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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쌍용차에 투입된 것은 '공권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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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일 경찰이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노동조합이 점거하고 있는 도장공장 건물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1일 밤에는 노조가 점거하고 있던 프레스 공장 두 곳을 경찰이 장악했습니다.

이른바, '공권력' '투입'입니다. 모두들 공권력 투입이라 떠들고 있습니다. 한겨레·경향 같이 그래도 객관 공정한 신문들은 '공권력'이라는 표현을 좀 저어하는 듯하지만 영혼이 악(惡)한 조중동이나 영혼이 없는 나머지들은 '공권력'이라고 서슴없이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같은 '공권력' 투입으로 치명상을 입고 있는 민주노총조차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니 한겨레·경향의 저어함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따옴표로 남의 말을 끌어오는 경우에는 '공권력'이라는 낱말을 쓸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민주노총은 21일 총파업 기자회견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번 총파업은 쌍용차 공권력 투입을 규탄하고, 올바른 쌍용자동차 정상화를 통한 총고용 쟁취를 위한 것이자, 비정규법과 미디어법, 최저임금법 등 이른바 MB악법 반드시 저지하기 위함입니다."(좀 많이 비문(非文)이네요. ^.^)

민주노총 경남본부도 마찬가지입니다. 20일 발표한 성명서는 제목이 '정리해고, 강제집행, 공권력 투입은 살인이다'입니다. 이어 " 용산참사 철거민들이 아직도 영안실 냉동고에 있는 현실에서 또 다시 위험물이 가득한 도장공장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제2의 용산참사를 불러 올 것이다."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언론노조도 파업 깃발을 내걸고 21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집중 투쟁에 들어갔습니다. 경남도민일보지부도 전체가 움직이지는 못하고 10명이 여기 이 투쟁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1979년 8월 12일치 기사.


2.

그렇지만 '공권력'이라는 낱말에 대한 시비는,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더라도(또는 상황이 이토록 심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더) 한 번 제대로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데올로기 투쟁'이라는 측면이 전체 국면에서 무시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명박 정부가 동원하는 폭력 도구들을 '공권력'이라 이르면 안 된다고 봅니다. 공권력(公權力)이라 하는 그 순간, '경찰' '군대'라 할 때 드러나는 폭력 수단들의 구체적인 모습이 달아나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구체적인 모습이 사라진 빈 자리에는, 추상화된 국가 폭력의 공공성이 슬그머니 대신 들어옵니다.

이런 논리는, 이를테면 어떤 조합원이 적개심에 가득차 "공권력이 투입되면 공장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하는 순간에도 그대로 작동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공권력이 나쁘다 한들, 듣고 보는 대다수는 '공적인 권력'으로 여기기가 십상입니다. 따라서 노조 투쟁의 정당성도 가볍게 부정되기 마련이겠지요.

게다가 '공권력'은 1980년 전두환이 집권을 하면서 '남용'되기 시작했다는 혐의가 짙습니다. 그러니까 7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 따위에서 '공권력'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계엄령이나 비상조치에는 '군대'가, 그렇지 않은 때에는 '경찰'이 대학이나 야당 당사에 '진주' 또는 '진입'을 했을 뿐입니다.

심야에 밀어닥친 기동경찰.

서울시경국장 발언 기사.


1979년 8월 11일 일어난 YH 여공 신민당사 농성 진압이 보기가 됩니다. 이튿날 조선일보에는 관련 기사가 여럿 있습니다만 '공권력' 표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심야에 밀어닥친 기동경찰" "경찰 신민당사 진입"이라 돼 있으며 뿐만 아니라 서울시경국장조차 '공권력' 대신 "경찰 병력을 당사에 진입시켰다"고 했습니다.

조선일보 1989년 11월 2일치 19면.

전두환 정권은, 광주에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들어섰기 때문에 특히 정통성이 없었습니다. 콤플렉스에 걸린 전두환은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공권력'이라는 낱말을 자주 들먹였습니다. 전두환이 자못 엄숙한 표정을 짓고 학생운동을 좌경 용공으로 몰면서 '본인은' '공권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장면이 저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이 보기로는 1989년 11월 1일 벌인 마창노련 파업을 들 수 있겠습니다. 11월 2일치 조선일보를 보면 부제가 "어제 하루 '통일'에 공권력 투입 등 항의"라 돼 있습니다. 신문뿐 아니라 마창노련도 '공권력'이라는 표현을 썼군요. 11월 1일 기자회견의 제목이 '마창노련 탄압 분쇄 및 공권력 불법 연행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이었습니다.

3.
이데올로기 투쟁이라는 측면에서도 공권력보다 경찰, 군대라 하는 편이 낫습니다. 사실 관계도 공권력이 덜 맞습니다. 상대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하고 명령하기에 국가 권력은 바로 제도화된 폭력입니다. 국가 권력은 발생 이래로 구성원 전체의 공익보다는 지배집단의 사익을 위해 주로 쓰입니다. 

이렇습니다. 며칠 전 <다시 쓰는 한국근대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홍경래의 난에 대한 얘기입니다. 1812년 4월 19일 홍경래가 정주성에서 전사했을 때 관군의 포로가 1983명이었답니다. 왕조의 처분은 아주 가혹해서 열 살이 넘은 남자 1917명은 나흘 뒤 모조리 목을 잘랐고 나머지는 여자들과 함께 모두 노비로 삼았습니다.

이런 잔혹한 처분은 1862년 민란이 경상·전라·충청 삼남을 휩쓸 때도 마찬가지여서, 주동은 죄다 효수됐고 적극 가담자 또한 중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왕권이라 그렇지 근대국가는 다를 것이다 이렇게 여기고 싶겠지만 전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어지간하면 법률에 따라 처분하려 한다는 점만 다릅니다. 지배집단만을 위하는 권력 행사일 뿐입니다. 촛불을 진압하고 조중동 불매운동을 처벌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을 몰아치고 용산 참사를 일으키고 쌍용차 노조 탄압하고 비정규직 더욱 괴롭힙니다. '조선' 민중 잔혹사가 '한국' 민중 잔혹사로 이름만 바꿨을 뿐입니다.

이런 국가 권력의 직·간접 작용으로 쌍용자동차에서 벌써 네 명이 숨졌습니다. 투쟁에 나선 노조 간부의 아내가 불안에 시달리다 20일 목매 자살했습니다. 2일에도 희망퇴직한 한 사람이 밀린 임금 등을 걱정하다 자살했다고 하며 앞서 국가 권력이 면죄부를 준 정리해고로 말미암아 충격을 받은 두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답니다.

무책임한 정부와 무능한 경영진은 처벌하지도 못하고(않고) '먹고 튀어 버린' 상하이자동차에게는 손끝도 하나 되지 못하는(않는) 자본가계급만을 위하는 썩어빠진 국가 권력을 두고, 우리 같이 지배당하는 사람이 스스로 나서 '공권력'이라 고상하게 포장해 줄 필요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김훤주

열외인종 잔혹사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주원규 (한겨레출판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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