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들이 장만해 준 값비싼 생일 선물
10월 10일 아이들한테서 생일 선물을 받았습니다. 물건은, 택배로 왔습니다. 둘째 현지가 생일 선물이라고 건네주는데, 웬지 주저주저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싫은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즐겁고 기꺼운 것만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포장을 뜯었더니, 뜯기 전 아주 짧은 순간 예상했던대로 옷가지였습니다. 꽤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아주 얇게 저며 가벼운, 그러나 아주 따뜻할 것 같이 여겨지는, 오리털 제품이었습니다.
액면가가 무려 22만원이었습니다. 중3인 현지한테 실제로 얼마 줬는지 물었더니 웃으면서 "비밀"이라 했습니다. 나중에 며칠 뒤에 첫째 현석한테 전화해 물었더니 "50% 세일해서 11만원"이라 했습니다.
2. 얼마 안 되는 용돈 갖고 했던 잔소리
제게 주저해지는 느낌이 들었던 까닭을 알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한테 제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거든요. 용돈을 그리 많이 주지도 못하면서 "용돈 좀 아껴 쓰고 바로 쓰라."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습니다.
제대로 쓰면 남는 돈이 별로 없을 줄은 안다만, 지금 우리 사정이 그렇지 않니. 니네 돈 쓰는 데 일일이 간섭할 생각은 아니다만, 한 번씩 물건 사는 것 보면 겁이 날 때가 있어. 조금이라도 남겨 저금해 버릇해라. 운운.
아이 둘 가운데 첫째 아들인 것 같은데, 그 때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 올해 헤드폰 말고 옷은 세 개밖에 안 샀어요. 제가 뭐라 받았겠습니까. 이 친구야, 아빠는 올해는 물론 지난해도 옷은 아예 사지도 않았단다. 선물이 몇 개 들어오기는 했지만. 이랬답니다.
그러면서 이랬지 싶습니다. 야,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청바지도 다 니 것인데 지금은 안 입는 옷이야. 저는 별 뜻 없이 했는데 아들은 그렇지 않았는가 봅니다. 아빠 그거 (산 게 아니고) 누가 준 거예요. 저한테 안 맞아요. 이렇게 대꾸를 했습니다.
아이들 의논하고 선물을 고르고 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빠한테 무엇이 제일 필요할까 따져 생각했을 것입니다. 따뜻한 겨울옷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데 뜻이 모였겠지요. 인터넷을 뒤져 자기네 지불할 수 있는 범위에서 알맞은 옷을 찾느라 또 한동안 시간을 썼을 것입니다.
3. 아이들 눈에 비쳤을 궁상
아이들이 '따뜻한 겨울옷'을 고른 까닭을 알 것 같았습니다. 지난 겨울에 아들 녀석 겨울옷을 빌려 입는 궁상(窮相)을 제가 떨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아들 청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이를 아이들한테 뻐기듯이 말하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따뜻하게 걸칠 수 있는 겉옷이 두 벌 있었습니다.(두 벌 더 있었는데, 하나는 낡아서 못 입게 됐고, 하나는 자취가 없어졌습니다.) 그 두 벌 옷 빨 때가 되면 아들 겉옷을 빌려 입곤 했습니다.(물론, 양해는 얻었지요만) 아들은 웃으며 그리 하시라 해 줬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이렇게 궁상을 떨어 아이들로 하여금 큰 돈을 쓰게 만들었다는 자책이 되면서도, 아이들 마음씀이 고마웠습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다짐을 했습니다. 첫째는 앞으로는 궁상을 떨지 말아야지, 둘째는 아이들 팍 믿고 용돈 쓰는 데 아무 말 말아야지, 입니다.
4. 한 번 더 하는, '간섭하지 말아야지' 다짐
궁상은, 이렇습니다. 여태 저는 그게 궁상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아이들도 물론 우리 아빠 궁상 떠네, 이리 비꼬듯 여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노는 옷 그냥 입는 뿐이고 그게 그냥 편하다고 여겼습니다. 아이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전혀 생각지 못한 생각 짧은 행동이었습니다.
60년대와 70년대 어린 시절을 그렇게 지낸 까닭으로 그것을 그냥 검소함으로만 여긴 잘못입니다. 아울러, 지금도 20년 전 빛나던 20대와 마찬가지로 여기고, 아무렇게나 입어도 후줄근하지 않고 빛이 나리라 착각한 잘못입니다. 쉰 가까운 40대에 맞춰서 옷차림도 좀 신경을 써야 하겠습니다.
아이들 용돈은, 이렇습니다. 아이들이 돈을 제대로 쓰는지 어떤지는 지금도 잘 모릅니다만, 적어도 여태껏 함부로 쓰거나 엉뚱하게 쓰지는 않았습니다.(이런 정도는 뒤에서 지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저는 믿지 못하고 아껴 써라, 계획을 세워 써라 닦달을 해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거기에는 제 어릴 적 기억이 끼여 있었습니다. 용돈(많지는 않았습니다만) 받으면 군것질이나 짤짤이(아시죠?) 따위로 곧바로 다 써 버리고 나머지 기간은 버스비도 없어서 먼 길을 걸어다니곤 했습니다. 제 과거에 비춰 아이들을 재단한 잘못입니다.
저는 이 생일 선물을 여태까지 세 번 입었습니다. 아직 가을이라 전혀 춥지 않은데도 말씀입니다. 자랑도 하고 싶고 아이들한테 마음에 쏙 든다는 표현도 하고 싶었습니다. 올 겨울이 제게는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이상 난동'이 될 것 같습니다. 한편 부끄럽지만 그래도 다른 한편 뿌듯한,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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