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창녕 소벌에서 미리 보는 낙동강의 아픔

김훤주 2010. 2. 2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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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우포로 알고 있는 창녕 소벌이 늪이 아니라 호수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듣고 확인하러 나선 21일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습니다. 7시 즈음 자동차를 몰고 가는데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알려진 대로, 소벌은 넷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물이 얕은 소벌(우포)와 물이 깊은 나무갯벌(목포)과 육지화가 꽤나 진행된 모래벌(사지포)과 이 같은 세 가지 특징을 모두 갖춘 조그만 쪽지벌.

철새들에게는 이렇습니다. 쪽지벌은 한적하기 때문에 쉽터가 됩니다. 물이 깊은 나무갯벌에서는 헤엄 잘 치는 오리 같이 몸통이 작은 새가 먹이를 얻습니다.

그리고 물이 얕은 소벌에서는 헤엄을 못 치거나 상대적으로 잘 치지 못하는 왜가리 같은 몸통이 큰 새가 먹이 활동을 주로 한답니다.

소벌은 토평천을 통해 낙동강과 이어집니다. 열왕산에서 물줄기가 시작된 토평천이 소벌과 나무갯벌과 쪽지벌을 이어주면서 허리를 휘감고는 낙동강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모래벌은 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낙동강과 토평천이 만나는 유어 다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토평천을 따라 1km쯤 들어가니 이른바 상리교가 나왔습니다. 틀로 찍어낸 듯, 다릿발이 여섯 개 있고 상판뿐 아니라 아래 바닥까지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다릿발이 하천 바닥을 파고들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돼 있으면 하천 바닥을 그대로 둬도 됩니다.

그런데 여기 지금 있는 다리는 하천 바닥을 골라서 그 위에 통째로 올려놓아야 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두 말 필요 없이, 하천은 상류가 높고 하류가 낮습니다.

상리교 상류 쪽 고여 있는 물.

상리교 하류 쪽. 메말라 있는 모습.

그래서, 이런 다리를 놓으려면 상류쪽에 맞춰 하류를 높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높이는 만큼 물의 흐름은 당연히 막히게 된답니다.

과연 그랬습니다. 다리 상류 쪽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하류 쪽에는 물이 메말라 있었습니다. 물이 빠져 나가는 토평천 길목에 생긴 이런 단순한 변화가 우포를 통째로 늪이 아니라 호수로 바뀌게 만든 것입니다.

계속 토평천을 거슬러 올라 소벌이 쪽지벌과 만나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옛적부터 소벌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이들이 수위 유지를 위해 물을 가두곤 하는 자리였습니다.

상류와 하류 높이 차이가 20cm 남짓 돼서 여기 길목을 차단하면 물을 막아 가두는 효과가 높게 나오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여기조차 물의 흐름이 거의 없었습니다. 물이 자연스레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상리교 바로 옆에 배수로가 따로 만들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 효능은 거의 없다는 얘기도 되겠지요.

수위가 올라가니까 당연히 생태 조건이 바뀌었습니다. 소벌 늪 곳곳에 솟아올라 물풀이 자라 있던 조그만 섬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거기서 노닐던 새들도 다른 데로 옮겨갔습니다. 큰 새가 노니는 소벌과, 작은 새가 노니는 나무갯벌의 차이가 사라지고 깊이나 높이가 다른 다양함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2008년 2월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대제방 쪽 모습. 물이 빠져 있어서 새들이 쉴 자리가 보장돼 있다.

2010년 1월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대제방 쪽 모습. 수위가 올라 사람들이 들어가 얼음을 지치고 있다.

또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의 표현대로 "우포늪의 정감 있는 경관을 연출하여 주던 논고둥이 가득 든 고무다라이를 허리춤에 동여매고 몸은 물 속에 집어넣고 손을 더듬어 물 속 수초에 매달려 있는 논고둥을 잡아내던 아주머니 모습(머구리 작업)이 사라졌"습니다.

"우포늪의 수위가 상승하여 머구리 작업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다리 하나로 말미암아 수위가 올라갔습니다. 단순한 수위 상승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자연과 인간의 생활상이 바뀌고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소벌은 이제 이 상리교라는 다리 하나 때문에 오랫동안 품어 왔던 다양함을 단박에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이 던지는 중요한 시사점은 다른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이명박 정권의 낙동강 살리기 사업입니다.

정부는 낙동강을 비롯한 전국 4대강에서 강바닥을 긁어내고 보(=사실은 댐)를 만들어 수위를 높이겠다고 했습니다.

소벌 바로 아래 하류에 만들고 있는 함안보를 두고 말하자면 낙동강 수위를 7.5m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수위를 올리면 지하수 수위도 덩달아 올라가 그에 해당하는 높이만큼 둘레가 습지로 바뀌고 말 텐데도 환경영향평가 따위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 제기가 학계와 환경운동단체로부터 잇따르자 목표 수위를 5m로 낮추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어떻게 달라질는지에 대한 면밀한 평가와 조사가 없기는 매한가지라고 합니다.

마창진 환경운동연합의 말대로 "우포늪의 생물은 낙동강과 유기적 연계 속에 살고 있으며 낙동강의 여울과 소로 나타나는 다양한 수심은 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런데 "낙동강에 함안보와 합천보가 설치되고 강바닥을 준설하게 되면 낙동강의 생태계는 파괴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우포늪의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멀리 물안개가 자욱합니다. 이번에 찍은 대대제방 가까운 비슷한 장소인데 물이 마찬가지 올라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상리교는 마창진 환경운동연합 조사 결과 소벌 수위를 30cm남짓밖에 높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소벌이 이토록 바뀌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낙동강이 그 열 배도 넘는 5m씩이나 높아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파괴력은 아무도 짐작 못할 정도로 엄청나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조그마한 변화지만, 그것이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간들이 제대로 모른다는 데에 슬픔과 아픔의 씨앗이 있습니다.

소벌에 대한 인간들의 상리교 설치가 그렇습니다. 낙동강에 대한 인간들의 함안보를 비롯한 댐 쌓기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소벌에 가니까 낙동강의 슬픔과 아픔이 보였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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