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세뇌교육 희생양 이승복 동상을 또 세우자고?

기록하는 사람 2009. 2. 2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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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반공소년 이승복 오보 논란'과 관련, <조선일보>가 낸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 모양이다.

대법원은 <조선일보>의 이승복 기사를 오보라고 보도한 김종배 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과 '오보 전시회'를 개최한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중 김 전 사무총장에게만 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이 사건은 나와도 전혀 무관하진 않다. 1998년 내가 재직 중이던 <경남매일>에서 후배 김효영 기자에게 "아직도 냉전교육의 산물인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 거의 모든 초등학교 교정에 그대로 남아 있다"며 취재 아이템을 제공한 바 있다.

이에 김효영 기자는 '아직도 이승복 동상이…'라는 기사를 보도했고, 곧이어 이승복 어린이의 형 학관씨에 의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됐다. 조선일보가 김종배·김주언씨에게 소송을 건 것도 바로 그 때였다.

조선일보 2웛 13일자 8면.

의기양양한 조선일보, 어린이 죽음 이용하지 마라

조선일보는 이번 판결에 의기양양해 하고 있다. 판결 다음 날인 13일 조선일보는 1면에 "'조선일보의 이승복 보도는 진실', 대법 '오보 전시회측, 손해배상해야" 제목의 기사를 실었고, 8면을 털어 "이승복 동상 철거하고, 교과서에서 빼고…17년간 활개친 광기들"이란 전면 기획기사를 실었다. 여기에는 "사법부 '이승복 기사 조작설'에 마침표"라는 기사와 함께 "누가 허위로 퍼뜨렸나", "이승복 사건은" 등 꼭지와 친형 이학관씨의 인터뷰도 실었다. 또한 "이젠 이승복군에 대한 사회적 복권 이뤄져야"란 사설도 있었다.

김종배씨의 블로그와 <미디어스> 기사를 보니 재판과정에서는 1968년 무장공비에 의한 이승복 살해사건 직후, 과연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에 가서 취재를 한 후 기사를 쓴 것이냐가 쟁점이 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입을 찢어 죽였다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오보냐, 아니냐는 것보다 섬뜩한 '반공교육의 광기'를 다시 떠올렸다. 이승복 어린이야말로 바로 그 '미친 반공세뇌교육의 희생양'이 아니었던가?

철없는 아홉 살의 이승복 어린이가 정말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공비들에게 외쳤고, 그 때문에 무참히 살해되었다고 치자. 그게 과연 정상적인 일인가.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 '반공 소년 이승복' 동상을 세우고, 교과서에 실어 이승복 어린이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옳으냐 말이다.

아직도 많은 초등학교 교정에 서 있는 이승복 동상. @김주완

다른 어린이들도 그런 상황에 닥치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쳐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란 말인가? 강도가 들어와도 "난 강도가 싫어요"라고 외쳐 무모한 죽음을 자초해야 하는가?

아무리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나라라 하더라도 총칼을 든 무장공비에게 아홉 살 어린이가 그런 말을 외치도록 만드는 교육이 과연 올바른 교육인가 말이다. 아홉 살 어린이가 이념을 알면 얼마나 알 것이며,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체제에 대한 신념이라는 게 있기나 한 것인가? 그 어린 아이가 뭘 안다고 그걸 추켜세우며 전국 모든 어린이가 본받아야 할 표상으로 만드느냐 말이다. 그거야 말로 반공주의자들이 비난해마지 않던 북한의 세뇌교육과 무엇이 다른가.

아홉 살 어린이를 반공영웅으로 만들자고?

만일 조선일보의 당시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승복 어린이 사건이야말로 '미친 반공교육'이 만들어낸 어이없는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그 사건을 계기로 무모하고 무식한 반공세뇌교육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했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또다시 이승복 군에 대한 '사회적 복권과 역사 복원'을 외치고 있다. 다시 교과서에 실어 어린이의 영웅으로 만들고, 철거된 동상을 학교마다 복원하자는 말인가? 정말 무서운 조선일보다.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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