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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과속스캔들’은 실패한 ‘코믹’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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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은, <코믹>으로는 실패한 영화입니다. 적어도 저희 부녀에게는 말입니다. 저희 부녀는, 이 웃기려고 만든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다고 저희 부녀가 이 영화를 좋지 않게 본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물론, 이번에 중3 되는 우리 딸은 이 영화를 보면서 아주 여러 차례 웃었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한 차례 웃기는 했습니다. 영화 막바지에서, 할아버지 남현수(차태현)가, 딸 황정남으로 하여금 아이(황기동, 그러니까 손자)를 낳게 한 남자를 마구 때리는 장면입니다.

이 대목에서, 제가 쓰는 글을 보고 있던 우리 딸 현지가, “아냐. 우스운 장면에서 여러 번 아빠를 돌아봤는데, 안 웃고 있을 때도 많았지만 웃고 있을 때도 있었어요.” 이럽니다. 현지는 이어서 “아빠, 코믹 영화 맞아. 난 많이 웃었어!”라고도 했습니다.

1. 솔직히,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어쨌거나 사실대로 말하자면, ‘과속스캔들’은 그리 썩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화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제가 봐도 허술한 구석이 눈에 띄는 그런 정도밖에 안 되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나쁜 영화’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왜 알지 않습니까? 문학에서, 어떤 시(詩)를 두고 ‘잘 만든 시’라 하면 거기에는 어느 정도 조롱기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잘 만든 작품은, 그냥 잘 만들었을 뿐입니다.

보기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할아버지(차태현) 남현수가 손자 황기동을 맡아준 유치원 원장을 만납니다. 원장이 말합니다. “기동이 아주 잘 치던데…… 왜 알려주시지 않았어요?” 원장은 ‘피아노’를 두고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고스톱’을 떠올립니다.

겉과 속이 다 보이는 뻔한 대사입니다. 앞에 ‘과속 3대’가 고스톱 치는 장면에서 손자 기동이 둘 다를 이깁니다. 그러고 할아버지와 원장을 이어주는 이 대사가 나옵니다. 고스톱도 <치는> 것이고 피아노도 <치는> 것이라 이리 엮었을 것입니다.

어색합니다. 일상에서는 잘 쓰지 않는 일부러 꾸며낸 말투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어떻게 하나요? ‘잘 친다.’는 표현을 쓸 때는 앞에 목적어를 거의 모두 붙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영어 do와 같은, 대(代)동사 비슷한  ‘한다.’를 끌고 와 쓰지요.

또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딸 황정남이 다툽니다. 누군가 낌새 챘음을 알고 할아버지가 “여기 떠나서 어디 묻혀 조용히 살라.” 하지요. 딸은 그리 못한다 합니다. 그 때 할아버지 차태현이 이런 투로 소리쳐 묻습니다. “야, 너 출신 배경이 뭐야!”

딸은 멍하니 쳐다보다가, “애비 없이 자라서 그렇지.” 내뱉습니다. ‘출신’ 또는 ‘배경’이 목적한 바가 바로 ‘애비’일 것입니다. 그러나 출신이나 배경을 따져 묻지 않아도 애비 얘기는 쉽게 나올 수 있고 그게 또 자연스럽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녀석이야!” 정도?

2. 그래도, 재미나는 좋은 영화다
그렇지만 ‘과속스캔들’은 우리 부녀에게 재미있고 또 좋은 영화였습니다. 중3 올라가는 우리 딸 현지는 두 번 봤습니다. 한 번은 친구랑 보고 한 번은 저랑 함께 봤습니다. 현지한테 “같이 갈래?” 물었을 때 “두 번 봐도 아깝지는 않을 것 같아요.” 대답을 들었습니다.

친자 여부 확인을 위해 아는 동물병원에서 피를 뽑은 직후.

10일 밤 9시 25분에 영화를 봤습니다. 자리는 좀 많이 듬성듬성 비어 있었는데, 보러 온 대부분은 오기 전에 미리 웃을 준비를 단단히 한 것 같았습니다. 우스운 장면이 막 시작하려고만 해도 웃음보를 터뜨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거든요.

마지막 장면도 멋이 있었고(좀 상투적이기는 했지만), ‘과속 3대’가 모두 사랑을 얻게 되도록 잡은 줄거리도 썩 괜찮았습니다. 게다가 황정남은 노래도 아주 좋았습니다. 사실 제가 노래를 잘못 부르기 때문에 열등감도 많이 작용을 했겠습니다만. 하하.

3. 눈물을 흘렸던 세 장면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영화관 안이 어둡기는 했지만, 옆에 앉은 우리 딸 현지는 눈치를 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한 번 눈물샘이 터지니까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되풀이 울었습니다.

예닐곱 장면에서 제가 울었지만, 기억에 남은 장면은 한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처음은 손자 기동이 피아노 칠 때였습니다. 두 번째는 아버지 남현수가 “너 돈을 노리고 왔잖아!” 하고 몰아세울 때 딸이 “아빠질 하는 것 보고 싶어서 왔다!” 대꾸하는 장면입니다.

마지막은, 아버지 남현수가, 방송에서, 딸더러 “만나서 다투고 떠나온 아버지를 꼭 찾아가라(아니면 연락하라?).”면서, “미혼모도 하고 싶은 것 많잖아요?” 할 때였습니다. 앞서, 아버지가 깔보는 투로 대했을 때, 딸이 했던 말이지요. 아버지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울고 나서, 제가 생각해도 이상했습니다. 코믹 영화를 보는데 눈물이 나오다니…….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억지로는 설명이 되는 국면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딸의, 그리고 딸에 대한 아버지의 애틋함이랄까 절실함이 제게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고스톱에서 황기동은 어머니 황정남도 이겼고 할아버지 남현수도 이긴다.

그런데 기동이 피아노 치는 장면에서 제가 울었다는 것은, 처음에는 저 스스로도 잘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래 이튿날까지 곰곰 생각을 거듭했지요. ‘도대체 왜 그리 됐을까…….’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서늘한 바람이었습니다.

외로움이었습니다. ‘잘 친다.’는 어설픈 대사가 연결해 준 ‘고스톱’과 ‘피아노’였습니다. 집에 피아노가 있는 경우, 아이는 대체로 심심하지 않으면 피아노 따위를 치지 않습니다.(물론 숙제라서 하는 경우는 있겠습니다만.)

고스톱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선 장면에서 어머니 정남과 아들 기동이 고스톱을 칩니다. 아버지 없이 둘만 있는 상황에서 두드리는 고스톱은 심심함입니다. 심심함은 곧바로 외로움과 어울립니다. 외로움은, 있어야 할(또는 있으면 좋은) 대상의 ‘결핍’에서 옵니다.

저도 어린 시절 그런 적이 있습니다. 뭐 있어야 할 아버지 어머니가 없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이른바 자취를 했습니다. 어버이랑 떨어져 있었지요. 누나나 형이 있었지만, 제게는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을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리 즐겨 글을 끼적이게 된 근본에는 그 어린 시절의 결핍이랄까 외로움이 깔려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때 제게 피아노가 있었다면 피아노를 쳤을 것입니다. 같이 ‘두드릴’ 사람과 화투짝이 있었다면 육백(그 때는 고스톱이 없었습니다.)을 쳤겠지요.

4. 두 번 모두 같은 장면에서 눈물 흘린 딸 현지

이런 배경이 저한테 있는 상태에서 두 모녀의 서글프고 고달픈 처지가 그 장면에서 퍼뜩 느껴졌겠지요.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 공명(共鳴)이 이뤄졌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 눈물이 흘러나왔지 싶습니다.

우리 딸 현지도, 처음 볼 때도 울었고 두 번째 볼 때도 울었답니다. 둘 다 같은 장면이랍니다. 아버지 남현수와 딸 황정남이 다투는 때라고 했습니다.

“왜?”냐고 물었는데, “몰라요, 그냥요.” 이랬습니다. 대답하기가 좀 어려웠나 봅니다. 대신, 둘이 다투도록 만든, 나중에 손자 기동의 아버지로 확인되는 남자를 나무랐습니다.

이 인간이 정남을 바래준 뒤 그냥 가지 않고, 아버지와 딸이 어울리는 장면을 찍습니다. 잘못 알려져 부녀가 다투는 발단이 됩니다. 딸은 “아이 짜증나.” 했습니다. 아버지와 딸의 다툼 자체가 버거운 것이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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