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라고 하면 저는 풍성한 많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저처럼 40대 중반 이쪽저쪽으로, 농경 세대의 막내라면 누구에게나 새겨져 있는, 그런 원형질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비집이 먼저 생각납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제비집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지저분해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향 시골 집 대들보에 들어서는 제비집은 기를 쓰고 뜯어내셨습니다. 대들보에 제비집이 들어서면 대청마루가 통째로 더러워집니다.
그러나, 처마 밑에 들어서는 제비집은 몇 차례 뜯어내시다가 못 이기는 척 용납하시곤 했습니다. 축담만 더러워지고 그것은 물질이나 비질로 어느 정도는 감당할 수 있으셨기 때문이리라 저는 짐작합니다.
지금 가수 이름은 잊었지만, 제가 어릴 적 유행하던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 노래하는 제비처럼" 운운하는 노래도 좋습니다. 촌놈이라 그런지 저는 그 노래 가락이, 제비처럼 리드미컬하고 가볍고 빠르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물찬 제비, 도 생각이 납니다. 저보다 나이가 적은 이들에게는 물찬 제비를 본 경험이 아무래도 드물 것입니다. 저는 물찬 제비, 물차는 제비를 자주 봤습니다. 집 둘레에 명덕 못이라는 저수지가 있었는데, 여기서 잽싸게 물을 잡아채고는 곧장 떠오르는 제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여름이나 가을에 동네 '배껕마당'에서 보리 타작 나락 타작을 할 때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녀석도 제비들이었습니다. 저는 어른들 돌리는 탈곡기 소리도 즐거웠지만, 손에 잡힐 듯 사람 가까이까지 오면서도, 전혀 걸리적거리지 않고 빠져나가 다니는 제비들이 신기했습니다.
여름철 날씨가 젖은 솜처럼 축축할 때 제비가 낮게 날아다니면 저런 좀 있다 비가 올 모양이다 하시며 빨랫줄에 널려 있던 빨래를 걷고 장독대에 널어뒀던 고추를 옮기시는 등 비설거지를 서두르시던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물론 <흥부전>에 나오는, 박씨 물고 복을 갖다준다는 제비는, 아마도 기억보다 더 깊숙한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 있지 싶습니다. 삼월 삼짇날이 제게 애써 기억돼 있는 까닭도, 추운 겨울을 견뎌냈대서가 아니라, 강남 갔던 제비가 물고오는 즐거움의 풍성함 때문이지 싶습니다.
올 9월 18일 진주 경상대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제비를 봤습니다. 선비정신 관련한 학술대회도 좋았지만 한두 마리가 아니라 무리 지어 있는 제비는 더 좋았습니다. 전깃줄에 앉아 있었는데, 아마 그날 날씨가 맑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는지도 모릅니다.
날씨가 아주 맑아 햇살이 마구 쏟아진다는 느낌이 들어 하늘을 쳐다봤더니 그야말로 '터질 것 같이 부풀어오른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저렇게 제비들이 있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 제비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기억과 경험과 이야기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습니다.
허무했지만, 상큼했습니다. 제비처럼 날렵하면서도 부질없이, 그렇게 세상을 살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제비는 너한테 즐거운 무엇인데, 너도 과연 세상한테 즐거운 그 무엇이 되느냐'는, '아픈 각성의 바늘'한테 찔리기도 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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