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주례없는 결혼식, 참 보기 좋았습니다

기록하는 사람 2009. 6. 1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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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친지 아들의 결혼식이 있어 울산에 다녀왔습니다. 저에겐 촌수로 손자뻘 되는 신랑의 결혼식이었는데요.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보통 식순대로 신랑 입장에 이어 신부가 아버지와 함께 입장한 것까진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단상에 주례가 없었습니다. 주례도 없이 신랑과 신부가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맞절을 하고 나서니, 신랑 신부가 '결혼 언약 만들기'라는 순서를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서로 믿고 사랑하며 잘 살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좋아 보였습니다. 기존의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는 한 마디 말할 기회도 없이 주례의 훈시만 들은 후, 사진 찍고, 폐백 올리는 것으로 끝나는데, 두 사람이 하객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사랑을 맹세하는 모습이 참 보기좋았습니다. 그러면 책임감도 더 생기겠죠.

다음 순서도 다른 결혼식에는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신랑의 아버지가 나와 단상의 주례석에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당부하고픈 이야기를 하고, 사돈과 하객들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의 아버지도 다음 순서에 나와 예의 사위와 딸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 다음 순서는 더 좋았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미리 적어온 '부모님께 드리는 글'을 낭독했습니다. 사회자의 순서지에는 괄호 속에 '효도서약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결혼은 단지 두 사람의 결합만이 아니라, 양가의 가족이 결합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혼인'이라고도 하는데, 이처럼 양가 부모와 신랑 신부가 각각 자신의 도리를 되새기고 하객들에게 공개적인 약속을 하는 모습이 결혼의 본래의미에 훨씬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주례없이 양가의 아버지가 덕담을 해주는 것으로 대신한 결혼식을 오늘 처음 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2월 김용택 선생님 자제분의 결혼식 때 처음 그런 모습을 봤는데요. 오늘은 '부모에게 드리는 글'이라든지 '결혼 언약 만들기' 등은 새로 추가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결혼식이 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서로에게 좋은 방식이 합의만 된다면 이런 결혼식도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회자에게 물어봤더니,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런 식의 결혼식이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라고 하네요. 지켜보는 하객들도 훨씬 흥미진진했습니다. 손자님, 손자며느리님 잘 사시기 바랍니다.

사족이지만, 가끔 연예인들의 결혼식에서 마지막 장면에 신랑이 만세 삼창을 하면서 "땡잡았다"느니 외치는 모습은 좀 별로였습니다. 엄숙한 결혼식을 너무 장난처럼 희화화해버린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제가 너무 보수적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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