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민간인학살 국가상대 손배소 줄잇는다

기록하는 사람 2009. 2. 16.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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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국군과 경찰 등 아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이 최근 사법부에 의해 명백한 '불법행위'로 인정되면서, 이에 따른 유족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경남에서도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은 1950년 울산보도연맹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국민들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본질적으로 국가는 그 성립 요소인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 없이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권리를 누릴 수는 없다"면서 "여태까지 생사 확인을 구하는 유족들에게 그 처형자 명부 등을 은폐한데다가 이 사건에서 그 사망이 적법하다며 다투는 피고(국가)가, 이제 와서 뒤늦게 원고들이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면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재판부는 학살 자체의 불법은 물론 국가의 은폐행위까지 책임을 물은 것이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서 발굴된 학살 유골.


이어 11일에는 경북 문경 석달동 학살사건에 대한 소송에서 역시 서울중앙지법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다소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인 피고로서는 국가배상법상의 의무 이행 문제와는 별도의 차원에서 관련 법령을 마련하는 등으로 원고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함으로써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처럼 민간인학살에서 국가의 불법행위와 그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자 경남도내에서도 유족들이 줄줄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함양유족회 차용현 회장.

당장 지난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1949년 거제지역 38명 학살사건은 물론 산청 시천·삼장민간인학살 유족들도 소송을 준비 중이며, 1949년 공비토벌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학살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함양지역 유족들도 지난 13일 오후 2시 함양군 농업기술센터에서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를 열고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로 결의했다.

다만 함양지역 유족들은 아직 진실규명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나머지 80여 명에 대한 처리결과를 기다려 함께 소송을 내기로 합의했다.

김해지역 보도연맹원 학살사건 유족들도 이번 울산보도연맹 사건과 발생 및 은폐과정이 거의 동일하다는 차원에서 역시 소송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산청 시천·삼장유족회 정태호 회장과 정맹근 전 회장은 "울산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판결을 보고 우리도 소송을 내기로 이미 결의돼 있는 상태였다"면서 "국가의 사건 은폐 책임을 물어 시효를 인정한 이번 판결에 유족들이 크게 고무돼 있다"고 말했다.

거제유족회 서철안 회장도 "정말 반가운 판결"이라며 "그동안 국가가 진상규명을 외면하고 은폐해온 책임이 명백한 만큼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시점부터 시효를 적용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한편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김증식 간사는 "울산사건 판결 이후 전국 각지의 유족들로부터 많은 문의가 오고 있다"며 "범국민위 차원에서 법률지원단을 가동해 공동으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사법적인 해결노력과 함께 국회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입법 노력도 함께 병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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