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중학교 2학년 다니는 딸 현지랑 책방에 들렀습니다. 가는 길에 현지가 “아빠 나 이번에는 시험공부 안할 거예요.” 이랬습니다. 저는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슨 말이야?” 물었겠지요.
“성취도 평가 시험을 친다는데요, 선생님들이 ‘학교 등수까지 나오니까 열심히 해라.’ 이래요. 그런데 범위가 1학기 처음 배운 데부터라서 공부하려니까 짜증스러워요. 저는 오히려 중3 돼서 배울 내용이 공부하고 싶어요.”
저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책방에 가서는 교과 참고서로는 ‘중3’을 골랐고, 학교 공부하고는 아무 관계없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뇌>라는 소설책도 샀습니다. 현지는 그 책을 밤새 읽고 이튿날 학교까지 들고 가 읽었습니다.
어제 22일, 아들 만나러 서울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내일이 일제고사 치르는 날이지.” 그러면서 “우리 현지가 치기 싫어하면 치지 않도록은 해 줘야 되겠네.” 싶은 생각이 뒤따라 일어났습니다.
손전화 문자로 “딸! 내일 치는 게 일제고사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일제고사? 성취도 평가요.”라는 문자가 바로 날아왔습니다. “그게 그거야.”라 문자 보내려다가 참고, 밤에 집에 들어와 얘기를 나눴습니다.
일제고사 반대 1인시위. 경남도민일보 사진.
“안 그래도 그거는 이미 그래 돼 있어요.” “또 경쟁이 더 심해지겠지.” “맞아요. 하지만 지금도 심해요.” “그러니까 아빠 얘기는, 우리 딸이 그런 경쟁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싶으면 들어가지 않도록은 해주고 싶고 해 줄 수 있다는 거지.”
“어떻게요?” “우리 딸이 바란다면, 내일 학교 가서 시험 치는 대신 아빠랑 어디 박물관 또는 산이나 들로 체험학습을 가면 되잖아? 선생님한테는 ‘이런 취지로 학교 안 간다.’ 전화 드리면 되고.” 우리 딸은 이 대목에서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눈치를 보였습니다.
딸이 물으면 대답하려고 저는, 일제고사를 치면 학교 서열화 획일화가 더욱 부추겨지고 학생은 공부 부담이 더욱 커지며 보호자는 아무래도 사교육비 지출이 더 늘게 돼 있다, 따위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지는 그런 따위는 묻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나 믿잖아. 그러니까 내가 성적이 아무리 낮게 나와도 억지로 과외 학원 보내지는 않을 거잖아요?” “그야 당연하지. 현지가 하지 않겠다는데도 마구잡이로 시키는 보람 없는 짓을 할만큼 멍청한 사람은 아니거든.”
“그러면 됐어요. 저는 내일 학교 가서 시험 볼래요. 대신 시험공부는 안 했으니 기대는 마세요.” 저는 이리 말해 줬지요. “무슨 성취도를 평가한다고 한 학년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하라냐? 공부는 강을 건널 때 쓰는 뗏목이랑 비슷하거든? 건너편에 닿은 뒤에도 들고 다니면 꼴이 우습잖아?”
시험은 재미없고 짜증나지만 학교는 좋습니다. 친구들이 학교에 다 모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시험에 얽어매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기에, 현지는 일제고사 치고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이랑 아무 부담 없이 편한 마음으로 ‘까르르 까르르’ 되풀이 웃었을 것입니다. 하하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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