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님을 위한 행진곡’은 박물관에나 보내자

김훤주 2008. 12. 2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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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위한 행진곡’이 있습니다. 저처럼 80년대 초반에 운동을 시작한 이들에게 이 노래는 거의 DNA 같은 무엇이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이 노래와 저와 운동은 떨어지지 않는 하나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님을 위한 행진곡’이 불편해졌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던 90년대 초반이지 싶습니다. 노래를 불러도 겉도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습니다. ‘운동권’ 일부의 선민(選民)의식에 문제를 느낀 시점과 비슷합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노랫말을 꼼꼼하게 뜯어보면 곳곳에 선민의식이 배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에서는 그 선민의식이 거의 배타적 수준으로까지 고양됐고 그래서 대중성도 없습니다.

2003년 7월 KBS 인물 현대사-광주항쟁과 윤상원.

노래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이럴 수밖에 없겠구나, 충분히 짐작은 됩니다. 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전남도청을 지키다 숨진 윤상원 열사와, 그 후배이면서 한 해 앞서 노동 현장에서 숨진 박기순 열사의 영혼 결혼식에서 처음 불렸다지요.

엄혹한 시절, 한 마디 말조차 함부로 할 수 없던 시절이었지요. 지금도 생각나는데, 교정에 학생 서넛만 모여 있어도 금세 사복 경찰이 따라 붙던 시절, 전투경찰 중대 병력이 아침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하고 곳곳으로 흩어져 스며들던, 꽁꽁 얼어붙은 시절.

이제 저는 이 노래 시효가 끝났다 생각합니다. 아니 10년가량 전에 벌써 유통기한이 지났는데, 운동권에서 시대착오적으로 계속 ‘애용’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대는 달라졌는데 상징하는 노래는 그대로인 착란이지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으며,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다짐할 사람 또한 얼마나 되겠으며, 인터넷으로 온통 열려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이 ‘깨어나서’ ‘뜨거운 함성’을 외치겠습니까?

물론 이런 언사들을 어떤 상징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어둡고 가라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즘 신세대 친구들은 아예 이런 노래라면 고개도 돌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대부분 집회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릅니다.

우리 경남도민일보에서 저랑 같이 일하는 후배 이시우 기자도 이 노래를 끔찍하게 싫어한답니다. 아마 이 친구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꾸미는 상투적 관형어, 그리고 집회 때마다 뻔질나게 들어야 하는, ‘사천만 민중의 영원한 애국가’라는 말이 더 싫은지도 모릅니다.

대충 짐작건대 이시우 기자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민중이 한 번도 자기 나라(민중의 나라)를 가져 본 적이 없는데 무슨 빌어먹을 애국이냐?” 그리고 또 있습니다. “노동자가 사랑할 것이 그렇게도 없더냐, 애국을 하게?”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애국 이데올로기는 국가주의 전체주의와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애국이라는 말은 운동권 민족주의자들도 많이 쓰기는 하지만, 원래는 자본가나 지주 같은 지배계급의 것입니다. 우리가 지배하는 이 나라를, 너희 상것들도 몸 바쳐 사랑하라는…….

이러고 있는데,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을 또 만났습니다. 존경하는 주대환 대선배이십니다. 그이가 이번에 펴낸 책 <대한민국을 사색하다> 131쪽은 작은 제목이 아예 ‘<님을 위한 행진곡>은 그만 부르자’입니다. 반가웠습니다.

132쪽에는 이리 적혀 있습니다. “행사장마다 애국가를 대신하는 그 노래가 듣기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중과 ‘운동권’을 정서적으로 가르고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담을 치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다분히 고립되고 패배적인 분위기입니다. 지나친 비장함은 일상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고, 그 정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낯설고 닫혀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고 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그 노래를 자유주의자들과 어울려 함께 부르는 한 좌파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토종 좌파’가 될 수 없습니다. 저 1980년대를 넘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혁명의 환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133쪽에서는, “차라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노랫말이 훨씬 대중적이고 민주적이고 긍정적이지 않습니까?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는 가사보다 말입니다.” 했습니다.

저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노래를 박물관으로 보내야 합니다. 수장고에 집어넣고 필요할 때만 꺼내어 ‘80년대 세대가 독재 팟쇼와 맞서 운동을 할 때 비장한 각오로 때로는 눈물까지 흘리며 불렀던 노래’라 설명해주면 딱 알맞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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