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기업하는 친구에게 들은 경제 전망

기록하는 사람 2009. 1. 15.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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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경제에 대해선 완전 문외한이다.

내가 재직 중인 경남도민일보사 주식 1800주(2000주인가?)를 갖고 있지만, 다른 회사 주식은 어디서 어떻게 사서 어떻게 파는지도 모른다. 주택담보대출로 청약해둔 아파트가 있지만, 한 달에 이자가 얼마나 나가는지도 모른다. 괜히 알게 되면 골치만 아플 것 같아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이자를 한 번도 챙겨보지 않았다.

다만 지역 신문시장이 하도 어렵기 때문에 광고시장 추이를 알기 위해서라도 경제동향은 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아고라에서 경제동향을 정확히(?) 예측해 화제가 되고 있다는 미네르바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있을 때도 나는 그의 글을 한 번도 찾아 읽지 않았다. 왜?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미네르바의 예측 정도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천재인 것일까?

아니다. 나는 여전히 경제에 무식하다. 하지만 미네르바처럼 그런 동향을 알려주는 사람이 주변에 여럿 있었다.
 
미네르바가 지난해 10월 24일 "이제 한국의 IMF(국제통화기금)은 거의 기정사실로 보인다"는 글을 올렸을 때, 나는 그보다 열흘이나 먼저 그 이야기를 들었다. IMF 구제금융 신청까진 가지 않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경제위기가 오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한 신용평가 회사의 간부였다. 그는 내가 고민하고 있는 신문시장에 대해서도 "오직 살아남을 궁리만 해라"고 충고해주었다.

한 회사의 중역으로 있는 친구는 친절하게 이메일로 당시의 국내 기업들의 동향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 메일 중 일부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자가 강한자'라고 하는 우스겟 소리가 있어. 그만큼 기업이든 개인이든 '생존'의 문제가 절대적인 가치가 되고 있단 애기지.

어제 오후에(점심땐가) 00이한테서 전화가 왔어. 하도 어렵다고 하니 기업하는 나한테 무슨 실마리를 듣고 싶었나 본데…. 대답은,  정부는 1년이다 2년이다 하는데, 한 5년은 죽었다하고 버텨야 될 것 같다고 했지. 은행은 25%, 건설업체는 8할 정도, 제2금융권은 절반 정도 정리를 해야 하는데, 부실규모가 커지면 사회문제가 되니까 정권이 겁을 내는거지, 그래서 천천히 죽이는 법을 강구하고 있는 거고. 그래 지금은 '장기 항전'이야.

IMF 전에는 '대마불사'란 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마필사'란 말이 생겨났어. 그만큼 덩치가 큰 놈은 생존에도 장애가 된다는 말이지. 거대공룡의 멸종과 같은…. 작은 놈의 고통도 만만치 않아. 쓰러진 놈의 무게를 고스란히 떠받아야 하니."

먼저 들었던 신용평가 회사의 간부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메일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여튼, 한국은 큰일이다. 미국의 펀드런이 환율 폭등과 주식폭락으로 이어졌다면 이제 엔케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물가폭등과 가계부실, 개인파산이 이어질거야. 근데 이 모든 상황을 잠재우려면 달러가 필요한데, 현재의 외환 보유고는 단기외채와 금융권 단기차입으로 사용해야하므로 유동성이 충분치 못하고, 추가적인 차입은 남북관계가 불안정해서 더욱 어렵게 될것 같애.

개성공단은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봐. 남북화해의 상징이자, 남북공동 발전의 모델이고, 정파적인 이해를 떠나 한국경제의 안전핀이라고 할까.  근데, 이게 요즘 불안해 지고 있어. MB가 경제전문가인데 이걸 모를리 없잖아. 그런데도 이런한 상황을 만드는것은 참 우려스러운 징조야. 소위 반북주의 세력들이 실용주의 세력을 포위해 가고 있다는 방증이지. '실용주의'적 관점에서도 너무 아까운 일이야."

이 정도라면 이미 국내 기업체에 있는 사람들도 이명박 정부의 선전과는 전혀 다른 경제진단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적어도 무슨무슨 연구소들의 애매모호한 진단과 달리, 실제 기업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미네르바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에 물어왔다. 왜 미네르바처럼 당신들이 아는 지식을 인터넷으로 알리거나 언론에 기고하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기업하는 사람으로서, 정부에서 싫어할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건 부담스럽다. 국책연구소나 민간경제연구소들이 애매한 전망만 늘어놓는 것도 그런 탓이 크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몇몇 경제 분석가들은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말할 수 없도록 당국자들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보도가 맞다면 이명박 정부는 언론통제를 넘어 필자들에 대한 통제까지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아는 두 사람처럼 정부로부터 직접 압력을 받지 않은 기업인들도 이미 정부가 무서워 '말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미네르바의 글에 대한 소감도 물어봤다.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이 쓰기엔 전문적인 내용이 많더라. 짜집기를 한다고 해도 자신이 그 내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글이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내용들 중 상당수는 이미 웬만한 경제전문가나 기업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고 실감하는 것들이다."

이 두 명의 이야기를 근거로 기업가나 경제전문가의 생각을 일반화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일하는 평범한 회사원 후배녀석에게도 물어봤다.

"글쎄, 나도 신문에서 미네르바 기사는 봤지만, 그 정도 전망은 우리 회사에서도 하고 있던 거라 일부러 (미네르바의) 글을 찾아 읽어볼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어요."

이처럼 내 주변엔 정부의 낙관적 전망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정부의 눈치 때문에 단지 아고라에 공개적인 글을 올리지 못했을뿐 그들 역시 또다른 미네르바였던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는 점점 자기들만의 고립된 섬이 되어가고 있다. 미네르바의 구속은 그런 그들이 그만큼 다급해졌다는 위기감의 발로로 보인다. 하지만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국민의 입과 귀와 눈을 틀어막고도 무사했던 정권은 없다.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을 좀 많이 수정, 보완했습니다.
※관련 글 : 졸지에 철없는 기자가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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