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유족들에게 받은 감사패와 상품권

기록하는 사람 2009. 10. 2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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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회장 노치수)가 4·19혁명 이후 처음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합동위령제를 지내던 날이었습니다.

1부 위령제가 끝나고 2부 추모식을 진행하던 중, 행사 순서를 의논할 일이 있어 사회를 보고 있던 서봉석 운영위원(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과 막간에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얼핏 서봉석 위원이 들고 있는 행사 순서지에 제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 이게 뭐죠?" 했더니, 서 위원이 "하여튼 이런 게 있어요. 그냥 제가 부를 때 카메라 놔두고 나오면 돼요."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봤더니 "감사패 전달…"이라는 글자가 보이더군요.

이 사진은 행사참석을 위해 서울서 오신 정호기 성공회대 연구교수께서 찍어주신 겁니다.


순간 잠시 갈등이 되더군요. 유족회 총회 자리라든지, 다른 행사에서라면 모르지만, 하필 숙연하고 비통하기까지 한 이런 자리에서 감사패를 받는다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치수 회장께 그런 이야기를 하려 했더니 "아무 말 말라"면서 손을 내저으시더군요. 뭐 어쩔 수 있습니까? 그냥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사실 이번 위령제가 끝나면 유족회 일에서 슬슬 손을 뗄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위령제 준비과정에서도 안내팸플릿과 자료집 책자를 만들어드리는 일 외에는, 의도적으로 운영위원회 참석도 피했습니다. 어차피 유족회의 일은 유족들이 자력으로 알아서 해야 하고, 저같은 외부 사람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족회가 자리를 잡기 전에는 실무력 보조 차원에서 도와드릴 수밖에 없었지만, 창립한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고 위령제 같은 큰 행사까지 치렀기 때문에 이제 저는 슬슬 거리를 두는 게 맞다고 본 거죠.

그런데 이런 감사패를 받고 보니, 다시 부담이 확 생기더군요. 게다가 감사패와 함께 전달된 봉투 안에는 10만 원 상품권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무궁화 장식과 봉황이 국가주의를 상징하는 것 같아 좀 어색하지만, 그래도 참 고맙다.


10만 원 상품권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나치게 깨끗한 척 하는 것 아니냐고 흰눈으로 보실 분도 계시겠지만, 제 나름대로 '기자 윤리'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군기 반장'처럼 행동해왔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티끌만큼도 문제될 일이 생기면 잡아먹으려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눈을 번득이고 있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상품권은 그냥 받아 쓰기로 하고 아내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아내도 "이런 거 받아도 돼?"라며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내가 기자라서 주는 게 아니니까 괜찮아."


그런데, 헉! 감사패의 내용을 보니 "경남도민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라는 글자가 첫머리에 뚜렷이 박혀 있는 게 아닙니까? 이것 참~, 난감한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의 촌지엔 융통성없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인간이…"라며 비난하는 소리가 벌써 들려오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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