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시한부 인생의 아내가 맛에 빠진 까닭

김훤주 2009. 8. 10. 11:57
반응형

그야말로 혼자 생각일 뿐이겠지만, 이 책 <송학운 김옥경 부부의 나를 살린 자연식 밥상>을 집었을 때 퍼뜩 머리를 때리고 지나간 생각은 바로 "얼마나 암담했을까"였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무력감에 빠졌을까"였습니다. 아내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편을 위해 자연식을 시작했답니다.

◇시한부 인생의 아내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 "나는 17년 전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암 환자의 아내다." 책 들머리에 있는 표현입니다. 당시 사정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아무 사실도 제시돼 있지 않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래서 그 절실함을 더 잘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정이 어땠을까? 얼마나 캄캄하고 절망스러웠을까. 몸과 마음이 받는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절해고도보다 더했을 고독감은 또 어떻게 감당했을까. 여섯 달 뒤에 한 사람은 숨이 끊어져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머지 식구는 팽개쳐진다는 실감이 과연 들기나 했을까.

여섯 달 시한부 인생 송학운의 아내 김옥경은 "의사 말대로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할지라도, 단 1%라도 희망이 있다면 생명의 끈을 붙잡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절망 속에서 부부는 '음식과 환경을 바꾸는 결단'을 선택했습니다. "사람이 모여 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산중 생활은 우리의 몸 곳곳을 치유해 주었다. 온전한 자연 속에 둥지를 틀고 난 뒤 나는 제 2의 환경인 '먹을거리'에 눈을 돌렸다."

사진은 모두 동녘라이프 출판사에서 제공해 줬습니다.


이른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밥상', '자연식'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약'이라는 생각으로 꼬박꼬박 챙겨 먹었지만 남편은 금세 싫증을 내고 말았다. 평생 고기를 즐기던 그에게 채식이 입에 맞을 리 만무했다. 나 역시 조미료와 양념이 강한 음식에 익숙해진 터라 밋밋한 음식들을 먹는 것이 힘들었다. 아무리 생명을 구하는 음식이라지만 식사시간이 고통스럽기만 했다." 핵심은 '맛'이었던 것입니다.

◇목숨 걸고 하는 자연식 = 만약 여기서, 하기 쉬운 선택을 아내가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남편과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고 편하게 당장 몸과 마음이 시키는대로 움직였다면 그 결과는 보통 옆에서 듣는 얘기랑 별로 다르지 않았겠지요. '정성껏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내 김옥경이 채식(菜食)에다 색을 입혀 눈을 즐겁게 하고 맛을 더해 혀를 기쁘게 하고 향을 뿜어 코를 놀라게 하려 애쓴 까닭은 바로 '목숨'이었습니다. 슴슴 담담해 겉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 은근함만 있는 채식 위에 그럴듯한 멋을 얹은 목적이, '즐거움'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즘 과학 연구 결과에서도 채식만으로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고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음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답니다. 보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편만 해도 그렇다. 매일 고기만 먹던 한 순간 채식으로 돌아선 후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투병 중이던 때를 제외하곤 체력이 약해졌다거나 몸에 불편을 느낀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성품까지 온화해져 부부금실도 좋아졌다."

그러나 채식이 쉬운 일일까요? "병 치료라든지 급박한 일이 아니면 평생 별 탈 없이 이어오던 식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정말 힘들다. 게다가 자연식은 평생 지켜가야 할 약속이다. 처음에는 힘들다. 그러나 제대로만 하면 자연식을 통한 변화를 몸이 먼저 느낀다."

◇목숨을 17년 동안 건 보람 = "건강을 지키려면 '먹어야 하는 음식'보다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병이 생기고, 필요한 음식을 고루 먹지 않아 병이 커진다.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은 화학조미료와 육류, 생선, 유제품이다. ……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기쁘고 행복하게, 온몸을 살리는 천하 최고 보약을 먹는다는 마음으로 먹어야 진짜 보약이 된다."


이런 보람도 있는 모양입니다. 밀 따위 곡식으로 모양과 맛을 고기처럼 내는 '밀고기' 요리까지 장만할 수 있어진다는 사실. 밀고기새싹말이(봄), 닭고기맛밀고기(여름), 단호박밀고기(가을), 떡갈비맛밀고기(가을), 밀불고기(겨울). 공통 재료는 글루텐, 생수, 비트, 대두이고 내려는 맛에 따라 양파, 호두, 캐슈넷, 아몬드, 잣, 땅콩, 잣이 더해진다.

화학조미료를 대체하는 것도 사실은 큰 일인데 천연조미료와 천연 양념이 손쉽게 확보함으로써 이도 해결했답니다. 다시마가루, 참마가루, 표고버섯가루, 양파가루, 마늘가루, 사과가루는 물론, 꿀·조청(단 맛), 가루간장·구운소금(짠 맛), 레몬즙·매실청(신 맛), 들깨가루·아마씨·참깨(고소한 맛) 같은 양념거리 장만방법까지 정리했습니다. (초)고추장, 냉면 소스, 쌈장, 채소국물, 양념간장, 양념조림장, 마요네즈 소스, 치자 소스 제조법은 덤입니다.

이 같은 자연식은 다섯 원칙에 따릅니다.' ①모든 고기를 없애고(생선도 안 먹습니다) 철저하게 채식하고 ②발효 식품도 없애며 ③5대 영양소 균형(탄수화물 60, 단백질·지방·비타민·무기질은 10씩)을 맞추며 ④제철 음식을 위주로 챙기고 ⑤한 끼에 다섯 가지를 넘지 않도록 소박하게 먹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철학도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음식은 맛과 향과 색과 멋이 있어야 한다. 둘째 인생은 즐겁고 기쁘게 지낼수록 좋다. 셋째 자연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넷째 생명에는 대안이 없다. 다섯째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

그이 부부는 우리 경남의 양산 원동면에 살고 있습니다. 2007년에 이들 부부가 비슷한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이번에 나온 책과 어떤 차이가 얼마나 있는지는 사실, 제가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누리집은 자연생활의 집www.naturehouse.co.kr. 동녘라이프. 192쪽. 1만2800원.

김훤주
※ <경남도민일보> 8월 6일치에 실은 원고를 조금 고쳤습니다.

자연식 밥상 - 10점
김옥경 지음/동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