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문지방도 못 넘는 장애인의 세상이야기

김훤주 2009. 12. 2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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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앉지도 못하면서 손가락에 끼운 막대로 책을 펴냈습니다. 25살 결혼해 이듬해 첫 출산을 하고 후유증을 앓는 바람에 잇몸이 변형되면서 이가 안쪽으로 다 휘고 더욱이 말마저 잃어버린 서경희(61)씨. 

그이가 펴낸 수필집은 <숲 속에 햇살은 쨍그랑 나고>.
그이는 언어장애에 지체장애가 겹쳐 1급 판정을 받았으며 스물여덟에 이혼한 뒤 여태껏 투병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겨우 화장실 드나들기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원래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답니다. 학창 시절에는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 만큼 예쁘기도 하고 말글까지 잘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밀양 초동면 덕산리 덕대산 아래 조그만 감나무 농장에서 '당신 배 아파 낳지 않은 병신 자식 거두어 주신 나의 새엄마 조남규 여사'와 남동생에게 얹혀 사는 신세입니다.

서경희씨는 '들어가는 말'에서 "30여 년을 펜으로 글 한 자 못 쓰고 길에 뒹군 돌처럼 잡초처럼 살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 죽음의 문턱을 오갔지만, 그냥 살았습니다. 그냥 웃었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둔 제 마음에도 숲 속에 쏟아지는 햇살처럼 이렇게 쨍그랑 하고 햇살이 나는 날도 오네요"라 하고 있습니다.

사이버 세상에서는 그이 별명이 '새실쟁이'라 합니다. 왼손조차 쓰지 못한 채 손가락에 막대를 끼워 두드리는 컴퓨터 자판으로 날마다 세상을 향해 '새실'을 풀어놓기 때문이랍니다. 이렇게 해서 메마른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새실이 여기 이 책에 담겨 있다고 합니다.

서경희씨는 "8년 전 처음 컴퓨터를 접하고 '글로 일어나라! 넌 할 수 있어!'라고 큰 용기를 불어넣어준 숱한 인연들에 깊이 머리 숙"이는 한편으로 "세상에 숱한 저와 같이 크고 작은 장애가 있는 분들께 용기 내시라는 말씀"도 하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척박한 땅에도 꽃은 피기 마련이고 햇빛은 골고루 세상을 비"추기 때문이지요.

서경희씨 글 솜씨는 타고 났나 봅니다. 2003년 MBC 라디오 <세상 사는 이야기>에 '벙어리의 사랑 이야기'가 당선됐고 2005년에는 귀뚜라미 보일러 수필 공모전에서 '옹알이'가 당선됐습니다.

서경희씨의 책은 1장 '눈물처럼 고여 오는 아련한 그리움' 2장 '감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탱자' 3장 '산다는 건 다 거기서 거기지' 4장 '숲 속에 햇살은 쨍그랑 나고' 5장 '살아 있어 미안해' 6장 '살아갈 이유'로 짜여 있습니다.

서경희씨 소원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 넘어지는 문지방을 고치는 일과 요양 시설로 들어가지 않는 것, 그리고 남편 재혼에 방해가 될까봐 시어머니가 내다버린 딸의 소식을 아는 것 세 가지뿐이라 합니다. 어떤 부분은 우리가 거들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소금나무. 248쪽. 1만원.

김훤주

숲속에 햇살은 쨍그랑 나고 - 10점
서경희 지음/소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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