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가을에 핀 개나리를 보고 든 생각

김훤주 2009. 10. 1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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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월남 이상재 선생이 독립운동을 벌이는 하나로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답니다. 인민을 일깨우는 일을 한 셈이지요. 그래서 당연히 일제 경찰들이 달라붙어 감시하고 일정 수준을 넘으면 해산시키고 그랬습니다.

겨울철이었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강연장에 들어섰는데, 강연을 들으러 모인 사람들도 많았지만, 경찰들 또한 많았답니다. 월남이 이를 보고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이를 듣고 말뜻을 알아차린 청중들은 웃었고, 경찰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했답니다.

월남이 한 말은 이랬습니다. "겨울인데도 개나리들이 많이 피었군."

당시 일제 경찰을 깔보는 말이 '개'였습니다. 권력의 주구(走拘) 따위로 쓰는데 여기에도 '개'가 들어 있습니다. 주구, 달리는 개, 입지요. 월남의 개나리는 <개+나리>였습니다. 나리는 나으리가 줄어든 말입니다.


그냥 드려 본 말씀입니다. 그저께 아침 출근하는 길에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개나리 꽃을 보는 바람에 든 생각입니다. 툭 나서면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노란 개나리가 눈에 띄더군요. 개나리, 저는 이것들을 좀 불쌍하게 여깁니다. 이른 봄 추위가 채 가시기 않았는데도 그 크지 않은 꽃잎을 내밀어야 하는 운명이 좀 서글퍼서요.

아마도 고등학교 때, 다른 문학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한 번은 빠지고는 했던 김수영에 파묻혀 있던 시절, 김수영의 줄글 속에서 읽게 된 이런 시, '입춘에 묶여 온 개나리'가 그런 생각을 갖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가을에 피어난 이 개나리는 다른 방식으로 또 좀 처량했습니다.


김재원이라는 사람이 썼습니다. 읽기 좋으시라고, 원래는 한문이 그대로 나와 있었지만, 제가 괄호를 치고 안에다 집어넣었습니다. 한 번 읽어 보시지요. 저는 처음 읽었을 때 소름이 돋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966년 발표한 작품이랍니다.

 개화(開花)는 강 건너 춘분(春分)의 겨드랑이에 구근(球根)으로 꽂혀 있는데 바퀴와 발자국으로 영일(寧日) 없는 종로(鐘路) 바닥에 난데없는 개나리의 행렬(行列). 

한겨울 온실에서, 공약(公約)하는 햇볕에 마음도 없는 몸을 내맡겼다가, 태양이 주소를 잊어버린 마을의 울타리에 늘어져 있다가, 


부업(副業)에 궁한 어느 중년(中年)사내, 다시 계절을 예감(豫感)할 줄 아는 어느 중년사내의 등에 업힌 채 종로거리를 묶여가는 것이다. 


뿌리에 바싹 베개를 베고 신부(新婦)처럼 눈을 감은 우리의 동면(冬眼)은 아직도 아랫목에서 밤이 긴 날씨. 새벽도 오기 전에 목청을 터뜨린 닭 때문에 마음을 풀었다가……. 


닭은 무슨 못견딜 짓눌림에 그 깊은 시간(時間)의 테로리즘 밑에서 목청을 질렀을까. 


엉킨 미망인(未亡人)의 수(繡)실처럼 길을 잃은 세상에, 잠을 깬 개구리와 지렁이의 입김이 기화(氣化)하는 아지랑이가 되어, 암내에 참지 못해 청혼(請婚)할 제 나이를 두고도 손으로 찍어낸 화병(化甁)의 집권(執權)의 앞손이 되기 위해, 알몸으로 도심지(都心地)에 뛰어나온 스님처럼, 업혀서 망신(亡身)길 눈 뜨고 갈까. 


금방이라도 눈이 밟힐 것같이 눈이 와야 어울릴, 손금만 가지고 악수하는 남의 동네를, 우선 옷 벗을 철을 기다리는 시대여성(時代女性)들의 목례(目禮)를 받으며 우리 아버지가 때없이 한데 묶어 세상에 업어다놓은 나와 내 형제같은 얼굴로 행렬(行列)을 이루어 끌려가는 것이다. 온도(溫度)에 속은 죄(罪)뿐, 입술 노란 개나리떼


…… 온도에 속은 죄뿐, 입술 노란 개나리 떼.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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