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청상과부가 되어 평생 혼자 살아온 83세 여성노인에게 가장 아쉽고 절실한 것은 뭘까? 황점순(마산시 진전면 곡안리) 할머니에게 그것은 '혈육'이었다.

그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적군도 아닌 아군에 의해 남편 이용순과 아들 상섭을 잃었다. 당시 남편의 나이 24세, 아들은 고작 2세였다. 남편은 그해 7월 15일 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불려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상섭이는 8월 11일 미군의 곡안리 재실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잃고 말았다.

국가가 남편의 사망 사실을 공식 확인해준 것은 그로부터 59년이 지난 2009년 2월말이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가 당시의 민간인 희생자 명단에서 '이용순(李鏞淳)'의 이름을 찾아줬던 것이다.

국가가 남편의 죽음을 확인해주는 데에는 59년이 걸렸다.


물론 국가가 알려주진 않았어도 그녀는 이전부터 남편의 사망을 알고 있었다. 당시 함께 불려간 보도연맹원들이 모두 마산시 구산면 앞바다에서 국군에 의해 수장 학살됐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종갓집 며느리였던 그녀는 열 다섯 개의 제사에 남편의 제사까지 추가했다. 그래도 처음 5~6년동안은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에도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어보곤 했다. 실날같은 희망이나마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국군에게 잃고, 아들은 미군에게 잃은 황점순 할머니

대한민국이 원망스럽기도 하련만, 뒤늦게라도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확인해준 게 오히려 고맙단다.

"그 오래된 일을 찾아내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찾아준 조사관에게 술이라도 한 잔 사주고 싶어."

하지만 그녀가 아직도 믿을 수 없는, 그래서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일이 하나 남아 있다. 아들 상섭이의 죽음이다. 그녀는 지금도 상섭이가 지구촌 어디에선가 살아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59년 전 83명이 미군의 총격에 죽은 곡안리 성주 이씨 재실 학살현장에서 그녀는 두 살 난 아들을 안고 뒷산을 향해 정신없이 뛰었다.

재실 뒤편 콩밭을 가로질러 내닫는 순간 옆에서 함께 뛰던 시어머니가 '퍽'하는 소리와 함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곧이어 그녀도 다리와 엉덩이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가슴과 팔, 목에도 총알과 파편을 맞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아이를 살폈다. 아이가 울지 않았다. 포대기를 풀어보니 겨드랑이쪽에 그녀의 몸에서 흐른 듯한 피가 묻어있을 뿐 총을 맞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남자아이는 죽으면 고추가 위로 올라간다는 말이 퍼뜩 생각났어. 그래서 급히 고추를 들춰보니 정말 그렇게 돼 있능기라. 눈물도 안나왔어. 그만 벌렁 누워버렸는데 그때부터 목이 말라 환장을 하겠더라고."

곡안리 학살이 벌어졌던 성주 이씨 재실. 미군은 앞에 보이는 대밭에 기관총을 설치해놓고 쐈다.


눈앞에 보이는 콩잎을 따서 마구 씹었으나 풋내만 날 뿐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운 채로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해거름녁에 총격이 잠잠해지더니 생존자들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미군들이 총을 들고 마치 포로를 대하듯 성한 사람과 부상자를 가려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은 트럭에 타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미군트럭을 타지 않았다. 아이 시신(?)을 콩잎으로 덮어놓고 친정마을(진전면 임곡마을)까지 걸었다.

친정 가족의 도움으로 마산을 거쳐 부산 국군병원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녀는 약 2개월 후 마을로 돌아와 상섭의 시신을 찾아나섰다. 그때까지 사망자들의 시신은 현장에 부패된 상태로 널부러져 있었다. 심지어 만삭의 임산부 상태에서 죽은 이귀득(당시 31세)의 시신 옆에는 아기가 자연분만된 채 새까맣게 말라죽어 있었다.

학살현장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아들의 시신

그런데, 유독 상섭의 시신만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때 죽은 10세 이하 아이들 16명의 시신은 모두 수습했지만, 상섭이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이 콩잎으로 덮어놓기까지 했던 아이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아마, 지나가던 미군이 아이를 데려갔을지도 몰라. 나중에 아이가 깨어나 울고 있는 걸 보고 그랬는지도 모르지. 만약 그랬다면 미국에서라도 아직 살아있을거야. 그때 안 죽었던 게 확실해."

재실 뒷산. 당시 재실 뒤 콩밭으로 뛰던 중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그녀는 59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을 하면서 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기자는 10년 전인 1999년 10월 마산보도연맹 사건과 함께 곡안리 재실 학살사건을 처음 취재할 때도 그녀에게 '아들 상섭이를 좀 찾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방송국을 통해 수소문해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하지만 그녀는 요즘도 텔레비전에서 6·25때 헤어진 부모를 찾는 남자가 나오거나, 미국으로 입양된 사람 이야기가 나오면 신경이 곤두선다. '할머니 이젠 포기하세요'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한가닥 희망이라도 남아 있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아서였다. 대신 화제를 바꾸려고 이렇게 물었다. "20대 청상과부가 자식이라도 있었다면 모르지만, 왜 그 때 다른 데 시집이나 가버리지 그러셨어요?"

그랬더니 손사래를 친다. "어휴, 그 땐 그런 게 집안의 큰 흉이었어. 친정 조부님은 학자였고, 아버지도 선비였는데, 그런 집안 딸이 다시 재가를 했어봐. 말도 안되지. 나도 집안에 흉이 될 짓은 생각도 못했어. 요즘 같은 세상이면 모르지만…."

짓굳게 다시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떠세요? 그 때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가서 자식이라도 하나 낳을 걸, 하는 후회는 안 드나요?"

황점순 할머니의 웃는 모습.

그제서야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렇게 늙고 나서 자식 생각을 하면, 그 때 그렇게라도 해버릴 걸 하는 생각도 들어."

그러면서 이내 덧붙이는 말. "내 사주가 안 좋아서 그런 걸, 지금 와서 누굴 원망하겠어?"

체념이었다. 분위기를 바꾸려고 물었다. "할머니, 요즘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어디 가보고 싶은 데는 없나요? 먹고 싶은 것은요?"

"이제 나이를 먹고 나니 뭐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가보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것도 없네? 그런데 맨날 신약(新藥)만 먹으니 속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겠고, 한약이나 한 번 먹어봤으면 좋겠는데, 그건 안된다고 하데?"

그녀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로 월 24만 원의 생계·주거지원금과 8만4000원의 노령연금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의료보호를 받고 있다. 치료제가 아닌 한약은 의료보호 대상이 안된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협심증 증세로 숨이 가쁘고 답답해 매월 태봉병원에서 약을 타먹고 있으며, 아픈 다리 때문에 정기적으로 물리치료도 받아오고 있다.

지난 2일 별다른 취재계획 없이 그냥 할머니를 찾았던 기자는 동행했던 <민중의 소리> 구자환 기자와 함께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병직 한의원장 "할머니의 심장병은 화병에 가깝다"

그런데 마침 마산 산호동에서 '이병직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병직 원장이 할머니의 진료를 해드리고 싶단다. 7일 오전 다시 구자환 기자와 함께 할머니를 모시고 한의원을 찾았다.

황점순 할머니를 진맥한 이병직 한의원장은 "할머니의 심장이 안좋은 게 협심증이 아니라 화병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녀를 진맥한 이병직 원장은 "협심증이라기 보다는 화병(火病)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가는 데마다 화(火)가 있다고 하더라. 젊을 땐 동지섣달 엄동설한이라도 바깥에 나와 담배를 몇 대 피우고 나서야 화를 누르고 잠을 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그녀의 체질에 맞는 한약을 지어 보내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곡안리로 갔을 때 할머니는 뒤뜰에서 정성스레 길러온 겨울초(冬草)와 실파를 뜯어 큰 비닐봉지 두 개에 가득 담아주었다. 아직은 더 키워야 할만큼 가녀린 새잎이었다. 집에 와서 아내가 해준 겨울초 겉절이에 밥을 비벼먹었다. 봄냄새가 입안에 가득했다.

하지만 점심을 먹을 때 다른 반찬엔 손도 대지 않고 맹물에 밥을 말아 먹던 할머니가 자꾸 목에 걸렸다. 이병직 원장의 한약이 그녀의 입맛도 살려줄 수 있을까?

할머니는 점심 때 다른 반찬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맹물에 밥을 말아 드셨다. 매일 혼자 먹다보니 그렇게 습관이 들었단다.


※관련기사 : 학살현장에 피어난 화려한 매화
※관련기사 : 봄향기 가득한 할머니의 겨울초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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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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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정말 2009.03.09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슬프네요. 할머니가 우리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고 계시네요.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 심정이 어떨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 부디 힘내세요.
    아들이라도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빌어 봅니다.

  3. . 2009.03.09 2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를 모르는 세대지만 할머니가 매일 해준예기가 들리네요....

  4. T^T 2009.03.09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12월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이 납니다.
    6.25 참전 용사셨거든요.
    20대 중반쯤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지고
    친인척 없이 한 평생을 혼자 사셨을 생각만 하면 슬퍼집니다.
    더군다나 고향은 이북..
    많이 외로우셨겠죠.

    이분들이 안 계셨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못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5. 2009.03.10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는 이런 아픔이 없어야 하는데....

    이제는 대부분 잊혀지는 저런 일이 아직도 많다고 하더라구요.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누구에 의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6. ds 2009.03.10 0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이순간에도 전과 14범은 과거로 회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행한 과거를 다시 격어야 하는 걸까요?

  7. 이유 2009.03.10 0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께서 진정 대한민국 국민이십니다...... 정말 할말이 없어요.. 너무 슬프고 잃어버린 자식을 어떻게 가슴에 묻겠습니까.........

  8. Favicon of http://blog.daum.net/chamkkaegoon 참깨군 2009.03.10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글 읽으면서 왜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T.T

  9. 전영근 2009.03.10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 마음 만분의일이라도 알겠음니까. 정말 대한민국이 존재하는것은 바로 할머니 같은 위대한 정신을 지금 현존하는 지식인 들이 많깨닦고 정말 내가 왜 현실에 존재한는가 반성하새요.

  10. demian 2009.03.10 0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할머니..ㅠㅠ 정말 눈물만 나오네요. 하늘이 무심할 정도로 한 많은 인생을 살아오셨네요.ㅠㅠ 할머니....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ㅠㅠ

  11. Favicon of http://bolg.deerkang thirstydeer 2009.03.10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너무너무 슬퍼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ㅠㅠ
    아.. 너무너무 가슴아파.. 으흑으흑

    할머니.. 어떡해..

    불쌍해요.. 위로해드리고싶어요...

    아. 슬프다는 말 외엔 나오지 않는...TT

  12. 블루사이 2009.03.10 0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들을 찾는다는 희망 버리지 마시고 오래도록 사세요. 왠지 입양돼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3. 2009.03.10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에효 2009.03.10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그많은 세월을 얼마나 가슴아파하면서 사셨을지..
    읽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네요..

    힘내세요.. 뭐라고 위로의 말씀도 감히 드리지 못하겠네요..

  15. 논점이 먼데 2009.03.10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의 뒤에는 비극이 따르는 법
    그 비극을 누가 일으켰는데
    또 전쟁중에 인민군이 사람만 안 죽였어도
    국군이 수복한후에 보도 연맹사람들 처형 안 했겠죠
    빨갱이하고 싸워서 이길 인원도 모자라는 상태에서 ..
    후방에서는 빨치산이교란하는상태서 빨갱이로
    판단되어지는사람들을 학살할수 밖에없는사람은 처형할수밖에..
    남편분이 보도 연맹이라고하지않나요
    죽은사람가족들치고 보도연맹이었다고 시인하는사람은 없는것 같아요
    대부분억울하게 끌려갔다고만하지요
    하지만 전쟁당시 많은 양민들이 보도연맹에게 죽음을 당했는걸요
    이런비극을 소개하면서 은근히 군인들을 비난하기전에
    전쟁을 일으킨쪽을 소개하고 비난하는게 더 현명하고 이치에 맞지 않을까

    • 그런깜냥 2009.03.10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댓글의 논점이 뭔가요?

      이런 불행한 일들도 있었기 때문에 과거사 정리나 진상조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를 외면해온 사람들 때문에 아직까지 이런 기사를 보며 슬퍼해야 하는 것이구요.

      '당시에 처형할수 밖에 없어서 처형했다' 치면 훗날에라도 이를 바로 잡을 의무가 있는게 아닐까요?

  16. wltjs 2009.03.10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그 솜털보다 많은 시간을 어찌 지내셨는지?이시대에 아직 살아계신 어르신들을 우리들이 존경하며 잘 모셔야 할 터인데 요즘의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너무 무시하니 이또한 너무 마음 아픈 일이다.할머님께 이웃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위로를 보냄니다

  17. rladydfkd 2009.03.10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구상에서전쟁은없어져야됩니다..6.25를 격지않은젊은사람들은 이해못하죠 많은세월이흐르고 전쟁을 격고 살아남은 사람들 6.70십년대 에 헐벗고굼주리며 숱한고생으로 후손들에게 풍요로운 삶을 주셨고 대한민국을 지켰습니다.북한에 돌발행동이 보도될때마다 신경이 예민해지는건 어쩔수 없는 노파심일까요

  18. rladydfkd 2009.03.10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구상에서전쟁은없어져야됩니다..6.25를 격지않은젊은사람들은 이해못하죠 많은세월이흐르고 전쟁을 격고 살아남은 사람들 6.70십년대 에 헐벗고굼주리며 숱한고생으로 후손들에게 풍요로운 삶을 주셨고 대한민국을 지켰습니다.북한에 돌발행동이 보도될때마다 신경이 예민해지는건 어쩔수 없는 노파심일까요

  19. 슬픔 2009.03.10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식을 둔 부모로서 가장 슬픈것은 2차대전이후 6.25같은 대규모 전쟁을 치루고, 또 아직도 한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참여정부까지 와서 이제 자식들에게 물려줄 전쟁의 고통은 이땅에서 없어 졌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다시 겨루기만 하고 양보할줄 모르는 이정부와 북한의 현모습을 보는게 너무 슬픕니다. 하물려 가족을 그렇게 잃은 할머니는 이 현실을 어찌 보실까요? 마음이 정말 아려지네요....

  20. 치미는부화 2011.03.15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다 일본넘들때문에... 지키고 경계해야 겠습니다

  21. 좀? 2013.10.23 2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 이젠 포기하세요'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한가닥 희망이라도 남아 있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아서였다.
    이부분이 좀걸리네요 아무리그래도 포기하세요라니...후에 할머니가 걱정되서 그러시는건 충분히 알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