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애완견 취급도 좋은 배알없는 기자들

기록하는 사람 2009. 2. 2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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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배알도 없는 기자들이다.'

<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가 쓴 "이완구 지사님, 언론인이 홍보위원이라니요"라는 기사를 읽고 든 생각이다.

이 기사 속에서 대전·충남지역 시민단체와 진보신당의 비판은 주로 이완구 충남도지사에게 집중돼 있는 듯 하다. 이완구 지사가 언론인들을 '취재·홍보위원'으로 위촉해 해외출장을 갈 때 예산으로 동행할 수 있도록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궁금한 것은 이에 대한 대전·충남지역에 있는 신문·방송사와 거기서 일하고 있는 기자들의 태도다. 이 조례안 자체가 언론인에겐 엄청난 모욕이며 굴욕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례안에는 "취재·홍보위원으로 위촉된 언론사의 임직원은 충남도의 국제교류 사업 등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취재활동을 수행하며 도민들에게 신속하게 홍보하여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고 한다.

모욕을 모욕으로 느끼지 못하는 기자들이라면, 이 글도 별로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그래도 작정하고 모욕 좀 해야겠다. (제발 사이버 모욕죄로 고발이라도 좀 해주면 좋겠다.)

'충남도 국제화 촉진과 교류증진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 도지사 해외출장 시 언론사 소속 임직원들을 한시적인 취재-홍보위원으로 위촉해 항공료와 체류비 등을 지원 또는 보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 출처 : "언론인이 홍보위원? 조례 강행 시 강력대응" - 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의 보도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이 조례안이 알려진 것은 지난 2일이었다. 이완구 지사가 당초 지난 2일 일본 방문길에 도청 출입기자 2명을 동행시키려다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조례 없이 해외취재비를 지원하는 것은 선거법에 위반된다'는 통보를 받자 이 조례 제정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충남도청에 출입하는 일간지와 방송사 기자들이라면 모두들 그 이전부터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지역일간지와 방송에는 이 조례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보도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에만 데려간다면 애완견이 되어도 좋나?

심지어 <오마이뉴스>와 일부 지역주간지에 이 내용이 보도되고, 시민단체와 진보정당이 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고 있는 와중인 지난 12일도 이완구 지사는 아라비안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오만 무스캇(Oman Muscat) 순방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출입기자들에게 "함께 동행할 수 없어 아쉽다"며 "조례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때 모시고 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기자들이 '권력의 감시견'이 아니라 '애완견'이 되어 도지사 앞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한 번 물어보자. "기자들이여, 애완견 취급을 당해서라도 그토록 외국에 가보고 싶은가?"

하긴 대전·충남 쪽 기자들만 그런 게 아니다. 또한 대전·충남의 기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공짜 해외취재 좋아하는 기자들은 전국 어디에나 널려 있다. 심지어 그런 걸 언론사와 기자의 영향력이고 능력이라며 뻐기기까지 하는 정신머리 없는 기자들도 많다. 배알 없는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6년 경남의 김태호 도지사가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도정 2기 출범준비위원회'라는 걸 만들면서 신문·방송사 편집·보도국 간부들을 위원으로 위촉하려 한 일이 있었다. 그 때도 나는 김태호 경남도지사를 힐난하면서 그의 부름을 받은 언론인들도 모욕으로 느끼기에 충분한 글을 쓴 바 있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다.

"왜 여기에 '언론계'를 끌어들이려 하는 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언론을 도대체 뭘로 보는지 불쾌하기도 하다. 도지사가 불러 준다고 언제든 쪼르르 달려갈 언론인도 없겠지만, 언론인을 자기 옆(또는 밑)에 두고 자신이 앞으로 해나갈 정책에 대한 자문 또는 수정·보완작업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기분 나쁘다."

"기자는 한명 한명의 개인이기도 하지만, 취재영역에선 하나의 '언론기관'으로서 지위를 갖기도 한다. 그러므로 기자는 회사 밖에서 누구의 휘하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누구의 위에 군림해서도 안 된다."

"도지사나 시장·군수 같은 선출직 단체장들은 비판을 업으로 삼고 있는 언론인들을 곁에 두고 측근화 함으로써 '좋은 게 좋은 식'의 관계를 맺고 싶어할 것이다. 실제 그런 식으로 기자들을 '관리'하는 사례들이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여전히 사이비기자나 어용언론인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이다." (칼럼 전문 : 김 지사님 대체 왜 이러세요? )

그 글을 썼던 당시에도 내가 경남도지사보다 더 절망스럽게 느꼈던 대상은 그런 모욕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쪼르르 달려간 우리지역 '언론인(?)'이란 인간들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행정기관의 각종 위원회에 무슨 무슨 위원으로 이름을 걸치고 있는 기자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충남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모욕도 아랑곳없이 조례가 제정되면 '홍보위원'을 무슨 완장처럼 여기고 처·자식과 주변 친구들에게 으스대며 여행가방을 싸는 기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기자들이 참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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