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자기와 같은 시인이 되지 못해 아쉬워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오인태 시인입니다. 저는 그이가 쓴 글을 읽고 웃다가 허리를 삘 뻔했습니다. 그이의 글은 경남작가회의가 이번에 펴낸 <경남 작가> 16호에 실려 있습니다.
경남작가회의 회장인 오인태는 <그곳인들 바람불지 않겠나> <아버지의 집> <혼자 먹는 밥> <등 뒤의 사랑> 등 시집을 이미 네 권이나 낸 우리나라 중견 시인입니다. 홈페이지도 http://www.sibab.pe.kr 라고, 하나 운영하고 있습지요.
<경남 작가> 머리에 올린 글 '마리 앙투아네트, 그리고'에서 오인태는, 이명박 대통령의 상상력과 수사(修辭)가 뛰어나다고 칭찬합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이명박이 시인이 되지 못했음을 한탄합니다.
글은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후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화-프랑스혁명 직전 사람들이 남편인 루이 16세한데 '빵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빵이 없거든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얘기에서 시작됩니다.
이어서 오인태는 대통령의 독특한 상상력과 수사를 들어 보입니다. 이렇습니다. 산골짜기에서 물난리로 여럿이 죽고 다치자 이를 안타까워 하며 했다는 말입니다.
"산간에 흩어져 사는 주민들을 모아 아파트에 살게 하면 되지 않느냐. 그러면 수해가 나도 우왕좌왕하지도 않고 국가가 관리하기도 편하지 않겠느냐." 그러면서 오인태는 한 마디 덧붙입니다. "도대체 뭘 해 먹고 살라고?"
대형 마트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하소연하는 골목상인에게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팔아보라."고 주문했답니다. 등록금 인하를 외치는 대학생에게는 "장학금을 받아라."고 했답니다. 청년 실업 대책을 요구하는 88만원 세대에게는 "눈높이를 낮추라."고 요구했답니다. 사람 염장지르고 약 올리는 상상력이며 수사입니다.
오인태는 이런 이명박을 두고 "대통령의 독특한 상상력과 수사는 흔히 우리의 상식과 이성을 넘어선다."고 했습니다. "<시와시학> 2009년 봄호에서였을 것이다. 거기서 이명박 대통령은 어렸을 적 꿈이 시인이었다고 밝혔던 걸로 기억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차라리 그가 시인이 되었더라면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훨씬 좋았을 뻔했다."고 적습니다. 까닭은 이렇습니다. "시는 합리적 이성 너머에 있는 상상력의 세계,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세계에 가까이 있는 탓이다."
앞 줄 왼족에서 두 번째가 오인태. 가운데가 저희 경남도민일보 서형수 사장.
오인태는 이명박 대통령이 마리 앙투아네트와 엇비슷하게 예술가 기질이 풍부한 사람으로 여기나 봅니다.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거든요. "마리 앙투아네트도 궁궐을 뛰쳐나와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면 그녀의 삶도, 그녀에 대한 역사의 평가도 영판 달라지지 않았을까."
오인태가 쓴 글을 읽고 나니, 저도 시인 이명박이 대통령 이명박보다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말 그대로, 이명박에게도 좋고 이명박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그런 일이 왜 일어나지 않았는지 정말 안타깝습니다.
김훤주
아버지의 집 - 오인태 지음/고요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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