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공터 왼편으로 이층 누각이 서 있고 그 너머로 마산만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완월동의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曹洞宗 福壽寺라는 절에서 본 풍경이다. 예전에 이 사진을 보면서 복수사는 일본 사찰인데 저 이층 누각은 뭐지? 분명히 조선식인데? 원래 저 자리에 있었던 건물인가? 저런 건물이 있을 만한 위치가 아닌데?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곤 시간이 흘러 잊어버리고 있다가 최근에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누각은 원래 鎭東에 있었는데 '진동학교조합'에서 이 절에 기부 이건하였고 복수사는 이를 山門으로 삼아 觀海樓란 이름을 붙이고 1928년 5월에 낙성식 및 관음제를 성대히 열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판매할 정도로 당시 마산의 새로운 명소로 등장하게 됐다.

진동학교조합은 진동면에 있던 일본인 학교 진동공립소학교를 운영하던 기구였는데 어떤 경위로 누각을 기부하게 되었을까? 그 누각이 있던 터가 학교조합 부지에 속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 등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한편 조선인 학교였던 진동공립보통학교는 1908년 사립진명학교로부터 시작하여 1920년대 당시에 구 진해현 객사를 교사로 사용하고 있다가 1943년에 새 교사로 이전했다. 해방 이후 1947년부터는 삼진중학교의 교사로 사용되어 오다가 1983년 의문의 화재로 소실되어 버렸고 현재는 주춧돌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이 누각은 원래 진동의 어디에 있던 어떤 건물이었을까? 사진을 보면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이층 누각인데 보통 누각에 있기 마련인 계자난간이 보이지 않아 이건 과정에서 약간의 변형이 이뤄진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에도 이 정도 규모의 이층 누각은 그리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동면 일대 풍치 좋은 곳에 있던 누각이었을까? 아니면 퇴락한 어느 절의 문루였을까?

학교조합이 기부했다는 걸 감안해서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개연성이 높은 곳은 구 鎭海縣 읍성이다. 읍성 내에 그 당시까지 남아있던 구 진해현 관아 건물의 하나였지 않았을까? 읍성 안에서 이층 누각이 있을 만한 곳은 동헌이나 객사 앞인데 건물 형태로 봐서는 외삼문이다. 객사 牛山館의 외삼문이었을까 동헌 化流軒의 외삼문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조선왕조의 관아 건물이 일본 불교 사찰의 정문으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더구나 식민통치의 첨병 역할을 했던 曹洞宗이라는 일본불교 종파는 마산에서도 식민지배를 공고히 하는 데 앞장섰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식민지배의 도구로 전락했던 마산조창의 唯正堂이 떠오른다. 조선총독부는 유정당을 다른 데로 옮겨 馬山機業傳習所라는 간판을 내걸고 소위 일왕의 하사금 恩賜金으로 신기술을 보급한다는 정치선전의 도구로 썼다. 진해현 관아 건물도 그런 경우였을까?

 

글 박영주(경남대박물관 비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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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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