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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 학살

한국전쟁기 창원에서 누가 어떤 짓을 벌였나 한국전쟁기 창원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우선 군(軍)이 행정·치안·사법 등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시·군 행정기관과 경찰은 군의 하부기관이 되었다. 그리고 우익단체와 지방 유지를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돼 군의 보조기구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평소 반정부 활동을 벌였거나 진보적 성향을 보여 정부의 특별 관리를 받아온 사람들은 예비검속 대상이 되어 학살되었다. 이미 정치범 또는 시국사범으로 수형 중이던 재소자들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한 후 당시 마산시와 창원군, 진해읍은 7월 8일 정부의 계엄령 선포에 따라 계엄사령부 통제 하에 들어갔다. 당일 이유성(중령) 마산지구위수사령관과 김성삼(대령) 진해군항사령관은 마산·고성·창원.. 더보기
부산, 만만해도 녹록잖고 버거워도 살아지는 탐방 루트 임시 수도 기념관 →0.7km 동아대학교 박물관 →2.8km →중앙공원 3.8km →남포동·광복동일대 0.5km →자갈치 시장 1.0km → 보수동 책방골목 0.4km →부산근대역사관 1.1km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40계단문화관) 임시수도기념관-이승만 대통령 임시청사 부산이 지금은 국제적인 영화제가 열리고 외국인 관광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화려한 국제도시로 탈바꿈했지만 6.25전쟁 당시는 전국에서 밀려든 피란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1950년 8월 18일부터 9.28 서울 수복 이후 10월 27일까지, 그리고 1.4후퇴로 서울을 내어준 뒤부터 휴전협정이 성립될 때까지 부산은 대한민국의 임시 수도였답니다. 임시수도기념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3호) 건물은 일제강점기 경남 진주에 .. 더보기
민간인학살 피해배상 판결문 전문을 보니... 울산 보도연맹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1심 승소, 2심 패소, 대법원 승소로 결론이 났습니다. 지난 6월 30일 대법원 1부의 판결이었지만, 판결문 전문이 나온 것은 최근이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국 현대사의 미해결 과제 중 하나인 민간인학살 사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덕분에 울산 이외지역에서도 유사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 관련기사 : 민간인학살 상반된 판결 왜 나왔나? ☞과거 관련기사 : 민간인학살 국가상대 손배소 줄 잇는다 ☞과거 관련기사 : 국가가 입 막아놓고 이제 와서 시효소멸? 이번 소송에서 가장 핵심은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를 언제로 볼 것이냐는 것이었는데, 이번 대법원 재판부.. 더보기
보도연맹학살사건 진실규명 잇따른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중 최대 규모로 알려진 보도연맹원 학살에 대한 진실이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거제유족회 서철안 회장 등 유족에 따르면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는 최근 사천(옛 삼천포 포함)과 거제·통영지역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또한, 마산과 창원·진해지역 보도연맹원 사건에 대해서도 이미 지난 2월 규명된 마산형무소 재소자 학살사건과 별도로 진실규명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천·거제·통영 학살사건 공식 확인 유족들이 받은 결정통지문에 따르면 사천에서는 100여 명의 보도연맹원이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7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각 지서에 소집돼 삼천포경찰서로 이송됐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사천군 용현.. 더보기
학살 암매장 유골, 발굴해도 갈 곳이 없다 진주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들의 유해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50년 7월 중·하순경 국민보도연맹원과 진주형무소 재소자 1200여 명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학살 암매장된 지 59년만의 일이다. 김해 봉하마을에서 고(故) 노무현 대통령 49재 안장식이 진행되고 있던 지난 10일이었다.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법륜골 감나무밭 일대에서 유해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경남대박물관 발굴팀(책임연구원 이상길 교수)이 이날 오전 매장추정지를 약 10cm 정도 파들어가자 곧바로 앙상한 유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드러난 3~4구의 유해 옆에서 M1 소총의 탄피도 발견됐다. ※관련 글 : 내가 학살현장 유골 사진촬영을 포기한 까닭 이곳은 현재의 토지소유주가 지난 80년대 초 감나무 과수원 용도로 땅을 .. 더보기
개념찬 87세 할머니 "X승만이 다 죽였어" 지난 10일 진주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가 진주시 명석면 사무소에서 열렸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경남대박물관(관장 이종흡)에 의뢰해 이상길 교수(고고학)팀이 발굴을 담당하게 됩니다. ※개토제(開土祭) : 땅을 파기 전에 토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묘자리를 파는 것을 천광(穿壙)이라고 하는데, 이때 일꾼들이 땅에 술을 뿌리며 토지신을 달래는 의례를 말로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술, 과일, 어포, 식혜 등으로 제상을 차려 개토고사(開土告辭)를 읽는 것이 관례이다. [다음 문화원형백과] 이날 개토제에는 약 100여 명의 희생자 유족들이 참석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특히 연세가 많아보이는 꼬부랑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지난 5월 15일 구 진주시청 앞 .. 더보기
59년만에 처음으로 합동위령제가 열립니다 자기 아버지가 언제, 어떻게, 왜 돌아가셨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심정을 아십니까? 국가권력에 의해 재판도 없이 처형됐다는 사실만 알 뿐, 그 이유를 물어볼 수도, 억울함을 호소해볼 수도 없는 자식의 답답함을 아십니까? "나는 어린 때 다른 집 아이들도 원래 아버지가 없는 줄 알았다." 1950년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를 잃은 유복자 강병현(59·경남 진주시) 씨의 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영문도 모른 채 국군과 경찰에 끌려간 뒤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학살당한 것은 분명하지만, 돌아가신 날짜도, 장소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끌려 나가신 음력 6월 12일 바로 앞날 제사를 지냅니다. 이렇게 이승만 정권의 국가범죄에 의해 1950년 7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진주에서 .. 더보기
아버지와 숙부의 한 풀겠다는 60대의 사연 60대 이상의 마산시민 중 '노현섭'이라는 이름을 모른다면 그는 마산토박이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한국노동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 중에서도 그를 모른다면 얼치기일 가능성이 높다. 50~60년대 노동·인권운동가 노현섭 그로 말하자면 노동운동에서 '마산의 바웬사' 같은 인물이었고, 일찌기 혁신정당 운동을 벌인 진보정치인이었으며,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학살 만행을 가장 먼저 폭로하고 전국적인 진상규명 운동을 이끈 인권운동가였다. 노현섭(1920~1992) 씨는 마산시 구산면 안녕마을 출신으로 일본 중앙대 법과를 졸업한 인텔리였다. 마산보통상업학교(이후 마산상고를 거쳐 용마고등학교로 바뀜)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그는 한국전쟁 이후 3개 부두노조를 통합한 단일지역노조인 대한노총 자유연맹 마산부두노조를 결성, 본격적으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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