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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읍성

함안총쇄록 답사기 (9) 자이선·연처초연 독특한 바위와 영험한 기운 열린 광장이었던 되살려 내고픈 그 때 그 명승지 신령에 기도하던 자리 글자 새기고 단장해 개방 지금도 다수 흔적 존재 지금 함안읍성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골 풍경이지만 130년 전에는 빼어난 명승이 있었다. 자이선(自怡墠)이다. 얼마나 멋진 곳이었을까? 을 따라가보면 그럴 듯한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 갈라터진 돌등에 새겨진 전임 군수의 행적 자이선은 동헌이 등지고 있는 자리였다. 지금 함안초교와 함성중학교가 만나는 경계의 뒤편에 해당된다. 오횡묵은 1890년 6월 23일 처음 관심을 보였다. “비봉산 앞면을 보니 돌등 가운데가 갈라터져 휑뎅그렁하게 파인 것이 일부러 쪼개 깨뜨린 것 같았다.” 통인들의 대답은 엉뚱했다. “쪼개지기 전에는 부유한 아전들이 ..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4) 함안읍성의 지금 모습은? 조 씨네 돌담 감나무밭 언덕 범상찮다 싶었더니 성벽이라네 산지 중심으로 자취 뚜렷 민가에도 일부 형태 유지 잡초·흙만 정리해도 옛 모습 회복 충분 1510년에 처음 쌓고 1555년에 다시 쌓은 함안읍성은 오횡묵 군수 시절에 이미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다. 오횡묵이 1889년 4월 22일 읽은 에 7003척이라 적혀 있고 닷새 뒤 비봉산에서 내려다보며 "넉넉잡아 5리 정도(洽爲五里許)"라 했던 많은 구간이 그랬다. 다시 1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다른 지역 사람들은 물론 함안에 사는 사람들조차 함안읍성이라 하면 대부분 무너지고 허물어진 정도를 넘어 거의 없어졌다고 여기고 있다. 산지에 쌓은 읍성은 대부분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성벽과 치성에 더하여 마른해자와 명문 각석도 확인이 되었다. 옛..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3) 함안읍성의 130년 전 모습 북쪽은 장대 남쪽은 달구경 명소 동서남북 4문4색 서문, 지금 '성고개'에 위치 비밀통로로 쓰다 허물어져 남문은 민관 어울리던 장소 등불 낙화 구경 등 함께해 방 내걸고 치안 살피고 사람 출입 잦았던 동문 북문은 위치 탓 이용 적도 북장대는 군사지휘소·피서지로 활용 무너지지 않은 지과정 남쪽 성벽 함안읍성은 1510년 경상도에서 삼포왜란이 터졌을 때 처음 쌓았고 1555년 전라도에서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고쳐 쌓았다. 오횡묵이 함안군수를 지낸 때는 이로부터 330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읍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889년 4월 21일 부임 행로에 읍성이 나온다. “(무진정 방향에서 오면) 지과정 오른편(서쪽)이 읍성이다. 북문은 오래 전에 무너졌고 지과정 남쪽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동문은 절반쯤..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2) 관아 건물과 공간의 재구성 기록 따라 그렸더니 선명히 드러난 읍성 진면모 옛 모습 전쟁·풍화로 상실 문헌 바탕으로 본보 재현 관광자원 활용 가치도 충분 함안읍성 안팎의 조선시대 관아 건물은 6.25전쟁 때 모두 불탔다. 담장·주추·비석 등 돌이나 흙으로 된 것은 타지 않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없어졌다. 지금은 객사·동헌을 비롯한 몇몇 누대가 이름 정도만 이런저런 그림과 글로 흩어져 있을 뿐이고 사람들 기억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을 살펴보니 130년 전 모습을 상당 부분 재현할 수 있었다. 군수 부임 행차 오횡묵은 1889년 4월 21일 함안읍성 동문 밖에 이르러 지과정에 올라 잠시 쉬었다 남문을 거쳐 성안으로 들어간다. 다시 태평루를 지나 객사에 먼저 들렀다가 동헌 정청(正廳)에 자리 잡고 부임 행사(=좌기취坐起吹)를 치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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