '책머리에' "새로운 출발지 '아름다운 요양원'에 몸을 담고/ 오늘 하루도 아름답게 살았나 반성하며/ 보다 나은 내일을 지향합니다./ 존재의 둥지에 깃든 구원의 사랑 강림을/ 두 손 모아 기도드리며."라 했다. 김연희에게서는 아무래도 인생이 시보다 더 아름다울 수밖에 없겠다.

시집은 5부로 나뉘어 있다. 4부는 수정과 진료소를 오롯이 담고 있다. 제목도 '진료소에서'다. 여기에는 부제가 '진료소에서 53'부터 '진료소에서 90'까지로 달린 작품 38편이 들어 있다.

이런 시를 읽으면 저토록 극진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다치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윗마을 독거어르신/ 가슴앓이 외로움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살갗에 비늘로 앉았습니까.// 절룩이며 기어 나오는 그리움도/ 손가락 끝 마디마디에서/ 까칠한 거스러미로 피어납니까.// 염라대왕님이시여/ 저승사자시여/ 부디 자는 잠에 데려가주시오// 아픔도 모자라/ 간지러운 친구를 보내셨지만/ 피고 지는 꽃처럼 바람결에 오르게 하소서."('소양증 귀하-진료소에서·89' 전문)

그랬더니 이런 메일이 당일 오전에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보낸이가 김○○이라고 지역 정치인 이름으로 돼 있어서 이 정치인이 나한테 메일을 보낼 일이 무엇 있을까, 이렇게 여기고 묵혀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설날 연휴 지나고 나서 열어 봤더니 제가 썼던 김연희 세 번째 시집 관련해 김연희 시인 남편이 보낸 고맙다는 인사 편지였습니다.  동명이인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보도하여 주신 <시간의 숲> 발간 기사 정말 고맙게 잘 보았습니다. 저는 저자인 김연희 씨 남편이며, 그동안 기자님의 얼굴은 모르지만 기사는 충실히 애독하고 있었습니다.

수정만 관련 기사뿐만 아니라 마산시의 전반적인 불합리한 사항들을 정말 냉철하게 판단해주시어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며, …… 기자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며, 개운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항상 건승하시고 좋은 일들로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흥감했습니다. 딱 한 분이라 해도 이렇게 알아주는 독자가 계실 때, 계심이 확인될 때 느끼는 그런 흥감입니다. 메일을 늦게 열어봐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을 보냈습니다. 제목은 '고맙습니다 복은 많이 받으셨겠지요^.^'로 달았습니다.

선생님, 경남도민일보 김훤주입니다. 보내주신 메일 반갑게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칭찬해 주신 데에 부응하고자 열심히 애쓰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제가 무심해서 답장이 늦었습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밖에는, 또 좀 곰살맞게는 하지 못했지만, 제 진심을 담았습니다. 한동안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하하.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