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화왕산 억새 태우기 전설은 날조 왜곡이다

김훤주 2009. 2. 1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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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이 숨지고 60명 남짓이 다치는 참사가 화왕산에서 일어났습니다. 창녕군청 등은 화왕산에서 억새태우기를 하면서 그 근거로 전설과 세시풍속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날조 아니면 왜곡입니다.

억새 태우기 행사를 실행하려고 지어낸 얘기라는 말씀입니다. 창녕군청 홈페이지는 억새 태우기를 두고 “화왕산이 예부터 불의 뫼라고 하여 이곳에서 불이 나야만 풍년이 깃들고 평안하다는 전설”이 있다 합니다.

그리고 창녕군이 산림청에 낸 억새 태우기 행사 개요에는 ‘세시풍속 재현’이라는 표현이 있답니다. 그러니까 화왕산 산꼭대기에서 억새를 태우는 세시풍속이 예부터 있어왔다는 얘기가 됩니다.

화왕산 억새 태우기에서 불길에 쫓겨 달아나는 사람들.


저는 창녕이 고향입니다. 63년 태어나 68년에 떠났다가 70년에 다시 돌아와서는 75년 국민학교 6학년까지 거기서 살았습니다. 그 뒤로도 86년까지는, 방학 때면 두세 달 창녕에서 지냈습니다. 집이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녕군지에 나오는 세시풍속 민속놀이.


그런데 저는 이런 전설 이런 세시풍속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기억력이 나빠 까먹어 버렸나 싶어서 국민학교 동기 몇몇에게 물어봤습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이들도 그런 전설 세시풍속을 마주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행여나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그런가 싶어 관련 기록을 찾아 봤습니다. 창녕문화원에서 낸 자료들을 뒤졌는데 없었습니다. 우리 경남도민일보 자료실에 가서 1984년 간행된 <창녕군지>를 뒤적거려 봤는데 마찬가지 없었습니다.

전설과 지명 유래, 세시풍속과 문화재를 다룬 지면을 나름대로는 샅샅이 찾아봤으나 산에 불이 나야만 풍년이 깃들고 평안하다는 전설은 없었습니다. 반면 창녕 조씨들이 그 성을 얻은 자리가 화왕산 용지라는 전설만 곳곳에 있었습니다.

이런 얘기는 있습니다. 창녕읍 들머리에 조산(造山)이 있습니다. 풍수지리에 따라 창녕이 물 위에 둥둥 뜨지 않도록, 일부러 만들어(造) 앉힌 산(山)이라 합니다. 이처럼 창녕이 낙동강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이뤄진 이런저런 비보(裨補)와 관련된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니까, 창녕에는 소벌(우포늪)을 비롯한 습지가 많고, 또 창녕읍과 바로 아래 대지(大池)면까지 큰물이 잦았기에 이를 비보하느라 산 이름을 화왕(火王 또는 火旺)이라 했다는 얘기 정도는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날조 또는 왜곡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화왕산 억새 태우기를 통해 물심 양면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집단이 있어서, 그이들이 이런 식으로 전설을 꾸미고 세시풍속을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호랑이 뼈. 경남대 박물관. 경남도민일보 사진.


물론 여기에는, 화왕산 꼭대기 용지(용못)에서 옛날 가야 시대 이전부터 날이 가물 때 기우제를 지냈고 이 때 호랑이 대가리를 제물로 썼다는 사실도 악용됐을 가능성도 작지 않습니다. 가물 때 비가 오면 그것이 바로 풍년 기약이요 그것이 바로 평안일 테니까요.


그 때도 억새밭에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번 참사를 두고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죄인이고 따라서 책임을 지는 데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은 아마 맞습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화왕산 억새밭을 사람들 놀이터로 만든 반면 생태계 보금자리로는 보장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억새 태우기를 저지르는 돌파구를 내기 위해(그리고 이를 통해 금전 또는 명예를 얻으려고) 없는 전설까지 꾸며내고 있지 않은 세시풍속까지 탄생시킨 잘못 또한 우리 모두의 것인지요? 아니면, 억새 태우기를 주관하고 주최한 이들에게 이것만큼은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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