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김연아는 지금 학대당하고 있다

김훤주 2009. 4. 3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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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일 동안 김연아 일정을 죽 한 번 훑어봤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김연아를 학대하고 있다고 봅니다. 여성 연예인만 이리저리 끌려다니지는 않습니다. 다만 술자리나 잠자리가 아니다 뿐이지 본질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뉴스를 보면 이렇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내 김윤옥 씨는 29일 청와대에서 ‘2010~2012 한국 방문의 해’ 홍보대사로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부문 우승자 김연아 선수를 위촉했습니다.


이어집니다. 김진선 강원도지사(63)는 28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재단 프레스센터에서 올 피겨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피겨 퀸’ 김연아를 2018년 강원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위촉식을 치렀습니다.


또 있습니다. 이번에는 대한체육회가 나섰습니다. 29일 오후 5시 박용성 회장이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회관 13층 회장실에서 세계피겨선수권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김연아에게 격려금을 지급한답니다.


이 앞에는 무엇을 했을까요? 김연아는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킨텍스 특설링크에서 열린 ‘KCC 스위첸 페스타 온 아이스 2009’에서 매회 환상적인 공연을 펼치며 2만여 피겨 팬의 마음을 사로잡았답니다.


어찌 보면 불쌍합니다. 보도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김연아는 5월 10일 캐나다 출국 전까지 충분히 쉬면서 다음 시즌 구상에 나설 계획이다. 김연아는 ‘출국 전까지 충분히 쉬면서 운동을 병행하겠다. 간간히 다른 일정이 있지만 뭐든지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정말 ‘간간히’일까요? 앞에 얘기해 드린 일정으로 그치지도 않습니다. 경기 군포시는 다음달 1일부터 3일까지 개최하는 제2회 군포 수리수리 마법축제에 김연아 선수가 참가한다고 23일 밝혔답니다.


이어지는 기사는 “‘마법의 신비함과 과학의 놀라움’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1일 군포 중심상가에서 신나는 통기타 공연으로 시작된다. 축제의 중심은 단연 마법퍼레이드. 군포 출신인 김연아 선수가 마법퍼레이드에 참가한다.”입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온 가족이 모여 모험을 떠난다는 의미를 지닌 매직 패밀리 카에 탑승할 예정이다. 1시간가량 150m 거리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마법의 향연은 관람객들에게 큰 볼거리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16일 광고 시사회인 하우젠 에어컨 김연아 씽씽 쇼케이스 ‘김연아, 그 두 번째 바람이 붑니다’를 오는 29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에서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김연아는 “씽씽 쇼케이스에서는 하우젠 에어컨의 새로운 CF를 비롯해 광고 촬영 뒷이야기를 담은 미공개 메이킹 필름을 선보인다. 이날 행사에는 김연아가 직접 참석해 팬 미팅도 가질 예정이다.”


현직 대통령의 아내가 하는 홍보대사 위촉이나 강원도 지사가 하는 홍보대사 위촉에 꼭 김연아가 있어야 할까요? 대한체육회 회장이 말하자면 격려금을 전하는 일도 김연아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일까요? 삼성전자가 김연아를 두고 하는 이런 행사는, 돈으로 계약했을 테니 물리기는 어렵겠지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김연아가 없어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김연아가 좀 제대로 쉬라고 일부러 불러서 행사를 치르지 않고 위촉장(또는 돈 봉투)을 보냈다고 함으로써, 대중의 통속적 관점에서 볼 때 ‘잔잔한 감동’을 끌어내 더 큰 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러나 목적이 따로 있었습니다. 김연아를 불러내 같이 사진을 찍고 이를 매스 미디어에 내보내 한 번이라도 더 사람들이 보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이는 청와대에서 찍었음이 분명한, 김윤옥 씨와 유인촌이 같이 서 있는 사진 한 장으로도 충분히 입증됩니다.

뉴시스 사진입니당~


그러면, 김연아는 이것이 즐거워서 나갔을까요? 저는 이것이 어리석은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자살한 한 여성 연예인에게 당신이 즐거워서 술자리에 가고 잠자리에 갔느냐고 묻는 것하고 전혀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그놈의 ‘관계’ 때문에, 잘못 하면 끈 떨어진 뒤웅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걸음을 한 것이지요. 대한체육회 회장이 부르고, 막강 파워 대통령의 아내가 부르고 동계 올림픽 유치를 추진하는 도지사가 부르는데 어찌 안 갈 수 있겠습니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진짜 마음껏 즐기자는 생각으로 가지는 못 했으리라 저는 짐작합니다. 이를테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런 정도가 아니었을까, 모르겠습니다. 정리하자면, 권력이 있는 곳곳에서 보자는 주문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몸은 (뒤에 나오지만) 열아홉에 이미 직업병이 들었습니다.


물론 삼성전자는 돈의 힘으로 불렀겠지요. 팬 미팅을 한다 해도 그것은 거의 거짓말 수준입니다. 왜냐, “고객 100명을 추첨해 초대한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100명밖에 모이지 않는 팬 미팅이라니. 그러니까 신문이나 방송 또는 통신을 통한 바람잡기일 뿐이지요.


게다가 강원도 지사는 김연아를 제대로 집어 삼킬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대충 훑어봤더니, 김연아가 2010년 벤쿠버 동계 올림픽 이후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상황이더군요.


보도가 이렇습니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결정된다. 김연아가 2011년까지 선수 생활을 해야만 평창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벤쿠버 올림픽이 가장 큰 목표라 그 이후는 생각지 않았다’는 김연아는 ‘그 때는 그 때가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선수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강원도 지사의 생각은 어떨까요? “지사는 ‘그저 홍보대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김연아가 프리젠테이션에 참여하는 등 중요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김연아가 국제 언론이나 국제 체육계 인사를 접할 때 공개적·개별적으로 충분히 전파하는 역할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김연아를 좋아하지도 않는 제가 오히려 미칠 지경입니다. 김연아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어떤 느낌을 안고 사는지 알아야 합니다. 대통령 아내 김 씨가 “요즘 건강 상태는 어떠냐”고 묻습니다.


김연아의 답은 이렇습니다. “앞으로 운동을 하는 한 허리 통증이 계속될 것 같다고 하더라. 요즘도 가끔 아픈데 그냥 직업병이려니 하고 같이 살고 있다.” 개떡 같은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은 초짜배기도 이렇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데, 이보다 더한 통증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MBC 뉴스데스크에서 나온 얘기입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사람들이 나를 못 알아보면 좋겠다. 그리해서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다.”


결론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대중의, 광기 어린 편집증입니다. 정권이든 자본이든 대중을 완전하게 장악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편집증의 원인을 정권이나 자본에서 찾기는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김연아가 광고에 떴다 하면 뭐든지(이를테면 쥐약조차) 잘 팔리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요? 청와대가 움직여 김연아를 불렀습니다. 대한체육회 회장 박용성이 김연아를 불렀습니다. 동계 올림픽 유치를 추진하는 강원도 지사가 불렀습니다.


그이들은, 대중은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없지만 김연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이명박은 대중을 움직이지 못하고, 대중은 김연아를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김연아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이들은, 김연아를 움직임으로써 대중을 움직거리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김연아의 팬이 의젓해지지 않으면, 광기를 벗어 던지지 않으면, 김연아가 의젓해지기를 바랄 수 없다는 얘기를 저는 이렇게 한 번 해 보는 것입니다.
 

얼마 전 자살로 숨진 한 여성 연예인과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이 피겨 스케이팅 선수하고 차이가 무엇인가요? 나중에 잘못될 경우 앞에 얘기드린 사람 가운데, ‘그래 내 책임이다.’ 얘기할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지금 김연아 팬 가운데,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인정할 년놈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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