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과연 귀농만이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해결책일까

김훤주 2009. 1. 13.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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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가 무기한 조업 중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리 된다면, 짐작건대, 정규직은 휴직을 하고, 비정규직은 해고가 될 것입니다. 도산하는 납품 업체도 생기겠지요. 추운 겨울, 가슴에 스산함을 담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아무래도 늘게 생겼습니다.

좀 엉뚱하다 싶으면서도 눈길을 끄는, ‘비정규직 근본 해결책’을 읽은 기억이 났습니다. <녹색평론> 2008년 11.12월호(103호) “왜 지금 다시 ‘박현채’인가” 29쪽과 30쪽에 나옵니다. 박현채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민족 자립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이 경제학의 핵심은 ‘자립’입니다. 스스로 힘으로 서야 하고, 또 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박현채 전집’(모두 7권)을 발행하는 실무 책임을 맡았던 박승옥은 <녹색평론>에 쓴 이번 글에서 그 요체를 이리 밝혔습니다.

28쪽입니다. “(박현채는) 끊임없이, 일관되게, ‘자립경제’와 ‘자립의 공동체’를 주창했다. 그는 ‘민족경제’의 완성된 형태를 ‘자립경제’로 명확히 설정하고 있었다. 그에게 경제란 ‘경세제민’이었으며, 협업이었고 평등과 분배였고, 민중의 삶의 개선이었다.”

“(박현채에게는) 민중들의 협업과 농업협동조합을 통한 식량자립 및 그것을 중심으로 한 ‘자립경제-민중경제’만이 민중들의 삶을 개선하는 지름길이자 민주주의의 확실한 기초라는 신념이 있었다.”

박승옥은 이어서 “(자본주의 생산 관계를 뛰어넘는 생산력 발전에 바탕한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자립경제와 공동체만이 지금의 불평등하고 지속불가능한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이다.”고 못 박습니다.

그러면서 “산업중심의 사회에서 농경중심의 사회로 빠르게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생태순환의 소농을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체 형성을 뼈대로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하는 지역자립과 자치의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좌우를 막론하고 모두 인정하는우리 사회 가장 큰 현안입니다.

게다가 더 나아가, ‘소농 중심 지역공동체 형성을 뼈대로 한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하는 지역자립과 자치의 사회’가 지금 이 시대 최대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라고까지 얘기합니다.

“비정규직의 해법을 놓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장도 있고, 그건 비현실의 주장이니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과 같은 제도개선을 해야 한다는 접근도 있으며, 사민주의나 복지국가론에서처럼 사회적 일자리를 대폭 늘림으로써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물론 경제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이라는 기존의 스테레오타입 주장도 여전하다. 그러나 과연 이런 방법이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해결책인지는 의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자의 양산은 필연이며, 이런 노동예비군의 존재야말로 저임금구조를 유지하는 핵심 골격이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는 산업사회 자체를 바꾸어야만, 사회체제의 근본에서부터 전환을 모색해야지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민(소농)으로의 ‘존재이전’만이 근본의 해결책이다. 생각해보라. 비정규직 노동자 수백만 명이 소농으로, 농촌으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우리 사회의 근본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식량 자급률을 높임으로써 다가오는 끔찍한 식량위기에 대한 대비책이 될 것이다. 여기에 노동력 부족을 야기함으로써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에너지-식량의 지역자립 체제 구축의 전제는 새로운 형태의 브나로드 운동이 일어나야 가능해진다.

지금은 수많은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밖에 되지 않는다. 청년들 속에서 값싼 노예의 삶을 선택하기보다 자유인의 삶을 선택하는, 소농으로의 존재이전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국사회의 재기획과 생태적 전환을 위해서는 새로운 계몽운동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은 지난날처럼 소수 선각자의 지도에 따라 이루어지는 형태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뤄지는 ‘피동의 계몽’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촛불’에서 이미 드러났듯 수평의 대등한 주체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의 수많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능동의 계몽’이야말로 스스로 자유인으로서 미래의 자신의 삶을 명확히 선택하게 만들 것이다.”

(실업자까지 포괄하는) 도시 노동자가 농촌으로 많이 들어감으로써만, 식량위기와 에너지위기를 해소하고 노동력 과잉도 없앨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많은 이들도 그리 생각할까 싶은 생각은 떨치지 못했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든지 최저 임금 대폭 인상이라든지 사회적 일자리 확충이라든지 경제성장이라든지가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에서부터 해결하는 대책은 절대 될 수 없다는 주장에도 아주 크게 동의합니다만.

생태 어쩌구에는 평소 관심이 없던 친구에게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그이는 ‘한 번씩 이 고달픈 도시 생활을 되짚어보는데, 그럴 때마다 자기뿐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도 ‘귀농’만이 살 길이라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놀랐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관심없는 이들도 이리 여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이치에 합당한 것 같습니까? 과연 실현 가능할까요? 아니면 개 풀 뜯는 헛소리라고 보시는가요? 저로 말씀드리자면, 올해 고교 졸업하는 아들에게 농사지어라 할 수는 없지만, 제가 농부가 돼야겠다는 결심은 하고 말았습니다. 쉰하나가 되는 2014년에…….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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