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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원치 않았던 전쟁, 끝나지 않은 아픔 이야기 탐방대 (9)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 9월 21일 사천 대곡숲과 고자치고개로 첫걸음을 내디딘 '2015 경남 스토리랩 이야기탐방대'가 11월 22일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끝으로 탐방을 마쳤습니다. 여덟 차례에 걸쳐 하동·함양·창원·사천 등에 어려 있는 역사·문화·생태 유적을 둘러보고 이야깃거리를 찾거나 꾸리는 것이었습니다. 소설가나 시인 같은 문인과 블로거들로 구성된 일반인 탐방대는 11월 9일 거제 지심도가 끝이었고 진주의 청소년신문 기자들이 참가한 청소년탐방대는 11월 22일 거제도포로수용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거제도와 포로수용소 =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만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부산·대구를 비롯해 전국 여러 군데에 있었습니다. 전투가 있었던 전국 곳곳에서 포로들이 잡혔기 때.. 더보기
보도연맹학살사건 진실규명 잇따른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중 최대 규모로 알려진 보도연맹원 학살에 대한 진실이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거제유족회 서철안 회장 등 유족에 따르면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는 최근 사천(옛 삼천포 포함)과 거제·통영지역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또한, 마산과 창원·진해지역 보도연맹원 사건에 대해서도 이미 지난 2월 규명된 마산형무소 재소자 학살사건과 별도로 진실규명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천·거제·통영 학살사건 공식 확인 유족들이 받은 결정통지문에 따르면 사천에서는 100여 명의 보도연맹원이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7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각 지서에 소집돼 삼천포경찰서로 이송됐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사천군 용현.. 더보기
학살 유족 "지리산을 동해에 던지고 싶었다" 1949년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명목으로 국군과 경찰에 의해 무참히 학살됐던 경남 함양군 민간인희생자 86명에 대한 명예회복이 60년만에 이뤄지게 됐다. 알다시피 함양은 1951년 2월 7일에도 유림면과 휴천면에서 인근 산청군 금서면 주민을 포함한 민간인 705명이 무참히 학살된 지역이다. 한반도의 남쪽 내륙지방인 함양에서 왜 이렇게 많은 민간인학살사건이 일어났을까? 함양은 1953년 휴전 이후에도 가장 오랜 전쟁을 치른 곳이었다. 빨치산 토벌이 거의 마무리되는 1954년까지도 함양군은 전쟁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함양군민에게 한국전쟁은 가히 '7년 전쟁'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함양 사람들 중에는 '15년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마천애향회가 1994년 펴낸 는 "다른 지역에서는 한.. 더보기
21세기 ‘빨갱이’와 150년 전 ‘천좍쟁이’ 1. 1860년대의 공포 천좍쟁이 천좍을 아시나요? 아마 모르실 테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떳떳하게 실려 있는 이른바 ‘표준말’입니다. 제가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는 말씀도 됩니다. 천좍은요, 천주학(天主學)이 줄어든 낱말입니다. 그러니까 천좍쟁이는 천주학쟁이가 본디말이겠고, 천주학을 하는(또는 믿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됩니다. 천주학은 가톨릭을 이릅니다. 개신교는 그보다 나중에 들어왔지요. 1784년에 이승훈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으로 영세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됐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당시 억눌리던 이들에게는 해방하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느님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교리 앞에, 상놈과 여성은 물론 몰락 양반까지도 크게 동감했습니다. 반상(班常) 차별과 남녀(男女) 유별 논리를 등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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