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국가배상 판결 보도연맹, 어떤 조직인가

기록하는 사람 2009. 2. 11. 09:54
반응형

어제(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울산 보도연맹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피해유족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국가는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생사 확인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국가가 이제 와서 유족들이 진작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면서 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극히 당연한 판결입니다. 한국전쟁 전후 수많은 유형의 민간인학살이 있었지만, 특히 보도연맹원 학살은 독일의 유태인 학살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보다 더 조직적이고, 고의적이며 명백한 국가범죄입니다.

보도연맹은 1949년 이승만 정부의 내무부와 법무부가 함께 나서서 조직한 사실상의 국가기구였습니다. 그렇게 국가가 만든 조직의 회원들을 국가가 직접 군인과 경찰을 동원해 학살해버렸으니, 이보다 더한 조직적인 대국민 범죄가 세계 어느 나라에 있을까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몇 차례 이승만 정부가 만든 국민보도연맹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국가가 직접 나서 만든 조직이라는 근거를 밝혀드리겠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4개월여 전에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내무부 차관과 법무부 차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집니다.

1960년 경남 마산의 한 신문에 보도됐던 마산보도연맹원 피학살자 명단.


1950년 2월 1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장경근 내무부 차관과 김갑수 법무부 차관이 출석한 가운데 8명의 국회의원이 보도연맹에 대해 집중질문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민경식의원(민국당)의 질문입니다.

"보도연맹은 과거에 공산주의 운동을 하던 자로서 자기의 죄과를 회개하고 전향한 자를 포섭하여 선도하는 단체인데, 최근 각지에서 해방 이후 인민위원회나 농민조합이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대세에 끌려 이름만 걸쳤던 주민들에게 보련 가입을 강요하고 있다. 가입하지 않으면 신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협박하면서 1개 군에 1만여장의 가입 권유장을 발부하고 있다. 이는 군내 청년 수의 절반이나 되는 데 정부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장경근 내무부 차관이 민 의원의 이같은 지적을 상당부분 인정하는 듯한 답변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도연맹은 공산도배의 사주를 받은 사람에게 건국이념을 이해시켜 건국노선에 참여케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도연맹이 완전히 조직운영되지 못하고 있고, 워낙 방대한 기구라 말단에서 연맹의 정신에 이탈되는 폐단과 결함이 있더라도 제도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의원님이 지적하신 문제점은 시정토록 하겠습니다."

김갑수 법무부 차관도 역시 이를 시인하는 말투로 답변합니다.

"보도연맹 운영에 일반국민의 이해부족으로 많은 난관과 애로가 있으나 관계직원의 열과 성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관심을 환기해줘서 고맙습니다."

1960년 마산유족회 결성식.

이날 대정부 질문에는 민경식 의원 외에도 김웅진(국민당)·황호현(무소속)·이원홍(민국당)·이진수(국민당)·윤재욱(국민당)·오석주(국민당)·진헌식(국민당) 등이 나서 보도연맹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 중 주목할 것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5월 10일로 예정돼 있던 선거에서 자신의 반대파를 감시·장악하기 위해 보도연맹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의혹입니다. 당시 국회의원들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중앙의 취지와는 달리 지방에서는 간혹 상대방을 중상·모략하는 데 이용할 뿐 아니라 보도연맹조직을 암암리에 5·10선거운동에 이용하기 위한 기색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정부측의 뚜렷한 답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법무부 차관이 "자수기간이 끝난 후 1개월 만에 3000명의 좌익혐의자를 체포한 바 있다"고 털어놓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그렇다면 자수한 좌익혐의자 외에 진짜 좌익사범들은 별도로 잡아들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또 "보도연맹 회원의 수가 각 시·도별로 얼마나 되는가"하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변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보련 가맹원은 1만4000명이지만, 다른 지방은 보고가 아직 없어 알 수가 없습니다."

정부에서 만든 조직의 회원 숫자를 정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무분별하게 가입을 시켰기 때문이었을까요? 이날 국회는 마침내 재석의원 108명 가운데 55명이 찬성하고 2명이 반대한 가운데 보도연맹의 조직운영에 대해 내무치안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가 진상을 조사토록 하는 동의안을 가결하게 됩니다.

그러나 4개월 후 6·25가 터지자, 정부측도 인정할만큼 '많은 폐단과 결함이 있었던' 보도연맹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집단 학살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학살된 전국의 보도연맹원 숫자는 약 2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군 민간인학살, 한국군 학살은?
#한국군 민간인학살, 60년만에 진실규명 결정
#함양 민간인학살 목격자들을 만나다
#뼈에 무슨 이데올로기가 있나요?
#드러난 수백 구의 유골, 이들은 누구일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