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공간’도 모르면서 인생을 논한다고?

김훤주 2009. 4. 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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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게 말을 걸다>를 쓴 조재현은, 태어난 1970년부터 지금까지 약력을 죄다 ‘공간’에 대한 기억으로 채웠습니다. 이를테면 “1977년 학교까지 꽤 멀고 복잡했던 골목길, 거대해 보였던 육교, 관제탑처럼 생긴 소방서의 탑, 피아노 학원으로 올라가던 좁고 어두운 직선 계단” 따위.

사람은 언제나 공간 안에 있거나 공간 밖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특히 사람이 만든 공간을 떠나서는 존재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지요. 그런데도 공간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공간에 담긴(또는 담은) 뜻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제대로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공간‘조차’ 모르면서 어떻게 사진과 건축과 그림과 영화를 즐길 수 있으며, 무대나 배경이 되는 무당집·여관방 따위를 글로 나타낸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 작품을 맛나게 읽을 수 있겠는가 싶은 게지요.

<공간에게 말을 걸다>는 공간과 얘기를 나누는 방법을 알기 쉽게 일러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체험에서 얘기는 비롯됩니다. “공간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근본은 바로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공간을 느끼는 것은 사람이었고, 공간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었고, 공간을 만드는 목적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가장 깊은 속을 알아야 공간을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공간이 사람에게 좋은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10쪽)

사람과 공간 모두를 공부한 때문인지 지은이는 “건축물이 사람이라면 공간은 마음입니다”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집니다. “사람의 몸은 부분 부분이 완전합니다. 뼈만 놓고 보면 구조적 아름다움이 신비롭게 느껴지고, 신경이나 순환기 등의 기관들만 따로 놓고 보면 효율성과 체계에 빈 틈이 없습니다. 피부의 곡면 형태만 보면 그 비례, 균형 등의 조화에서 우리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건축물을 사람에 비유해 보면 구조체는 뼈이고, 전기기계 설비는 신경·순환기·호흡기이며, 마감재료는 피부와 옷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써 다 이루었다고 볼 수는 없고, 이제 몸체를 만든 정도입니다. 사람도 몸뿐 아니라 재산, 능력, 외모, 마음 등이 필요합니다. 건축물의 재산은 임대수익이고, 능력은 기능과 용도이며, 외모는 외부 형태이고, 마음은 공간입니다. 재산은 많은데 외모와 마음이 형편없다든가, 마음은 착한데 능력도 재산도 없다면 곤란하겠죠. 모든 것이 중요하고, 어느 것 하나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데, 건축물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무시되고 있는 것이 공간일 것입니다.

공간은 건축물의 마음이며, 공간의 모양은 건축물의 성격과 인격이고, 공간의 표현은 건축물의 사상과 가치관입니다. 그 공간 중에서 건축물이 사라져도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있는 공간은 건축물의 영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건축물에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우리의 도시는 살아날 것입니다.”(19쪽)

지은이는 이 책을 위해 몸소 평면과 갖가지 곡면 모형을 만들어 한 해 동안 1500장을 찍고 400장 남짓을 건졌습니다. 설명을 위해 건축에서 700가지 영화에서 400 장면 그림에서 30개 정도를 찾아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 400개 정도 건졌답니다. 꽤 노력을 쏟은 셈이지요.

이제 지은이 조재현이 들어준 보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시녀들 Las Meninas> : 왼쪽에 캔버스처럼 보이는 형태가 그림 속 인물들과 나 사이의 공간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주된 대상들보다 가까이 있는 대상은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서, 그림 전체가 다가오거나 내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멀리 작게 보이는 문은 거리 대비가 커서 멀리까지 사람을 끌어들입니다.(45쪽)

<오스카 니마이어 박물관> : 오른쪽에서 본다면 매달린 부분이 보이지 않아서 완전히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건축가들이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려고 이토록 노력하는 것은 중력의 지배를 가장 강력하게 받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는 자유를 향한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느끼고 싶은 것은 중력으로부터 벗어난 자유가 아니라 중력을 이기고 떠 있는 힘일 것입니다. 그래서 중력이 없는 우주에 있는 사람을 볼 때보다 당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슈퍼맨이나 E.T의 자전거를 볼 때 더 큰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71쪽)  (그런데, 제가 사진을 실수로 빠뜨렸습니다. 그냥 상상을 해 보시는 것도 좋겠다 싶네요. 하하.)


<성모의 승천> : 가운데 공간의 상승감이 분산되지 않게 양쪽의 기둥들이 막아주면서, 그 힘을 모아주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것들을 들고 있는 기둥의 힘을 확고부동하게 표현함으로써, 가운데 존재들을 끌고 올라가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암시하고 있습니다. 기둥 유형도 수직성을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둥표면의 세로홈(flute)도 수직성을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109쪽)


<하기아 소피아 성당 Hagia Sophia> : 네 개의 탑이 건물의 영역을 크게 만들어주며 거대하고 웅장해 보이게 합니다. 세상과 구별된, 신으로부터 보호받는 영역을 암시합니다.(113쪽)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 꺾이는 벽이 다른 벽 뒤로 사라져야 공간의 흐름과 속도감이 유지되며 흘러가게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공간의 흐름이 막히고, 갈 곳이 없어집니다. 이는 희망과 신념이 사라진 암울한 시기를 상징합니다. 예각 공간의 끝부분을 한번 꺾어서 각을 크게 하거나 개구부(開口部)에 빛을 주면 공간의 흐름과 속도감이 빠져나갈 곳이 생깁니다.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을 상징합니다. 유대인의 과거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147쪽)


<어번 엔터테인먼트 센터 Urban Entertainment Center> : 예각의 형태 양쪽의 공간까지 예각으로 만들어, 형태가 다가오는 속도감과 공간이 흘러가는 속도감의 대비를 극대화했습니다. 천장의 반사재료 때문에 높이까지 과장되어서 거대한 배가 다가오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그 제일 앞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 무게감을 온몸으로 받으며 뚫고 들어가는, 매우 도전적이며 공격적인 행위가 됩니다. (152쪽)


<물의 절 Water Temple> : 좁은 곳에서 넓은 쪽을 바라볼 때 두 벽의 대비가 시간관, 역사관의 차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면벽은 직선적인 시간과 역사를 상징하고, 곡면벽은 윤회적인 시간과 역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닥의 보도가 곡면벽을 따라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176쪽)


<로이시움 호텔 Loisium Hotel> : 양쪽의 두 기둥이 가운데 출입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양쪽의 돌출된 매스(mass·덩이)도 가운데의 보이드(void·빈 공간)적인 성격을 만들면서, 열리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두 매스가 예각으로 벌어져 있어서 투시도적 효과와 강한 흡입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228쪽)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National Assembly in Dacca> : 물이 건물을 공중에 떠 있는 성처럼 보이게 하고, 폐쇄적 입면과 함께 접근할 수 없는 영역,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영역을 만듭니다. 기본적 형태들은 법의 요소들이나 근본, 이상 등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241쪽)


<덜레스 공항 Dulles Airport> : 곡면의 올라가는 부분은 비행의 상승감을 표현하고, 가운데 부분은 떠 있는 비행기의 몸체나 날개를 연상시킵니다. 존재감이 커서 무겁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것을 떠 있게 하는 강한 힘을 표현하기도 합니다.(293쪽)


<세속적 쾌락의 동산 Le Jardin des Delices> : 다양한 형태의 구면이 만드는 영역들로 쾌락을 표현했습니다. “완전한 쾌락이란 모든 방향의 마음을 감싸고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완전한 쾌락이란 완전한 마음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동시에 쾌락에 빠지면 다른 사람, 다른 일이 잘 보이지 않는 이기성, 폐쇄성, 고립성도 지적하고 있습니다.(315쪽)

부제가 ‘그림·영화·건축의 침묵의 호소’인 이 책 지은이의 마지막 말. “공간을 외면하고 소외시켜 둔다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들을 닮아가게 됩니다. 만약 아름답지 않은 공간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주기 바랍니다. …… 공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우리 마음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공간이 아름다워지면 마음도 아름다워지고, 공간이 살아나면 마음도 살아납니다.”

건축가 조병수는 <공간에게 말을 걸다>를 두고 이리 말했답니다. “건축의 기본이 되는 공간과 형태의 구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분석돼 있다. 분석과 비교가 독창적이면서도 재치있고 간결하고 즐겁고 이해가 쉬우며 기억에 남는다.”

‘서양 관점에 봤을 때’, 공간을 이루는 요소와 개념들을 빠짐없이 다룬 것 같습니다. 1장- 수직면·수평면·경사면, 2장 기둥과 벽, 3장 수평방향 곡면, 4장 보이드, 5장 수직 방향 곡면과 기타 곡면,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옥에 티라고나 할까, 공간과 관련되지는 않지만 단점도 통 없지는 않습니다. 물론 크지는 않게 보입니다.


지은이는 여성차별이나 가부장제에 대해서는 별로 공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나 봅니다. 대한민국 남자 표시가 이런 데서 나는 것입니다. 지은이가 쓴 사람 모형을 보면, 움직이면서 바라보는 주체는 언제나 남자고, 가만있으면서 바라보이는 상대 객체는 언제나 여자랍니다.(146쪽)

둘째는 영어를 주로 쓴다는 점이 됩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147쪽)도 독일어 아닌 영어 ‘Jewish Museum Berlin’이라 돼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 푸생이 그렸다는 109쪽 <성모의 승천>도 표기가 ‘The assumption of the Virgin’입니다. 일본 사람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작품 <물의 절>(176쪽)도 일본말이 아닌 영어 ‘Water Temple’이라 돼 있습니다.

지은이를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우스운 것은 우스운 것입니다. 한 번 더 그래도, 제가 이 책을 보고 많이 배우고 느꼈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김훤주
※ <경남도민일보> 4월 2일치에 실었던 기사를 바탕으로 다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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