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해도 갈 곳이 없다

기록하는 사람 2009. 3. 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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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진주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학살을 국가기관이 공식 인정한 것을 계기로 '경남지역 민간인 희생자  유해안치시설' 설치가 시급하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04년 마산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된 유해 163구가 아직도 갈 곳을 찾지 못해 경남대 예술관 밑 공터의 컨테이너 속에 있는데다, 올해 발굴 예정인 진주지역 민간인 희생자 유해도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 위원장 안병욱)은 마산·진주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서에서 이례적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마산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된 유해 등 유해안치장소 설치등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권고사항을 명기했다.

진실화해위 결정문. 유해안치시설 설치를 지원하라고 권고했다.


진실위 관계자는 "과거사정리기본법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진실규명된 집단희생 사건에 대해 위령사업을 지원하도록 돼 있다"면서 "행정안전부에 '과거사위원회 권고사항처리기획단'이 설치돼 있지만,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지 않으면 유해안치시설 설치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 국가와 지자체에 유해안치시설 설치 권고했지만…

행정안전부 권고사항처리기획단 관계자도 "진실규명이 된 사건의 유족회에 위령제 비용 정도는 우리가 지원하고 있지만, 땅이나 시설 설치 등 사업은 해당 지자체의 협조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경남지역 유해안치시설 설치권고에 대해서는 경남도와 협의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마산 진전면 여양리 유해. 아직도 갈 곳이 없다.

유족들도 경남도가 나서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진주유족회 김태근 회장은 "우리지역에서 발굴된 유해는 반드시 우리 지역에 안치돼야 한다는 뜻을 진실위에 전달했다"며 "김태호 도지사가 우리의 뜻을 헤아려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 유족은 빠른 시일 안에 경남도지사에게 유해안치시설 설치를 요구하는 호소문을 전달할 예정이다.


지난해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에서 발굴된 270여 구의 유해도 마땅한 안치시설이 없어 일단 충북대 임시안치소에 보내놓은 상태다. 그러나 충북대 임시안치소 역시 2011년까지 진실위와 계약기간이 끝나면 어쩔 도리가 없는 처지다.

진실위 관계자는 "위원회의 활동기간도 2010년 4월에 만료되는데, 그 때가 지나면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다"면서 "해당 지자체가 나서주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가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던 이들의 유해가 자칫하면 또다시 국가에 의해 버려지는 '제2의 부관참시'가 될 우려도 높은 상황이다. 첫번째 부관참시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정권에 의해 전국 곳곳의 합동묘가 파헤쳐져 유기됐던 일을 말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이 일에 관심을 갖는 지역시민단체도 마땅히 없다. 대부분 70·80대 노인으로 구성된 유가족들만이 경남도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경남도 행정과 관계자는 "아직 유해안치시설에 대해 생각해본 바는 없지만, 유족들의 민원이 접수되면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경남대 이상길 교수(사학)는 "사건 전체의 규명작업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하더라도, 유해발굴과 공공 납골시설 설치는 지역화합 차원에서 경남도지사가 나서야 할 일"이라며 지자체의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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