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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학살

감사원의 진실화해위 감사결과가 반가운 이유 오늘 낮, 후배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감사원이 진실화해위원회 등 과거사 관련 기구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는데, 그게 감사원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으니 한 번 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MB 정권의 감사원이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 정권이 사사건건 과거사 진실규명에 발목을 잡아온 전력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뉴라이트 계열에서 활동하던 보수인사들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으로 임명하고 있다. 과거사 진실규명에 반대해온 인사들에게 그 일을 담당하는 기구의 자리를 맡긴다는 건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감사원 홈페이지에서 감사결과를 열어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내용이 달랐다. 용역 예산 정산이 철저하지 못했다는 몇 몇 지적사항과 함께 '발굴.. 더보기
열 일곱 학생까지 학살, 의혹이 사실로…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이 중·고생까지 보도연맹에 가입시켜 학살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저는 2001년 이같은 의혹을 를 통해 제기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국가기관으로부터 공식 확인된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 위원장 이영조)가 최근 유족들에게 통보한 '경남 마산·창원·진해 국민보도연맹사건 진실규명 결정서'에서 밝혀졌습니다. ☞관련 글 : 집단학살 진실규명 결정을 보는 특별한 감회 진실위 결정서에 따르면 1950년 7월 초순경 마산중학교 4학년생이던 당시 창원군 내서읍 감천리 송규섭(17·호적상으로는 1934년생) 군이 학교 교문 앞에서 해군방첩대 요원에게 연행되었으며, 이후 행방불명된 사실과 참고인들의 진술로 보아 보도연맹 사건.. 더보기
집단학살 진실규명 결정을 보는 특별한 감회 마산형무소 재소자 학살에 이어 마산·창원·진해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의 진실이 마침내 밝혀졌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 위원장 이영조)가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실위의 내부적인 결정은 지난달에 이루어졌습니다만, 관련 법률에 따라 국회 보고를 거친 후 공개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오늘에야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 또한 진실위는 아직 공식발표하지 않았지만, 확인된 희생자 유족들에게 전달된 '진실규명 결정서'를 제가 입수해 보도함으로써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지만, 특히 저는 이 사건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1961년 5·16쿠테타 세력이 진상규명운동에 나선 유족회 간부들을 .. 더보기
노인들이 난생 처음 기자회견을 한 사연 아버지가 군경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 당했던 1950년, 기껏해야 한 두 살, 많아야 열 살 안팎이었던 아이들이 성장하여 60·70대 노인이 됐다. 이른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유족들이다. 그들이 생전 처음으로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 가서 기자회견이라는 걸 했다. 오늘 오후 2시에 약 20분 간 진행한 기자회견 관련 기사가 연합뉴스와 뉴시스, 노컷뉴스 등에 뜨는 걸 보니 나름대로 회견은 잘 된 것 같다. 아마 오늘 저녁엔 지역방송에도 나올 것이고, 내일쯤엔 경남도민일보를 비롯한 지역신문에도 나올 것 같다. 보름 전 쯤이었다. 마산유족회 노치수 회장이 찾아왔다. 16일(금) 오후 마산지역 합동위령제를 하는 날 마산시청에 가서 유족들의 요구사항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날.. 더보기
드러난 암매장 유골, 어찌해야 할까요? 지난 59년간 진주시 외곽의 한 산골짜기에 암매장돼 있던 54구의 집단학살 희생자 유골이 마침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들 유골은 또다시 갈 곳이 없어 떠돌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당했지만, 국가가 그 안식처를 마련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3일에도 이 블로그를 통해 알려드렸듯이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서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가 무더기로 발굴됐습니다. ▷관련 글 : 김주완 '기자정신(?)' 많이 죽었다 ▷관련 글 : 학살 암매장 유골, 발굴해도 갈 곳이 없다 ▷관련 글 : "겨우 찾은 아버지 유골 모실 곳이 없네요" 어제(30일) 오후 2시 이들 유해에 대한 현장설명회가 열렸습니다. 설명회에 많은 보도진이 다녀갔지.. 더보기
집권세력의 콤플렉스와 노스탤지어가 무섭다 전쟁을 수행 중인 군인이라고 해서 법적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민간인들을 마음껏 죽이거나 여성을 강간하고 마을을 불태워버릴 수 있을까?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일제의 '군 위안부' 동원과 각종 학살만행이 영원히 인류의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런 일들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반인권적 범죄이기 때문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8일 순천지역 여순사건과 관련해 439명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집단 희생된 사실을 밝혀내고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은 이처럼 '진실 규명' 결정이 난 사건에 대해 '국가는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가해자에 대하여 적절한 법적·정치적.. 더보기
이들은 왜 열여덟 청상과부가 되었나 노점순·김서운은 동갑내기다. 노점순은 열 다섯, 김서운은 한 해 먼저 열 네 살 어린 나이에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신촌마을로 시집을 갔다. 그녀들의 시댁은 아래 윗집 사이였다. 김서운은 병곡댁, 노점순은 도북댁이라는 택호로 불렸다. 철없는 소녀의 나이로 각 가정의 며느리와 아내가 된 그들은 같은 해인 1949년 열 여덟에 첫 아이를 낳았다. 노점순은 그해 4월, 김서운은 9월초에 각각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김서운의 남편 최재일(당시 26세)은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하루 전날인 9월 6일 오후 노점순의 남편 박판갑(당시 23세) 등 마을 사람들과 함께 경찰에 끌려갔기 때문이다. 노점순의 남편은 집을 나서기 전 방에 누워있던 생후 4개월짜리 아들에게 입을 쪽 하고 맞추며 "아부지 갔다올께" 하고 말.. 더보기
"역사의 진실은 덮어도 또 나오게 돼있다" [인터뷰]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 "지금 우리는 암매장된 민간인학살 희생자의 무덤 위에 서 있다." 사회학자로서 한국현대사를 꾸준히 추적해온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가 어떤 글에서 했던 말이다. 그의 표현대로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는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학살로 암매장된 유골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희생자의 숫자는 최소 수십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을 헤아린다. 하지만, 흔히 나치의 유태인학살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일제의 각종 만행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대한민국 정부의 자국민에 대한 정치적 학살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희생자의 유족들마저 오랜 침묵을 강요당해왔다. 오랜 독재 치하에서 그걸 발설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돼 왔던 탓이다. 2005년 12월 출범한 '진실 화해를 위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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