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그래도 황석영에게 기대를 거는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09. 5. 2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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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전쟁은 너무 쉽게 일어난다. 게다가 전쟁은 민중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그 전쟁의 참화는 고스란히 민중의 몫이다.

당장 59년 전 한국전쟁에서도 수백 만 남북한 민중이 학살되고 전사했으며, 헤아릴 수 없는 여성들이 능욕당하는 참상을 겪었다. 그러나 북쪽의 김일성과 남쪽의 이승만은 털끝만큼의 정치적 손해도 입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전쟁을 철저히 이용했다. 정치적 경쟁자와 반대자를 일시에 제거하고,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구축했던 것이다.

나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과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희생자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민중의 삶을 얼마나 참혹하게 파괴하는지를 절절히 느꼈다.

그래서 나는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를 '분단모순'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전쟁 위험을 제거하는 일만큼은 억만금의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본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그나마 잘한 게 있다면 역대 어떤 정권보다 바로 그걸 잘한 것이다.

극우기회주의자가 판치는 사회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응징'을 외치는 일부 수구세력과 언론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비겁한 늙은이 이승만의 얼굴이었다. 이승만은 겉으로 '북진통일'을 외치면서, 뒷구멍으로 몰래 줄행랑을 친 인물이다. '응징'과 '응전'을 외치던 그들 역시 실제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자기 몸부터 보전할 인간들이다. 다만 그들은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이용해 극우반공으로서 자신의 입지와 권력을 챙길 욕심 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보수'가 아니라 '극우기회주의자'다. 그래서 그들은 햇볕정책도 끊임없이 '퍼주기'라며 딴지를 걸어왔다. 이번 개성공단 사태도 그런 그들에겐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황석영은 18일 저녁, 자신의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올려 최근의 논란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오늘 아침 변절 논란을 빚고 있는 소설가 황석영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을 읽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안보의 원칙은 평화입니다. 금강산과 개성을 두고 혹자는 '퍼주기'라고 얘기합니다. ( … ) 한국경제의 신용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남북 분단의 리스크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퍼오기'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금강산에서의 사고와 단절 이후 사회단체 후배들과 협의한 뒤에, 현 정부와의 대화통로를 자청하였"다고 한다.

'평화열차' 이벤트 꼭 성사되길

그는 또한 '평화열차 세계 작가포럼'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동서양의 저명 작가 30여 명이 파리에서 출발행사를 갖고, 20세기의 분단지역이던 베를린에서 행사를 벌이고, 모스크바, 옴스크를 거쳐서 바이칼 부근의 동서양 접점인 이르쿠츠크에서 평화와 새로운 문명에 대한 대축전을 벌이고 울란바토르를 거쳐 베이징으로 내려와 국제열차편으로 평양에 들어가 행사를 갖고, 이미 지난 정부 때 시험 운행한 평양 개성 도라산 구간을 통과하여 서울에서 피날레 행사를 갖자는 기획안"이라고 한다.

이 구상은 다분히 그의 작가적 상상력이 낳은 이벤트성 행사로 보인다. 그는 "기차 6량을 유럽철도에서 대절하여 20일 동안 움직이는 '평화열차'는 바로 한국전쟁 60주년이 되는 2010년 여름에 달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나는 요 며칠 사이에 있었던 황석영 논란에 별 흥미가 없었다. 놀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 지난 대선 때 백낙청 등과 함께 민주대연합(?)으로 이명박 당선을 저지하자는 기자회견을 할 때 '왜 저리도 상황파악을 못하나'하고 실망했었다. 그 때부터 나는 적어도 그가 '좌파'나 '진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더 실망할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의 글을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이 되었다. 자신이 밝힌대로 꼬여가는 남북관계를 풀어내고, '평화열차' 이벤트를 성사시키기만 한다면 그의 변신은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다. 어차피 정주영의 소몰이 방북 역시 이벤트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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